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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Feb 16. 2022

행복은 나무보다 숲을 보게 한다

행복한 상태에서 확장되는 인간의 시야

여러분은 마음이 좋은 상태(good mental state)일 때 하늘 vs. 땅 vs. 정면 중 어디를 보시는가?


실제의 인간의 행동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좋은 마음 상태일 때 인간의 시야와 나쁜 마음 상태일 때 인간의 시야에 대해서는

어떤 관념이 존재하는 것 같다.


자! 퀴즈다. 어떤 사람의 어깨가 축 처져 있고, 자꾸 땅을 쳐다보면서, 느릿느릿 걷는다. 이 사람은 때로는 비틀거리기도 하며, 한 숨을 쉴 때마다 고개가 자꾸 숙여지고, 몸이 움츠러든다.

이 사람은 지금 행복한가? 불행한가?


여러분이 보편적인 개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불행하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제 두 번째 문제다. 어떤 사람의 어깨가 활짝 펴져 있고, 정면을 보거나, 하늘을 쳐다보면, 걸음걸이가 씩씩하고, 팔의 스윙도 자연스럽다.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가 자꾸 위로 올라가고, 몸이 쫙 펴져 있다.

이 사람은 지금 행복한가? 불행한가?


너무 쉬웠을 것 같다. 여러분은 아마 '행복하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 심리학 박사인 저자도 여러분의 생각과 똑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 바로 이런 것이 행복한 사람 혹은 불행한 사람의 태도나 자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리의 보편적 개념(concept)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그럼 불행한 상태에서 땅을 보게 되면, 뭐가 보일까? 아마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면서 발밑에 있는 것들만 보이게 될 것이다.


반대로 행복한 상태에서 정면을 보거나 하늘을 보면 뭐가 보일까? 아마 시야가 극도로 넓어지면서 세상이 보이고, 다른 사람이 보이고, 환경이 보이고, 심지어 우주가 보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감정이 감정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상적인 예시이다. 감정은 감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감정은 인간이 어디를 보며, 무엇을 보며,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에 영향을 미친다. 행복은 인간의 시야를 넓혀주고, 나무보다는 숲을 보게 만들지만, 불행은 인간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숲보다는 나무를 보게 만든다. 행복한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떤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더 큰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보려고 하지만, 불행한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떤 사건의 겉모습에만 매달린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퍼즐 전체에 대한 큰 그림이 있지만, 불행한 사람에게는 퍼즐이 모두 조각나서 혼란스럽거나, 조각 하나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심리학 실험을 통해서도 밝혀진 바 있다.


*출처: Fredrickson & Branigan (2005)


긍정 심리학자 프레드릭슨(Barbara L. Fredrickson)과 브레니건(Christine Branigan)은 위 그림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래의 두 패턴 중에서 가장 위에 있는 패턴과 가장 유사한 것은 어느 것입니까?]


라고 말이다. 일단 가장 위에 있는 그림을 보자. 사각형 세 개가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삼각형 모양이다. 즉 세부 구성 요소는 사각형인데, 큰 그림으로는 삼각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아래 두 그림을 보자. 먼저 왼쪽이다. 삼각형 세 개가 있는데, 전체적으로도 삼각형이다. 다음으로는 아래 오른쪽이다. 세부 구성요소는 사격형으로 가장 위에 있는 패턴의 구성요소와 같지만, 전체적으로는 사각형이다.


여러분은 아래 두 그림 중 어느 것을 가장 위의 그림과 유사하다고 평가할 것인가?


세부 구성요소는 다르지만, 전체적인 모양이 비슷한 왼쪽인가?

세부 구성요소는 같지만, 전체적인 모양에서는 차이를 보이는 오른쪽인가?


별도의 조치 없이 이렇게만 물어보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반반씩 답이 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들은 세부 구성요소를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만약 이 질문을 하기 전에 참가자들의 기분을 좋게 하거나, 나쁘게 만드는 조작을 했다면 어떨까? 일부의 참가자들에게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여주면서 기분을 좋게 만들고,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아주 슬프고 우울한 드라마를 보여준다면 그것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까?


사실 연구자들이 한 것이 딱 이런 식이었다. 실험 참가자들 중 절반에게는 위 질문을 하기 전에 기분을 좋게 하는 비디오 클립을 보여주었고, 다른 절반에게는 기분을 나쁘게 하는 비디오 클립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긍정 정서가 유발된 사람들은 세부 사항이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유사한 왼쪽이 유사하다고 답변한 반면,

부정 정서가 유발된 사람들은 세부 사항이 같지만, 전체적으로 다른 오른쪽이 유사하다고 답변한 것이다.


아마 당신도 이 실험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수 있다.


평상 시라면, 세부 사항에 주목하면서 오른쪽을 고르던 사람도

이 글을 읽기 전에 기분이 좋았다면, 왼쪽을 골랐을 수 있고,


반대로 평상시에 큰 그림에 주목하면서 왼쪽을 고르던 사람도

이 글을 읽기 전에 기분이 나빴다면, 오른쪽을 골랐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정서는 순간적으로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영역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긍정 정서는 나무보다 숲을 보게 한다. 전문 용어로 긍정 정서는 전역적 주의(global focus)를 기울이게 만든다. 부정 정서는 숲보다 나무를 보게 한다. 전문 용어로 부정 정서는 국소적 주의(local focus)를 기울이게 만든다.


그럼 우리 삶에서는 전역적 주의와 국소적 주의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심리학자들이 일관성 있게 발견해온 것은 전역적 주의, 즉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것이 인생에서 더 중요하고, 인간의 행복에도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진화적으로도 그렇다.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인간의 생존과 번영에서 매우 중요했다. 오죽하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되게 만드는 능력이 바로 큰 그림을 보는 능력, 추상화 능력이라고 하는 학자들이 있겠는가.


행복해지고 싶은가? 그럼 큰 그림을 보려고 노력하자. 그것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으니까.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 어렵다면, 일단 자신의 기분을 조금은 개선할 수 있는 건전한 활동을 하라. 그리고 기분이 좀 개선된다면, 그때는 조금 편하게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행복해야 큰 그림을 보게 되고,

큰 그림을 보게 돼야 행복하다.


이는 계속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면서 선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불행하면 조각만 보게 되고,

조각만 보게 되면 불행하다.


이것도 계속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당신은 어떤 고리를 만들고 있는가? 선순환인가? 악순환인가?


*참고문헌

Fredrickson, B. L., & Branigan, C. (2005). Positive emotions broaden the scope of attention and thought‐action repertoires. Cognition & Emotion19(3), 31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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