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러 옆에 N잡러
노력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사람
‘어쩌다 N잡러’가 되고 나니, 주변에 N잡러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래도 이직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직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교류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사람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강한 유대감을 느끼고, 관계가 특별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서로 얻는 정보와 이익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첫 사회생활을 신문기자로 시작했다 보니, 기자 출신 N잡러들이 많다. 글로 벌어먹고사는 직업의 특성상, 이들은 대부분 책을 쓰거나 강연을 하고, 또는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시작해 학계로 진출하기도 한다. 기업 홍보 직무에 취직했다가 또 다른 기업으로 이직해 몸값을 부풀린다. 프리랜서로 글을 쓰거나 방송에 출연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전략 기획 분야의 컨설턴트가 되기도 하며,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창업하는 이들도 있다. 야심차게 정계에 뛰어드는 사람도 보았다.
N잡은 대개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해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고유한 영역에서 분명한 실력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면, 언제든지 확장된 기회가 새롭게 찾아올 수 있다. 더군다나 자기 스스로 그 영역을 개척하며 넓혀간다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모든 N잡은 글쓰기에 기반했다. 모든 N잡이 글쓰기라는 숙련기술에서 피어났다. 신문 외에 잡지, 인터넷 신문 등 다른 매체에서의 글쓰기, 방송 원고를 위한 자료 쓰기, 방송 출연 패널로서 말하기용 원고 쓰기, 홍보 담당자로서 보도자료 쓰기, 작가로서 책 쓰기, 강연자로서 강연자료 쓰기 등. 글쓰기라는 원천 기술에서 비롯된 N잡은 이처럼 무한하게 증식해 왔다.
이렇게 N잡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기회만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첫 저서를 집필할 때, 스스로 출판사에 직접 원고를 투고했다. 물론 처음에는 언감생심 내가 책을 쓸 자격이 있을지 자신감이 없었다. 훌륭한 선배 기자들이 높은 전문성과 훌륭한 필력을 토대로 책 출간을 제안받으며 ‘모셔지듯’ 출간하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겸양의 미덕을 발휘한다고 해서, 뛰어난 천재가 아닌 나를 위한 기회를 세상이 만들어 떠먹여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나는 언젠가 쓰고 싶은 첫 책을 내 전공인 저널리즘 분야로 출간하고 싶었고, 2015년 당시 나는 회사에서 온라인 저널리즘과 관련한 부서에서 일하며 얻은 실무적이고 특별한 경험을 상세히 기록하는 것이 의미 있겠다고 판단했다. 학부 시절 전공서적을 많이 출간하던 출판사 두 곳의 문을 두드려, 결국 첫 책을 냈다.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기회는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게 됐다.
또한 N잡러로서의 확장성은 자신이 보유한 풍부한 네트워크에 비례한다. 실력을 쌓으며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쌓인다. 반드시 사교적인 성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잘 수행한 경력이 레퍼런스가 되고, 네트워크의 물꼬가 되어 다른 기회를 불러올 수 있다. 한 곳에서 인정을 받고 나면, 다음 기회를 얻기 위해 넘어가야 할 장벽은 보다 낮아질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권에서는 네트워크를 토대로 한 추천 문화가 매우 잘 형성되어 있다. 한국은 공정성을 담보한다는 생각에서 공채 시스템이 여전히 선호되지만, 채용 시장에서 점차 경력 채용이 늘고 있는 것은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말해준다. 최근 더욱 보편화되고 있는 ‘평판 조회’도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몇 년간 N잡러로서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내 곁에도 N잡러들이 많아진 것 같다. 그들은 모두 연봉을 높여가며 이직을 잘하는 수완가, 경력을 잘 쌓아 새로운 분야에 발을 딛는 도전자,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일을 수행하는 능력자들이다. N잡러 옆에 N잡러. N잡러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사람이다. 내 곁에 다양한 N잡러들이 많아지는 것이 매우 뿌듯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