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직러들의 이직법
삶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 중 하나인 이직에 관하여
주변에 이직 경험이 많은 지인이 몇몇 있다. 이른바 ‘프로이직러’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런 좋은 기회를 알고 붙잡는지, 오랜만에 연락을 주고 받을 때마다 경력과 연봉을 업그레이드해가며 좋은 직장으로 이직을 하곤 한다. 그들을 보고 있자면 세상에 이직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이직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선배건 후배건 가리지 않고 ‘프로이직러’들을 만날 때면, 그들을 멘토 삼아 이직의 노하우를 꼼꼼히 묻곤 한다. 그러다 보면 얻게 되는 통찰이 있다. 커리어를 빌드업(Build-up)하는 방법이나 성공적으로 이직을 하는 노하우를 넘어, 일과 인생을 대하는 일종의 태도 같은 것을 배우게 된다. 내가 느낀 대표적인 공통점을 몇 가지만 꼽자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이직에 성공하는 이들은 ‘관계의 중요성’을 안다. 이직의 중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평판이고, 좋은 평판은 더 많은 기회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좋은 평판을 위해 직장 내 ‘라인’을 잘 타거나, 사내 정치에 능해서 ‘인싸’가 되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직장에서는 적당한 아군들과 우호적이고 드라이한 관계를 쌓아가야 한다. 성공적인 사회 생활을 하는 이들은 직장 내 누구와도 적을 만들지 않되, 누구와도 과하게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 한 서치펌(Search Firm)의 평판 관리 리서처로 일하는 후배의 말에 따르면, 평판 조회는 조직에 아주 위험한 수준의 리스크를 걸러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한다. 결국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모두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나쁘게 평가하는 이를 만들지 않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두번째, 일을 잘 해야 한다. 두 말 하면 잔소리인 이 이야기는 개인의 역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 생활에서의 일이란 대부분 혼자 하는 일보다는 팀플레이다. 그러니 일을 잘 한다는 것은 협업을 통해 타인과 함께 시너지를 내며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결국 일을 잘 하기 위해선 타인과 관계를 잘 맺어야 하는 것이 필수조건이다. 이는 첫번째 이야기인 ‘관계의 중요성’과도 연결되는 이야기다.
물론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건 디폴트값이기에 굳이 상세히 언급할 필요가 없다. 사회 생활 저연차 주니어들은 상사의 지시에 따라 한정된 범위의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개인의 역량이 단편적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개인의 역량만으로 따지면 뛰어났던 이들이 연차가 높아지고 관리자급으로 올라갔을 때 좌충우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구기종목 경기에서는 뛰어난 선수 한 명의 단독 드리블만으로는 득점하기 어려운 반면, 팀원 간의 패스나 어시스트,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는 팀플레이가 필요하다. 이 사실을 모른다면 결코 일을 잘 할 수가 없다.
세번째, ‘스토리’가 있다. 이직은 자신이 열과 성을 다해 몸담고 일하던 조직을 뒤로 한 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일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을 좇으며 선택을 일삼는 존재임을 우리 모두 잘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직을 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잇속만 챙기는 사람처럼 보여서는 곤란하다. 기존의 조직에서 이탈해서 새로운 조직으로 적을 옮기고자 하는 데 대한 분명한 동기와 이유가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스토리의 개연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력서 상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이직이나 경력 이동이 있었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자신만의 진솔한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이에 성공한다면 때로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보일 법한 일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흔히 자기소개서를 쓸 때 ‘단점’을 써야 하는 문항에서는 반드시 그것을 극복해 ‘장점’으로 승화시켜 호소하는 기술이 필요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네번째, 운에 맡길 줄 아는 여유를 안다. 출처를 찾을 수 없지만 이직과 관련해 가장 기억나는 비유가 있다. “이직은 마트 주차장에서 자리를 찾는 일과 비슷하다. 내가 찾는 자리가 그때 마침 비어야만 주차를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뜻대로 잘 되지 않을 때, 그리고 의외의 기회와 인연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을 때, 그때마다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잘 맞는 비유를 찾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다.
채용은 ‘누가누가 가장 잘 났나?’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구인을 하는 조직의 니즈, 업무 환경, 팀플레이를 해야 하는 팀원들의 구성, 적정한 연봉에 대한 눈높이 등 모든 것이 들어맞아야만 성사된다. 그렇기에 때로는 후보자 중 가장 잘난 사람은 오버 스펙이라는 이유로, 혹은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해서 빨리 떠날까 봐 탈락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렇기에 이직에 성공하는 것은 운 또는 인연이라는 말이 더 맞을 지도 모른다.
물론, 프로이직러라고 해서 매번 면접의 신, 이직의 신처럼 성공가도만 달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 수많은 무모한 도전을 거쳐서 단 한 번의 성공을 이루어낸다. 하지만 설사 지금 당장 이직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거기에 연연하지 않고 더 좋은 기회와 인연을 기다릴 줄 안다. 타인의 평가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호흡과 리듬에 맞게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는 노하우를 알고 있다.
내가 속한 조직, 내가 가진 명함이 내 모든 것을 대변하진 못한다. 이직은 삶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 중 하나다. 어떻게 하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인생을 만들어갈까 고민하고 해답을 찾는 긴 여정 중의 한 조각이다. 이직을 내 삶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수많은 도전의 과정이라 생각한다면, 그 모든 순간들을 기꺼이 즐길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이직러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