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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은 Nov 16. 2018

‘자기 언어’로 글을 쓴다는 것

1-1. 자아를 찾아가는 글쓰기

“전업맘이 되어 제 손으로 십 원 한 장 벌 수 없고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제 자아를 분출할 길 없는 형편이 되다 보니, 유일한 해방구는 제가 가진 ‘숙련기술’로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결국 10년 이상 해왔던, 글을 끼적이는 일이었습니다.”


2016년 9월 27일, 두 번째 책 《요즘 엄마들》의 출간 소식을 전하면서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오래 전에 썼던 이 글귀가 떠오른다. 글쓰기가 절실해지기 시작했던 당시의 심정을 불러내는 것 같아서다.


10년간 기자로 일해오던 회사에 사표를 낸 지 만 3개월이 지나던 때였다. 그때 내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오랫동안 삶의 전부였던 기자로서의 일과 삶을 포기하고, 하루아침에 사회적 이름을 잃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어 양자택일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막상 퇴사를 하고 나니 알 수 없는 우울함과 무력감이 밀려왔다. 나날이 예쁘게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그 행복의 크기가 커지는 만큼 나의 존재는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공존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내 안의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나는 왜 괴로운가. 내가 처한 현실은 무엇인가.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개선이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때로 개인적인 것과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엉키고 뒤섞였다. 내 안의 불편한 감정에 귀 기울이고 이유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다단했다. 일일이 적어두지 않으면 간신히 붙잡은 단서들이 휘발되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제대로 살기 위해, 나는 써야만 했다.


다행히 나는 글쓰기에 관한 한 ‘숙련기술자’였다. 10년간 일간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매일같이 현상을 취재하고 사실을 수집했다. 모은 글감을 토대로 글의 논리를 구성하고 정해진 시간 내에 기사를 마감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그 경력을 토대로 단행본 작업을 몇 차례 할 기회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는 내게 일종의 기술이 되었다.


어느 기술과 마찬가지로 글쓰기 역시 숙련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쓰고 고치는 훈련을 거듭하다보면, 어느새 세상에 내놓아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을 만큼의 실력은 연마할 수 있다. 글의 대략적 논리와 구조가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구상되고, 뼈대에 살을 입힐 글감의 재료를 골라내는 일이 어렵지 않아진다. 이른바 ‘글쓰기 근육’이 생기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자 시절을 돌이켜보면 내가 다소 인공적인 방법으로 글쓰기 근육을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정해진 출입처와 뻔한 취재진, 신문기사라는 규정된 틀과 오랫동안 정형화된 기사 형식. 새로운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뉴스(news)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대체로 일정한 틀로 작성된 기사만이 상품가치를 지닌다.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건만, 언론 현장에서는 다양한 글쓰기 모델을 실험하고 구현하는 데 한계가 많았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독자들이 흥미롭게, 또는 몰입해서 읽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그리 크지 않았다. 대중매체는 태생적으로 일방향의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삼기에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글쓰기가 주류를 이뤘다.


비록 인위적인 환경에서 다져진 기술이라 할지라도, 내 글쓰기 근육은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되었다. 우선 글을 쓰는 데 큰 두려움이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거칠 것이 없었다. 쓰고자 하는 글의 방향을 찾고 필요한 정보량을 계산해 글을 완성하기까지, 나의 숙련기술은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기자로서의 글과 이후의 글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바로 ‘나의 언어’다. 사실 기자 시절 이름 석 자를 걸고 썼던 수많은 기사들 가운데 나의 언어로 쓴 글은 몇 개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성심성의껏 취재하고 깊이 천착해서 아직도 애착이 큰 몇몇 사안에 대한 기사와 나의 생각을 담아 쓴 칼럼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기사들은 그저 퇴사한 전 직장의 자산이자 공적 저작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 괴팍한 데스크(편집국 내에서 취재 방향을 정하고 기사를 윤문하는 기자)를 만나면 글의 논리구조는 물론 필요한 팩트까지 지시 받아 기계적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나의 언어로 내 글을 써보지 못한 회한은 뒤늦게 나를 재촉했다. 펜을 놓고 자아가 사라져버리는 기분이 극에 달할 무렵, 나는 어떻게든 나의 언어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소리 내어 말할 목소리를 잃어버렸다고 느낄 때, 내 안의 모든 것을 더듬어 나의 언어를 끄집어내고자 애썼다. 언어를 잃어버린 삶은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공포가 엄습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처한 현실을 하나하나 글로 풀어가면서 불안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상황을 객관화할 수 있었고, 무엇이 문제인지 확신할 수 있었으며, 과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답에 근접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냉엄한 현실과 거대한 벽을 인식하면서 오히려 막막해진 적도 있지만, 적어도 장님 코끼리 만지듯 막연하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의 존재감이 훨씬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결국 자기만의 언어를 갖는 일은 자신의 삶을 되짚고 성찰하고 돌파해가는 일이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내기 위해 가장 절실한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은유의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마주한 이 문구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 막힌 삶을 글로 뚫으려고 애를 썼다. 스피노자의 말로 외적 원인에 휘말리고 동요할 때, 글을 쓰고 있으면 물살이 잔잔해졌고 사고가 말랑해졌다. (…) 어렴풋이 알아갔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임을. 혼란스러운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지, 덮어두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님을 말이다.”


그의 말처럼, 글에 집중할수록 나의 고통과 불안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 보다 뚜렷해졌다. 곱씹을수록 고통과 불안의 강도는 잦아들었고, 삶을 개선하려면 무엇을 건드려야 하는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혼란은 줄어들었고 남은 것은 무엇을 어떻게 행하며 살 것인지에 대한 또 다른 과제였다. 그 과제는 무겁고 당장의 현실을 개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때로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현실을 바로 마주하는 일은 내 삶의 완결성을 높여주었다.


글쓰기 숙련 노동 10년을 넘기며, 나이 마흔을 앞두고서, 삶이 막힌 길 위에서 나는 뒤늦게 찾아 나섰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글을 통해 나는 나의 삶을 직시하고, 수용하고, 넘어서고자 한다. 나의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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