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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Jan 12. 2022

슬퍼도 그냥 웃으라고요? 불행해지거든요!

슬프고 화나고 불안할 때는 억지로 웃지 말고, 다른 활동을 하세요.

일을 망쳤을 때,

고민이 있을 때,

미래가 너무 불안할 때,

머리가 지끈거릴 때,

애인과 싸우고 헤어졌을 때,

'귀하의 능력은 출중하지만 모실 수 없게 되었다'는 문자나 이메일을 받았을 때(도대체 누가 만든 말일까?)

우리는 슬프고 우울하다.


기분이 처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짜증이 확 났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한다. 어딘가 분풀이라도 하고 싶은데, 분풀이할 곳이 없어서 그냥 막 답답하다. 가슴이 꽉 막혀서 소화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살기 위해서 조금 힘을 내려고 시도하지만, 회복이 쉽지 않다.


이때 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 가족일 때도 있고, 친구일 때도 있다. 아무튼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다는 걸 아는 누군가다. 슬픔에 빠져 있을 나를 위로하려고 전화를 한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전화를 끊을 때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한 마디가 들려온다.


"슬픈 것은 알지만, 일부러도 웃어라. 거울 보면서 일부러라도 미소를 지어보려고 해 봐. 그럼 기분이 풀린다더라. 과학적인 근거도 있데!"


여러분도 들어보지 않았는가? 그리고 심지어 시도해보지 않았는가? 슬픈 일이 있을 때, '웃자! 웃어!' 하면서 말이다. 어땠는가? 기분이 좋아졌는가?


활력이 돌아오고, 힘이 나고, 신나서 방방 뛸 것 같은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냥 일상생활을 잘할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되고,

나를 슬프게 만든 일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게 되었는가?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일시적으로 좋아진 듯 느껴질 수도 있지만(사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 가능성이 더 높지만), 잠시 뒤에는 여전히 힘들고 괴로웠을 것이다.


억지라도 웃으라고? 그럼 기분이 좋아진다고? 에휴... 진짜 이것처럼 잔인하고, 비과학적인 말이 없다.

슬프지만, 억지로 웃으라고 웃으면 복이 온다고? 에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과학으로 포장된 이런 말이 사람을 잡는다.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결론부터 내려주도록 하겠다.

"슬플 때, 힘들 때, 짜증 날 때, 화날 때 억지로 웃으면, (행복해지기는 커녕) 불행해진다!"


지금 여러분은 깜짝 놀랐을 수도 있겠다. 여러분의 상식과 너무 다른 결론이 등장해서 말이다.

마음속에서 반발심이 생길 수도 있다.

'어? 나는 웃으니까 기분 좋아지던데!'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억지로 웃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라면 당신은 진짜 시련이나 역경을 겪어보지 않은 것이다. 진짜 시련이나 역경을 겪어본 사람은 그런 정도로 회복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불행해진다.


억지로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신화 같은 말은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or grounded cognition)이라는 인지심리학의 한 연구 분야에 그 뿌리가 있다[1]. 체화된 인지란, '인간의 신체적 행동이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심리학적 가설이다. 아픈 척하다가 진짜로 감기가 걸리는 것이라고나 할까.


체화된 인지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확인된다. 누군가의 연설을 들을 때, 고개를 끄덕끄덕(위아래로 머리를 움직임)하면서 들으면, 그 연설에 동의할 확률이 높아진다. 왜냐고? 많은 경우 끄덕끄덕이라는 신체적 행동은 동의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어? 그럼 도리도리(머리를 좌우로 움직임)하면서 들으면 연설에 반대하겠네?' 이렇게 추론하신 분이 있는가? 정답이다. 왜냐고?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도리도리 하는 신체적 행동은 반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고, 눈은 정면보다 살짝 높은 곳을 응시하고, 가슴을 활짝 펴고, 보폭을 크게 크게 하면서, 팔 스윙을 크게 하고, 약간 빠르다 싶은 정도로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이 상승한다. 지금 설명한 모든 신체적 행동이 자신감의 상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면 우리 뇌가 '어! 이 사람 지금 뭔가 기분이 좋고, 성취감이 높나 보다!'라고 해석해준다.' (소위 말하는 파워 포즈, Power pose) 그래서 빠르게 걷는 운동이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좋은 거다!(파워 워킹)


반대로 고개를 약간 아래로 하고, 눈은 바닥으로 향하며, 가슴을 움츠리고, 보폭을 작게 하고, 팔에는 힘을 완전히 빼고, 흐느적흐느적, 느릿느릿 걸으면, 기분이 나빠지고, 자신감도 하락한다. 방금 말한 신체적 행동들은 뭔가 우울할 때 하는 행동으로 우리 뇌가 인식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 우리 마음에 영향을 미쳐 우울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과학이다. 훌륭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런 체화된 인지 관련 연구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과도한 일반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과도한 일반화 가운데 하나가 바로 '슬플 때 웃어라!'라는 말이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이해가 된다. 신체적 행동이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까, 억지로 미소 짓는 행동이 기분을 좋게 해 줄 거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추론을 하는 분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 앞서 제가 언급한 것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지만, '억지 미소가 기분을 좋게 해 준다'는 가설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검증되었다. 무슨 말이냐고?

'불행할 때, 억지로 웃으면, 인생 허무하게 느끼고, 불행해진다는 결과 말이다!' 알겠는가?[2]

불행할 때, 슬플 때, 낙담했을 때 억지로 웃으면 행복은커녕, 불행해진다.

심지어 불행할 때, 억지로 미소 짓는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오히려 불행의 정도가 더 커진다.


웃음에 대한 개인의 신념도 영향을 미친다. 행복할 때 웃는다는 사람들은 웃는 빈도가 많을수록 행복해졌다. 이들은 행복할 때 웃기 때문이다. 그러나 웃어야 행복하다는 잘못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많이 웃을수록 오히려 불행해졌다. 이들은 불행할 때 억지로 웃었기 때문에 웃는 것이 오히려 불행하다는 신호가 되었기 때문이다.


왼쪽은 진짜 기쁠 때 미소다(눈도 웃고 있다). 오른쪽은 억지 미소다(눈이 웃고 있지 않다).


체화된 인지는 적용되는 곳이 있고, 아닌 곳이 있다. 특히 웃음은 억지로 웃는다고 우리 마음이 개선되지 않는다. 이것은 억지웃음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우리가 진짜로 웃을 때 입 주변 근육뿐만 아니라, 눈 주변 근육도 움직인다. 그러나 억지로 웃을 때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근육은 입 주변 근육뿐이다. 억지로 웃을 때는 눈 주변 근육이 조절이 안 된다.


이는 우리 뇌가 억지 웃음과 진짜 웃음을 구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억지 웃음은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지도 모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필자가 이미 언급했지 않는가! 슬플 때, 집에 가만히 있지 말고, 운동을 하라! 파워 워킹을 하라!

분위기 전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라. 즐거운 일을 만들어라.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어떤 것을 하라.

(단순 작업 같은 것도 좋겠다)

신나는 음악을 듣거나, 독서를 하라.

즐거운 코미디 영화를 보거나,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주위를 다른 곳으로 돌려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겠다.


단, 한 가지는 하지 말라! 뭐냐고? 억지로 웃는 것 말이다! 이건 절대 하지 마라!

억지 웃음은 당신을 더 허무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1] Barsalou, L. W. (2008). Grounded cognition. Annual Review of Psychology59, 617-645.


Shapiro, L. (2019). Embodied cognition. Routledge.


Leitan, N. D., & Chaffey, L. (2014). Embodied cognition and its applications: A brief review. Sensoria: A Journal of Mind, Brain & Culture10(1), 3-10.


Wilson, M. (2002). Six views of embodied cognition. Psychonomic Bulletin & Review9(4), 625-636.


[2] Labroo, A. A., Mukhopadhyay, A., & Dong, P. (2014). Not always the best medicine: Why frequent smiling can reduce wellbeing.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53, 15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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