스키마, 보편적 연상 작용의 양면성
'학교'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선생님, 교실, 시험, 당번(주번), 칠판, 분필, 칠판지우개, 친구들, 매점? 어떤가? 여러분이 떠올린 것들과 비슷한가? 다른가? 비슷하던 다르던, 이 과정에서 여러분과 필자가 한 정신적 활동은 동일하다. 바로 연상작용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 연상작용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미소 짓게 만드는 즐거운 일이다. 일상생활에서 동시대의 추억을 공유한다거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할 때를 생각해보라. 아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작용의 고리 속에 대화가 이어지고, 웃음이 절로 나오고, 끝도 없는 추억들이 나온다.
이런 사람들과 대화하고 나면, 대화한 사람에 대한 평가도 좋아진다. 대부분 '나랑 참 잘 맞네'라는 평가로 요약된다. 물론 언제나 이런 행운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나랑 참 안 맞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나와 잘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 걸까?
여러분도 느꼈겠지만, 핵심은 단순하다. 나와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은 결국 '연상작용'에서 차이가 난다.
한 사람이 학교를 떠올리면서 '저는 당번일 때 칠판지우개 터는 일이 정말 싫었어요'라는 이야기 하는데,
그 이야기를 받는 사람이 '우리 학교는 환경미화 담당 직원들이 있어서 전 그런 거 해본 적 없어요'
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분위기 싸해지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대화 중단, 관계 단절이다. 이런 사람들과는 공감대가 없고, 동시대의 추억이 없다.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도 없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중에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도 많지만, 그냥 웃어 넘겨준다. 군대 이야기에 대한 비슷한 연상작용이 있고, 하나를 말하면, 비슷한 것이 내 머릿속에서 척하고 떠오르니 즐겁다.
'너도 그랬어? 우리 부대에는 더 심한 놈도 있었어!'
하면서 한 바탕 난리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시끄럽게 웃고 즐기다가 갑자가 정신을 차려보면, 조용해진 누군가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친구다. 그 친구는 할 이야기가 없고,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다. 혹 자기도 할 말이 있다면서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네가 뭘 알아?'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연상 작용, 즉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떠올렸을 때, 그것과 함께 떠오르는 개념들의 집합을 '스키마(schema, 도식이라고 번역하긴 하지만, 썩 내키지 않는 번역이다)'라고 부른다. 이러한 스키마는 시대를 반영하고, 문화를 반영하기에 보편적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동시대를 살았던 남자에 대한 스키마, 동시대를 살았던 여자에 대한 스키마, 동시대인들이 경험한 어떤 사건에 대한 스키마는 비슷비슷하다.
그러나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더 많은 한국사회에서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남자처럼 동시대를 살았음에도 보편적인 스키마를 공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군대 갔다 오지 않은 자가 군대 갔다 온 자들의 대화에 끼면 핀잔을 듣는 것'처럼 보편적 스키마를 공유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스키마를 공유하지 못하는 소수자들을 차별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연상작용을 공유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스키마는 좋은 추억이요, 공감대요, 대화의 소재이지만, 다수의 연상작용에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스키마는 편견과 차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보편적 연상작용을 공유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스키마는 어떤 사건과 대상을 빠르게 판단하고, 의사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보편적인 연상작용을 공유하지 못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다수가 가지고 있는 스키마는 판단과 의사결정을 망설이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기억하자. 당신이 사용하는 스키마는 누군가에게는 좋은 추억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