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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은 Jun 10. 2024

헤드헌터의 세계

평생 N개의 직업을 갖고 살아갈 미래

고등학생 때부터 기자를 꿈꿨다. 직업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하던 때, 내가 원하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바로 직업이 돈을 벌기만을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는 것이었다. 직업인으로서 일을 하지만, 무언가 사회와 호흡하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 그 생각이 나를 기자라는 꿈으로 이끌었다.


청소년기에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 <업 클로즈 앤 퍼스널(Up close and personal)>이나,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공중파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의 영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해 졸업 직후 종합일간지 기자가 되었으니, 나는 운 좋게 꿈을 이룬 사람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다.


그 시절, 꿈을 이야기하는 것은 늘 즐거웠다. 친구들의 장래희망을 듣는 일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고등학생 시절, 수업 시간 중에 반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꿈을 발표하던 때가 기억이 난다. 어떤 친구는 평소 자신의 모습과 딱 맞아떨어지는 장래희망을 발표해 고개를 끄덕이게 했고, 또 어떤 친구는 전혀 의외의 직업을 말해 놀라웠던 기억도 난다.


그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다. 그녀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직업을 자신의 장래희망이라고 소개했다. 그 친구가 말한 자신의 미래 직업이 바로 헤드헌터였다. 당시만 해도 아직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현존하던 시절.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당시의 그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헤드헌터(Head Hunter). 원래의 의미는 원시 부족들이 적의 머리를 잘라 오는 사냥의 의식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지만, 현대에서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대신 찾아 연결해 주는 대행업체 혹은 전문가를 일컫는다. 처음 기자가 되었을 때에만 해도 나는 평생 기자로 일할 거라고만 생각했기에, 내가 헤드헌터를 만날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자의 반 타의 반으로 2016년에 첫 사표를 낸 뒤, 이직의 세계와 헤드헌터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세상은 넓고, 헤드헌터의 세계 또한 넓었다. 내가 10년 넘게 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사람들은 이직을, 그것도 헤드헌터의 도움을 받아가며 경력을 업그레이드하며 이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헤드헌터 시장은 갈수록 더 넓어지고 있었다.


헤드헌팅의 프로세스는 대략 이렇다.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놓으면 다양한 헤드헌터 업체로부터 연락이 온다. 오픈된 포지션에 관심을 보이면 후보자에게 상세한 JD(Job Descriptions)를 보내주고, 후보자가 지원 의사를 밝히면 채용 프로세스가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헤드헌터는 구인, 구직자 사이에서 양자 간의 이슈를 해결하거나 서로 껄끄러울 수 있는 문제를 조율하는 조정자가 되기도 한다.


헤드헌터는 매칭을 성사시키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실적이 높을수록 수익을 얻는 구조다. 그렇기에 어떤 헤드헌터는 무리하게 매칭을 성사시키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직 경험이 많던 한 지인의 경우, 몇 번 도움을 받았던 헤드헌터가 한 번은 자신의 동의도 없이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내버렸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이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 취급을 받은 것 같아서 불쾌했다면서.


하지만 무작정 채용이 성사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헤드헌터를 통해 채용이 성사되더라도, 후보자가 이후 얼마간 직을 유지해야만 헤드헌터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경우가 통상적이다. 그렇기에 구인 구직 당사자가 진정으로 만족하는 채용이 성사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렇기에 롱런하는 헤드헌터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신뢰 형성이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힌다.


물론 대부분의 헤드헌터들은 프로페셔널이다. 구인을 하는 고객사와 구직을 하는 후보자 사이에서 양자 니즈를 맞추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내가 접해본 헤드헌터 중에도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다. 그중 한 분은 내가 지원하려는 분야만 10년 넘게 다뤄온 분이었는데, 고객사에서도 꾸준히 그 헤드헌터에게 일을 의뢰할 만큼 신뢰도가 높았다.


그는 나를 사무실로 초대해 오픈된 포지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고, 기존의 후보자와 합격자, 면접 당시 질문과 기업의 분위기까지 면밀하게 분석해 리뷰까지 해주었다. 결과적으로 해당 직무와 맞지 않아 면접을 포기했고 헤드헌터를 통해 이직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다른 조직으로 적을 옮긴 뒤에도 나의 업데이트된 이력 정보를 그에게 전달했다. 다음에도 그 헤드헌터가 연락을 해온다면 기꺼이 그를 믿고 해당 공고에 지원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미국의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앞으로 “2030년에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사람은 평생 8~10개 직업을 바꿔가며 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직과 N잡은 앞으로도 더욱더 많이 늘어날 것이고, 다양한 형태의 헤드헌팅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다. 이미 헤드헌터의 역할을 사람이 아닌 플랫폼이 대신하며 온라인 기반으로 옮겨가는 서비스도 활성화되어 있다. 헤드헌팅의 세계가 보다 체계화되고 질적으로 고급화된 서비스가 많이 출현할 것으로 기대한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 헤드헌터를 꿈꾸던 그 친구는 지금 헤드헌터가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언젠가 그녀로부터 훌륭한 기업의 JD를 받게 되는 날이 온다면 어떨까? 서로 각자의 꿈을 이룬 것에 대해, 그동안 일어난 인생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어떨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인생에서 아주 인상적인 한 장면 중 하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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