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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은 Dec 07. 2018

‘그림 그리듯’ 취재하고 쓰기

2-1. 저널리즘 글쓰기

“형님, 사건 있습니까?”


2005년 한 겨울의 새벽, 기자 명함을 처음 판 후 서울 서대문경찰서의 문을 두드려 건넨 첫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나보다 한 달 앞서 입사한 다른 언론사의 수습기자로부터 들은 노하우였다. 최대한 ‘초짜’ 같지 않아 보이게끔 형사들을 “형님”이라는 ‘업계 용어’로 부르고, 이야기가 될 만한 사건의 유무에 대해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무심한 듯 날카롭게 잽을 날리듯 물을 것.


지금 생각하면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신참 수습기자가 아무리 꾸미고 잰 체 한들 뭘 얼마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겠느냐마는, 그때는 내가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들키지 않는 것이 지상최대 과제였던 것 같다. 동시에 내면적으로는 이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대부분의 지식과 정보가 취재 현장에서 하등 쓸모없는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 지난한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다.


수습기자 교육 프로그램 ‘하리꼬미(はりこみ, 잠복한다는 뜻으로 기자들이 경찰서에서 숙식하며 사건 사고를 취재하는 일)’. 당시 내게 세상은 서울시내 31개 경찰서를 구역별 9개로 나눈 ‘라인’으로만 존재했다. 매일 밤과 새벽마다 택시를 타고 라인을 도느라 하루 3~4시간씩 자면서,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을지 모를 사건을 놓칠세라 전전긍긍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사건 담당 기자를 ‘사쓰마와리(察回의 일본식 발음)’라고 부르는 이유는 경찰서를 무한히 돌며 취재하는 일본식 관행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단련시킨다는 명목으로 극한 상황에 몰아넣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전근대적 도제식 교육. 이제는 비인권적 구습이라며 많은 언론사가 없애고 있는 ‘하리꼬미’를 통해, 반백 년 넘는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의 기자 집단이 길러져 왔다. “수습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교육 지침으로 여겨질 만큼 인권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언론과 경찰이라는 두 남성 중심적 조직 사이에 마련된 시스템인 만큼 성별을 불문하고 경찰을 무조건 ‘형님’이라 부르라고 가르치는 성차별도 거리낌 없이 시연해온 체제. 지금 와서 그 시절을 추억처럼 소환하고픈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시에 내가 깨달은 취재의 ABC는 지금도 글을 쓰는 데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있기에 이렇게 기억을 꺼내본다. 글의 재료를 수집하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초적 기술을 이때 체득했기 때문이다.


수습기자 시절 선배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얘기 돼?”였다. 그 질문에 명료하게 답하려면 사건이 기사로서 가치가 있는지, 기사를 쓰기 위해 충분한 취재가 되었는지, 주제와 논리가 선명한지 등 여러 판단을 해야만 한다. 허투루 일하다 보면 질문에 답할 수가 없다. 질문과 답변을 거듭할수록, 그간 이야기를 소비만 해온 입장에서 이야기를 생산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차원의 일인지를 깨달았다. 또한 그 과정 속에 얼마나 많은 유·무의미한 노동이 수반되는지 알게 된 것도 충격이었다.


그렇게 쌓은 취재기자로서의 경험이 내게 남긴 유산이 있다면 ‘그림 그리듯’ 사실을 수집하는 일이다. 사실에 가장 근접한 기사를 완성하려면, 논리적 흐름에 막힘이 없도록 필요한 사실 하나하나가 적확한 위치에 놓여 있어야 한다. 기사가 아니더라도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개한다는 것은 이야기의 전개도 위에 논리의 덩어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과도 같다. 필요한 재료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엮어낼 것인지, 총체적으로 그려낼 그림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글은 비로소 완성을 향해 달려간다.


이를 위해 사건 사고에 대해 취재해 기사를 쓰는 것은 매우 유용한 훈련이었다. 기사란 사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독자에게 최대한 사실에 근접한 이야기를 제공하는 글인데, 사건을 직접 목격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기자는 대체로 사후 취재로 이야기를 완성한다. 한두 가지 단서만 있거나 아예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미 지나간 사건을 하나하나 복원해야 하는 것이다. 취재를 허투루 하거나 거짓으로 하면 자연히 이야기에 구멍이 생기기에, 사실만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연습은 상당히 고난이도이지만 그만큼 성취도가 높다. 결국 기사란 이야기의 빈 구멍을 오로지 취재를 통해 그림 퍼즐을 맞추듯 메워낸 결과물이다.



물론 이 작업이 결코 쉽지 않다. 예컨대 절도 사건이 벌어졌다고 가정해보자. 아래는 수습기자라면 한 번쯤 써봤음 직한 가상의 기사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10일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분유를 훔친 김모씨(35·여)를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두 달 전부터 지난 9일까지 자신이 일하던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편의점에서 분유 3통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생활고로 생후 10개월인 딸에게 먹일 것이 없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204자짜리 3문장의 기사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기자가 확인하고 취재해야 하는 사실은 몇 개쯤 될까. 우선 경찰서에서 사건기록부를 뒤적이다 ‘절도’라는 사건을 발견한 기자가 담당 형사에게 끈질긴 질문 공세를 해야 한다. 이름과 혐의 외에 자세한 정황은 알 길이 없으니 거의 모든 것이 다 백지 상태다. 6하 원칙은 기본. 김씨(누가)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훔쳤는가? 분유라고? 왜 분유를 훔쳤는가? 어떻게 훔쳤으며 어쩌다가 잡혔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만으로 위의 기사를 쓸 수 있을까? 없다. 위의 질문에는 김씨가 해당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종업원이었다는 사실, 김씨의 아이가 생후 10개월이라는 사실, 그동안 생활고에 시달려온 사실, 훔친 분유가 모두 3통이라는 사실 등이 빠져있다. 이 사건을 기사로 만들어주는 것은 6하 원칙에 따른 질문에는 담기지 않은 김씨의 ‘사연’이다. 6하 원칙만 취재하고 물러선 기자라면, 김씨의 개인사를 추가로 취재해 기사로 완성한 기자에게 이른바 ‘물을 먹는(’낙종하다‘는 뜻의 기자들의 은어)’ 참사를 입게 될 것이다.



위의 기사를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욱 확장시킬 방법은 없을까?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다. 김씨는 경찰에 뭐라고 진술했는가? 남편을 비롯해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다른 가족은 없는가? 아르바이트를 할 때 아이는 누가 돌봤는가? 아이의 영양 상태는? 편의점에서는 얼마 동안 일했는가? 아르바이트생의 시급은 얼마인가? 최저임금 이상의 돈을 받고 있었는가? 분유의 브랜드는 무엇이었나? 3통이면 가격은? 편의점에 CCTV는 없었는가? 편의점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나? 편의점 주인은 어떻게 경찰에 신고하게 됐는가? 김씨의 절도 경력은 이번이 처음인가? 점주는 선처할 생각은 없었는가?…. 단순 절도 사건이라는 기록에서 출발하더라도 위와 같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 수 있다.


질문과 답변이 더해지고 시선이 확장되면, 기사의 주제 역시 넓어진다. 방향과 규모도 달라질 수 있다. 그림 그리듯 취재한다는 말은 결국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자 노력이기도 하다.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보다 세밀한 장면까지 포착하는 취재를 통해, 작은 그림이 점차 큰 그림으로 바뀌기도 한다. 놓치기 쉬운 작은 단서 하나를 발견해 빈 구멍을 메움으로써 가려진 진실을 끄집어낼 수도 있다.


수습기자 시절 선배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꾸지람 중 하나는 “넌 그게 안 궁금하니?”였다. 최대한 모른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던 어쭙잖은 수습기자가 저렇게 많은 것을 궁금해했을 리가. 그러나 이제는 저 짧은 기사 안에 담기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궁금한 것이 줄을 잇는다.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되면 더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에, 알고자 하는 욕망과 본능이 꿈틀댄다. 사건이란 그저 한 단면일 뿐, 그 이면에는 더욱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더디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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