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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은 Dec 28. 2018

사실이 실종된 시대의 글쓰기

2-4. 저널리즘 글쓰기

요즘 팩트체크(Fact-check) 기사 작성에 많은 시간을 쓴다. 2017년 6월 몇 명의 코파운더(co-founder)들과 함께 만든 회사 <뉴스톱(News True or Fake)>은 국내 최초 팩트체크 전문미디어를 표방한다. 이 매체에서 나는 가짜뉴스를 바로잡거나 뉴스의 맥락을 짚어 사실관계를 설명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 정기적으로 몇 군데 라디오 프로그램의 팩트체크 코너에 출연하기도 해서, 방송 원고를 쓰는 것 역시 팩트체크 기사쓰기의 일환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게 된 팩트체크는 이제 저널리즘의 한 전문 분야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는 ‘폴리티팩트(Politifact)’ ‘팩트체크닷오알지(Factcheck.org)’ 등 공신력을 갖춘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도 다양하다. 한국에서도 19대 대선을 전후로 많은 가짜뉴스가 생산·유통되었고, 주요 언론사들마다 팩트체크 코너를 신설하는 등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팩트체크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용어까지도 심심찮게 쓰이고 있다.


사실 확인은 언론의 오래된 본령이다. 사실을 토대로 기사를 쓰는 것이 기자들의 일이다. 따라서 기자로서는 팩트체크라는 일이 새롭지 않다. 그러나 왜 지금, 팩트체크가 주목을 받게 되었을까? 나는 그 이유가 급격하게 변화한 언론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변화란 독자들의 뉴스 소비 유형 변화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언론사 내부의 고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뉴스 소비 시장의 무대는 이제 온라인으로 옮겨졌다. 요즘 뉴스 소비자들은 주로 인터넷 포털 검색 사이트와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 소비의 양태 역시 개인적이고 선별적이다. 2018년에 발표된 ‘2017 언론수용자의식조사’를 보면, 연도별로 이용률이 높아지고 있는 미디어는 모바일 인터넷이 유일했다. 그러나 신문·방송 등 전통적 뉴스 생산자들은 여전히 신문 지면과 방송 채널이라는 기존 플랫폼을 주된 업무의 기반으로 삼는다. 소비는 대부분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데도, 생산자가 온라인 시장을 주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이런 모순은 결과적으로 온라인 뉴스 시장을 질적으로 빈곤하게 만든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온라인이란 신문 및 방송 기사를 그대로 복사해 담는 유통의 공간 정도로만 여긴다. 정치·사회·경제 등 주요 취재 부서만을 주류로 인식하는 언론사의 문화는 매우 공고해서, 온라인에 뉴스를 재가공하는 업무나 독자에게 전달하는 체계에 대한 고민은 하위의 역할로 취급된다. 물론 언론계 내부에서 온라인 혁신에 대한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는 있지만, 조직 문화와 업무 구조를 뉴스 소비 현실에 맞게 온전히 개혁하기에는 역부족이며 한계가 크다.


이 과정에서 온라인 뉴스가 빈약해지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뉴스의 표피를 쓴 채 유통되며, 가짜뉴스가 진실을 덮어버리는 문제가 생긴다. 프랑스 기호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실재가 아닌 가상의 실재, 복제물에 불과한 ‘시뮬라크르(Simulacra)’가 현실을 지배하는 하이퍼 리얼리티(Hyper reality)의 시대를 예고했다. 원본과 모사물의 구별이 사라지고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증식하는 시대. 하이퍼 리얼리티의 시대에는 뉴스 또한 복제에 복제를 거쳐 원본이 사라진 채로 무책임하게 유통되고 소비된다. 이런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근본적 진실을 추구하는 일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지속되자 정확한 사실과 가치 있는 정보에 대한 갈증도 점차 피어나기 시작한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뉴스가 정말 믿을 만한 정보인지 의심하게 된 것이다. 소비자들은 뉴스 검색 창에서 의미 없는 클릭을 수차례 한 뒤에야 제대로 된 정보를 건질 수 있는 현실을 자각하고 있다. 이런 현실 때문에 뉴스의 전후 맥락, 사실의 근거가 되는 원 자료, 판단에 도움이 될 만한 고급한 정보에 목마르기 시작했다. ‘뉴스를 감별하는 뉴스’가 필요해진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뉴스의 위기가 곧 사실의 위기는 아니다.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 시스템의 위기라고 보는 편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뉴스 생태계가 변하고 미디어 환경이 달라진다 하더라도, 사실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폭발하는 정보량 속에서 사실을 일별하고 왜 그것이 사실인지를 증명해내는 것이 요즘 저널리스트들의 주요한 업무가 되고 있다.


온라인 시대의 팩트체크 기사는 ‘하이퍼링크(Hyper-link)’가 핵심이다. 사실이 진짜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 근거 자료를 남겨둬야 하기 때문이다. 팩트체크 기사를 쓰다보면 한 기사당 최소 10개 이상의 원 자료를 링크로 연결하게 된다. 막상 해보면 상당히 수고로운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원 자료를 찾다보면, 뉴스를 통해 이미 기정사실화된 사실들의 근거가 얼마나 허약한지 새삼 확인하곤 한다. 그리고 기자로서 지난 세월 동안 허술하게 기사를 써왔던 과거를 반성하게도 된다. 통계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기사화해 본질을 왜곡하는 일, 전체 본문 가운데 입맛에 맞는 부분만 발췌해서 맥락을 생략해버리는 일, 가짜뉴스에 대한 검증 없이 무분별하게 뉴스를 유통하는 일….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게 오늘날 뉴스 시장의 현실임을 실감한다.


팩트체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기사에는 곧바로 비판의 돌이 날아온다. 온라인은 무한한 소통의 지대이며, 쌍방향성이 온라인의 핵심적인 특성이기 때문이다. 독자에 대한 긴장감과 경외심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전통 미디어에서 훈련받은 기자들은 이런 경험과 교육이 부족하고 대응 모델 역시 없다. 정보를 토대로 하는 미디어가 추구해야 할 소통 능력의 핵심은 결국 투명성이다. <뉴스톱>은 기사를 발행한 후에도 내용상 오류를 지적하는 독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영해서 기사를 수정한 후 그 수정 내역을 기록하는 것을 방침으로 한다. 오류를 인정하고 수용해서 보다 나은 사실에 가닿는 것이 최선의 소통이라고 보는 것이다.



한편으론 원초적이고 실체적인 사실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에 회의감을 느낀다. 누군가의 말은 발췌되고 짜깁기되어 원래 취지와 맥락을 잃어버린 채 뉴스 시장을 떠돌아다닌다. 팟캐스트와 소셜 미디어가 유행하고 누구든 1인 미디어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의견 과잉의 시대. 해석과 논쟁만이 난무한 현실 속에서, 사실과 의견이 구분 없이 뒤섞인 혼란이 이어진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가공되지 않은 현장의, 날 것 그대로의 사실을 접하기는 오히려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기자들에게는 식상한 말로 여겨지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문구가 이제는 더 이상 식상할 수 없는 현실을 체감한다.


팩트체크 기사를 쓰다가 가장 완결성을 느끼는 때를 생각해본다. 그것은 인터넷 자료를 샅샅이 뒤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명징한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 아니다. 바로, 아무리 찾아보아도 온라인 공간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사실을 현실 세계에서 직접 취재하고 확인해서 기사에 한 줄 근거를 제시하는 때다.


언론 환경이 바뀌어 새로운 저널리즘의 혁신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나 역시 그런 목소리에 힘을 싣는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외피를 바꾸는 일만으로는 답을 찾기 힘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언론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언론이 해온 가장 핵심적이고 전통적인 기능에 천착할 때에만 비로소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닐까. 현장을 취재하고 최전선에서 사실을 확인하는 감시자로서의 역할. 이 핵심을 놓친 채 허공을 헤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사실은 어디에 있는가? 알 수 없다. 다만 사실로 향하는 길은 사실을 추구하는 열망과 노력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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