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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Jan 19. 2022

뛰어난 의사가 행복할까? 행복해야 뛰어난 의사가 될까?

긍정 정서의 확장-구축 이론(1): 긍정 정서의 진단 능력 향상 효과

살다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질문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심리학에서 인과관계 추론(causal reasoning)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인간의 삶 가운데 경험하는 수많은 결과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하면 참 좋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 하나의 원인에 영향을 받아 결과가 도출된다면 간단하겠지만, 우리 삶에서 나타나는 결과들은 대부분 얽히고설켜서 다양한 것들에 영향을 받고, 또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또 원인이 되는 일이 흔하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한 인과적 연결 고리가 가득한 우리네 삶에서 유독 '결과'로서만 주목을 받아온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행복'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행복'이 어떤 것의 원인이었던 적은 매우 드물다.


다음 문장이 얼마나 타당하게 느껴지는가?

-행복해야 돈을 번다.

-행복해야 좋은 학점을 받는다.

-행복해야 애인하고 관계가 좋다.

-행복해야 외모가 아름다워 보인다.

-행복해야 건강하다.


여러분이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문장들이 매우 어색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은 어떤가?

-돈을 벌면 행복하다.

-좋은 학점을 받으면 행복하다.

-애인하고 관계가 좋으면 행복하다.

-외모가 아름다우면 행복하다.

-건강하면 행복하다.


아주 자연스럽게 문장이 읽히지 않았는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앞에 문장을 읽고서는 세상 어색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야 좀 입에 착착 감기네'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과학자들도 그랬다. 처음엔 행복이 결과인 줄만 알았다. 행복이 어떤 것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개념 자체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다. 특히 긍정심리학자들은 행복이 결과 변수가 아니라, 어떤 것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변수라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오늘 소개해드릴 연구는 행복이 무언가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초창기 연구 중 하나다. 이 연구는 엘리스 아이젠(Alice M. Isen)이라는 학자의 주도로 미국에 있는 미시간대학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이루어졌다. 연구 대상은 연구 당시 3년 차를 맞이한 수련의들 32명이었다. 의학 드라마 보면, 레지던트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잖은가. 지도교수를 쫓아다니면서 배우는 선생님들 말이다. 이런 훈련과정을 거친 후에야 독립적인 의사 선생님이 된다.



그럼 훌륭한 의사가 되는데 필요한 자질들에는 뭐가 있을까? 수술 능력을 뽑는 분도 계시겠지만, 일단 진단을 잘해야 한다. 어떤 병인지 파악을 해야 약으로 치료할지, 좀 쉬면 나을지, 수술을 해야 할지라는 의사결정이 가능하니까. 훌륭한 의사라면, 무릇 정확한 진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수련의 시절에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한 훈련을 한다. 가상적인 환자의 증상 프로필을 보여주고, 어떤 병인지 맞추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잘 들어! 오십 칠세 남자야. 하루에 담배를 두 갑씩 피우는 건설 노동자다. 최근 애리조나로 여행을 했고, 최근 6개월 간 체중이 10킬로그램 감소했어. 마른기침을 한다. 어떤 병일까?”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하고 답을 쓰게 한다. 답은 ‘폐질환’ 이렇게 쓰는 것이다. 3년 차 수련의들은 이 질문 말고도 5명의 가상적 환자의 병명을 진단하는 과제를 더 수행한다. 즉 총 6명의 가상 환자를 진단하는 시험을 본다. 결과는 어땠을까? 한 번에 다 맞춘 사람도 있고, 두 번째 기회에서야 맞춘 사람도 있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사실 여기엔 여러분이 알지 못했던 중요한 조작이 하나 들어가 있었다. 바로 6명의 가상 환자를 진단하기 전에 이루어진 조작이다. 3년 차 수련의들 중 절반은 행복한 상태로 만들고, 다른 절반은 중립적인 상태로 만드는 조작이 있었다.


행복한 상태로 만드는 조건에 참여한 수련의들은 환자를 진단하는 시험을 보기 전에 사탕 선물 세트를 받았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중립적 상태로 만드는 조건에 참여한 수련의들은 인도주의적 의료 행위에 관한 선언서를 읽었다. 그래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이런 걸 정서 점화, 영어로는 이모셔널 프라이밍(emotional priming)이라고 부른다.


3년 차 수련의들은 이렇게 행복한 정서 혹은 중립적 정서 중 하나에 점화된 후, 환자의 프로필을 보고 진단을 한 거였다. 그리고 여기서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된다. 사탕을 선물로 받으면서 행복해진 집단은 첫 진단의 정답률이 54%였다. 간 질환인지, 폐질환인지, 심장 질환인지를 한 번에 맞출 확률이 54%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중립적인 집단은 달랐다. 첫 번째 진단의 정답률이 37%에 그친다. 다시 말하지만 수련의들은 모두 3년 차고요. 월등히 뛰어난 수련의가 따로 있거나, 기억력이나 암기력이 남 다른 수련의가 따로 있던 건 아니었다. 사탕 선물을 받은 집단과 선언서를 읽은 집단은 통계적으로 동등한 집단이었다.


하지만 실험적 조작으로 인해 더 이상 동일한 집단이 아니게 되었다. 행복한 수련의들은 17%나 더 정확한 진단을 하는 의사가 되었고, 그렇지 않은 수련의들인 부정확한 진단을 하는 의사가 되었다. 이것이 연구의 핵심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어째서 행복한 수련의의 진단 정확도가 중립적인 수련의의 그것보다 더 증가했을까. 이는 행복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행복한 사람은 큰 그림을 볼 줄 알게 되고, 한 번에 많은 정보를 처리하여 통합할 수 있게 되지만, 행복하지 않을 때는 시야가 좁고, 한 번에 많은 정보를 처리하기 어렵다. 이런 것을 긍정 정서의 확장 효과(broaden effect)라고 부른다. 사탕 선물을 받은 행복한 수련의들이 경험한 것이 바로 이거다. 이들은 환자의 많은 증상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능력이 향상된 것이다.



자. 필자의 질문에 답해보라.


뛰어난 실력을 갖춰야 행복한 의사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행복한 의사가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되는 것인가?


아이젠의 연구는 행복한 의사가 되어야 진단을 잘하게 된다는 걸 보여준다.

행복한 의사는 어떤 성취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 될 수 있다.

아이젠의 연구는 진단을 잘한다는 성취를 불러오는 원인이 바로 행복임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Isen, A. M., Rosenzweig, A. S., & Young, M. J. (1991). The influence of positive affect on clinical problem solving. Medical Decision Making11(3), 2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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