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공'의 눈으로 본 직장 생활
조직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공무원은 크게 ‘늘공’과 ‘어공’으로 분류할 수 있다. 늘공은 ‘늘 공무원’의 줄임말로 공무원 시험을 거쳐 정년이 보장된 신분의 공무원을 말한다. 어공은 ‘어쩌다 공무원’의 줄임말로, 특정 직무와 직책에 채용되거나 임명된 임기제 공무원을 아울러 말한다.
때로 공직 선거 과정에서 공을 쌓은 인사가 어공으로서 자리를 꿰차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런 화려한 과정을 거쳐 어공이 된 것은 아니다. 언론사 경력을 토대로 중앙 정부부처의 정책 홍보를 전담하는 임기제 공무원 경력 채용에 응시해 임용되었다.
공무원 사회의 주류는 당연히 늘공이다. 일단 절대적인 숫자가 늘공이 많다. 예외적으로 청와대만은 늘공과 어공이 적절히 섞여있는 특수한 조직이다. 어공은 특수한 전문 분야에 투입되어, 공무원 사회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자극을 주는 존재로 역할한다. 공무원 사회는 안정적이고 조직력이 뛰어난 늘공과, 전문적이고 역동성이 장점인 어공이 어우러진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어공으로서 늘공들과 어울려 일하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어공은 늘공이 주류인 사회에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존재로 살아간다.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질서가 엄연히 존재한 가운데, 어공들은 그 주류에서 비켜선 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나는 새로운 조직 안에서 객관적 관찰자 또는 날카로운 조언자로서 역할하기를 기대받았다. 어공은 그러라고 뽑는 거고, 그래도 되는 역할이다. 연못에 풀어놓는 메기 같은 역할이랄까.
공무원 사회의 주류인 늘공들도 크게 두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늘공 중에는 안정적인 평생직장이라는 조직 속에서, 사고 없이 제때 승진해 무난하게 정년퇴직하는 것을 최고 가치로 두는 부류가 있다. 반대로, 그동안 해오던 업무와 다른 새로운 미션이 주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깥 사회와 꾸준히 소통하고 싶어 하는 부류도 있다. 나는 이 두 부류가 조직 내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구경꾼의 관점에서 꾸준히 관찰할 수 있었다.
일단 전자의 경우, 그들은 나 같은 어공에게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승진이나 사내 정치를 위해 나 같은 사람은 득이 될 게 별로 없어서다. 자신의 계획이나 일정한 타임라인대로 상황이 컨트롤되길 바라기에, 나처럼 엉뚱한 질문을 하거나 새로운 관점을 내보이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또 그걸 대놓고 티 내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닫힌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후자의 경우, 그들은 나 같은 어공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들은 고인 물처럼 거대한 조직 안에서도 새로운 일을 도맡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성장하는 데 가치를 둔다. 밖에서 굴러온 돌을 잘 활용해 외부와의 연결고리로 삼거나, 궁극적으로 제 편으로 만들고자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대체로, 자연스럽게 후자의 늘공들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공무원 사회를 단적인 예로 들었지만, 어느 조직이건 이런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리고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끼리 잘 어울리곤 한다. 유유상종. 성향이 유사한 사람들끼리 동질의식을 느끼고 뭉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다만 두 부류 중에 어느 쪽이 조직 생활에 더 적합하고 유리한 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전자의 경우 사내정치에 능해 승진 트랙을 잘 밟기도 하고, 후자의 경우 새로운 길을 찾아 조직을 역동하게 하고 개척하기도 한다.
직장 내에서 자신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인지는 성향의 문제도 있겠지만, 선택과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그에 대한 질문을 품고, 늘 스스로 답을 내리고자 애쓰다 보면 어느새 조직 내에서 자신의 ‘위치’가 생기고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이 쌓이고 쌓여, 자신은 어느새 스스로 만들어온 ‘어떤 사람’이 되어 간다.
어공으로서 내가 얻은 중요한 자산을 꼽아보자면, 조직 내 인간 군상을 객관적 시각으로 밀접하고 내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상대와의 관계가 유한하다고 여길 경우, 사람은 그 상대가 자신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며 제 본모습을 내보이곤 한다. 평생 볼 사람도 아닌데, 하면서. 그래서 어공은 많은 것을 내밀하게 관찰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 같다.
그 과정 속에서, 앞으로 다시 새로운 일을 하게 된다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일해야 할 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다듬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려 한다. 꾸준히 질문하고,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고, 모르는 것에 겸허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어쩌다 공무원이 되었던 것은 이력서에 써넣을 경력 한 줄의 의미를 넘어서는, 인생에서 몇 안 되는 귀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