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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은 Dec 21. 2018

질문하지 않는 사회

2-3. 저널리즘 글쓰기

2007년 정치부 국회팀에 처음 발령이 났을 때였다.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을 취재하는 여당팀의 막내 기자, 이른바 ‘말진’이었던 내가 처음 맡은 임무는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회의를 취재해 선배에게 보고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나는 당시 각 당 원내대표의 이름과 얼굴도 매칭하지 못할 정도로 정치에 문외한이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정치인들의 말을 다 받아 적는 것이 무척 버거웠는데, 더 큰 문제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던 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일일이 “저 사람이 누구죠?”하고 물어보는 것도 기자로서 남세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결국 발언자의 이름도, 발언 내용도 충분히 기록하지 못한 채 패잔병처럼 기자실로 돌아온 나는 온종일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렇게 시작한 정치부 첫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해 여름, 한나라당은 17대 대통령 선거 후보 당내 경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 양 진영으로 갈라져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전쟁터와 같은 상황 속에서 정치권에 몸담은 이들은 각 진영 내 주요 인물별 히스토리와 관계, 정치적 구도 등을 훤히 꿰고 있었다. 누가 핵심 참모이고 실세인지, 누가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는지, 각 계파별로 서열은 어떻게 정리되는지…. 여의도는 여의도만의 세계와 그 안의 질서, 언어가 따로 존재했다. 이런 전장에서 누가 누구인지조차 잘 모르던 초짜 기자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하루는 국회팀장이던 선배가 나를 데리고 의원회관을 한 바퀴 돌았다. 선배는 친(親)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의 핵심 국회의원들에게 새로 온 후배기자를 소개하며 취재를 했다. 당시 따로 만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던 대선 경선 후보 시절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처음 마주한 것도 선배를 통해서였다. 박 전 대통령이 타는 엘리베이터를 선배 손에 이끌려 비집고 들어가 처음 얼굴 도장을 찍었는데, 평소 수행비서가 철저하게 접근을 막기 때문에 그와 한 엘리베이터에 동승하는 것이 얼마나 예외적인 일인지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선배는 취재원들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반절 이상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내밀한 여의도 정치판의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그 많고 많던 대화 중에 내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선배의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랬어요? 몰랐어요. 조금만 더 이야기해줘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정치판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나는 모를 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생각으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거나, 조금이라도 아는 게 생기면 어떻게든 아는 티를 내려고 애썼다. 하수(下手)도 그런 하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바닥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판을 훤히 꿰뚫다시피 하던 선배는 말끝마다 “잘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자연스레 질문 끝에 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더 많았다.


선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질문하는 사람이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기에 더 많이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질문한다는 것은 ‘내가 이것까지는 알고 있는데, 그 이상으로 더 알고 싶다’는 뜻이다. 질문이 있어야 알고 있는 사실들 사이의 디테일이 채워지고, 더 깊고 넓게 확장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질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기존에 알고 있던 것, 그동안 고민해온 것이 많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높다.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자세는 자신이 모르는 문제라면 그 누구라도 그 답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질문은 이렇게 해석되지 않는다. 질문이란 자신의 ‘밑천’을 드러내는 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더 많은 진실을 알고자 하는 질문자의 선한 의지에 주목하기보다, 그 사람이 어디까지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는지 평가하는 데 더 익숙하다. 타인과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데 익숙하다보니 ‘모른다’는 선언은 무시와 멸시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모르더라도 차라리 의뭉스럽게 입을 닫는 편이 낫다는 생각 속에 살아간다.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우리에게 질문은 일상이 아니고 낯선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튀지 말라고, 조용히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면 중간은 간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질문은 정해진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고, 체제에 반기를 드는 일로 터부시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은 질문하는 자, 말하는 자를 소외시키는 이 사회의 경직된 문화를 더욱 공고화한다.


2010년 9월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폐막식에서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폐막연설 직후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요청했다. 하지만 어떤 한국 기자도 손을 들지 않았고, 질문 기회는 결국 중국 CCTV의 기자에게 돌아갔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궁금해하는 사실을 질문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기자들조차, 질문과 취재를 위한 공식 석상이었음에도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질문 없는 우리 사회, 과연 미래가 있을까.



질문이 없으면 답도 없다. 아무도 묻지 않으면 누구도 답하지 않는다. 질문하는 순간부터가 문제 해결의 시작이지만, 질문을 하지 않으면 문제는 늘 정체된 상태에 머문다. 질문이 없다면 이미 존재하는 문제를 인식하기조차 어렵다. 문제를 인식할 수 없으면 해결도 없고 변화도 없다. 기존의 체제와 질서가 흔들릴 일도 없다. 사회는 정체되고 고인 물처럼 탁하게 병들어간다.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은 어쩌면 누구도 질문하지 않기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에 해법을 찾지 못하고 곪아버린 일들은 아닐까.


글을 쓰는 일 역시 질문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던 사실에 대해 묻고 답을 구하는 일에서부터 글쓰기의 의지가 발현된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일, 타인에게 묻고 객관적 답을 구하는 일. 그 결과를 오롯이 기록하는 것이 결국 글쓰기다. 그 때문에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시인할 용기와 궁금한 것을 질문할 의지를 키워야 한다.


10여 년 전 선배가 질문하는 모습을 본 이후, 나는 지금까지 줄곧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거나 “잘 모르는 내용”이라는 고백을 머뭇거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좀 자세히 알려 달라”, “어려우니 더 설명해 달라”는 질문도 서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보다, 잘 모르면서 아무 질문을 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몇 년간 수백 명에 달하는 국회 출입기자들과 얽히고설켜 일하다보니 질문하지 않는 기자들의 ‘견적’을 대충은 알아차리는 눈이 생겼다. 알아서 안 묻는지, 몰라서 못 묻는지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또 나를 보며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결국 담백하고 솔직한 질문만이 스스로를 당당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빨리 받아들일수록 좋다. 살면서 고수(高手)는 못 되더라도, 하수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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