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의 일상
유연함과 적극성, 가장 중요한 무기
프리랜서로 살았던 시간이 꽤 된다. 2017년부터니까, 벌써 프리랜서로서의 경험도 상당기간 쌓였다. 10년 간 다니던 직장을 퇴사한 후 코파운더로 참여한 매체에서, 나는 재택으로 기사를 송고하는 조건으로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소속은 있되 출퇴근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몸이 되니, 자연스럽게 프리랜서와 같은 일상을 살게 되었다. 이후 정규 일자리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이직하는 공백기에 쌓아온 프리랜서 업력까지 모두 따져보면 어느새 4년 여 가까이 되었다.
물론 어느 순간도 일하지 않은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일의 종류와 성격은 각양각색이었다. 그중에는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과 식사하기 위해 요리를 했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청소를 했다. 깨끗한 옷을 입기 위해 빨래를 했고, 세탁된 옷들을 정갈하게 정리해 다시 옷장에 넣었다. 그렇게 무한 반복되는 ‘가사 노동’. 이는 사회에서 무언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생산하려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이에게 에너지를 충전하는 ‘재생산 노동’이다. 성실히 일하고 또다시 재충전하는 생활의 균형은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해온 모든 가사노동을 내가 해온 중요한 일들 중 하나로 꼭 꼽고 싶다.
가사노동만큼이나 가치 있는 또 다른 일은 ‘육아’였다. 어린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기르는 것은 가히 최고의 난이도를 가진 일이었다. 정해진 스케줄도 없고, 시작과 끝도 없고, 조건과 상황이 늘 변하기 마련인 일. 육아의 핵심은 그렇게 틀이 정해지지 않은 일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해법을 찾는 것에 있다. 종합 매니지먼트다. 그래서일까. 지나고 보니 나는 육아를 하면서 아이 키우는 일을 했다기보다, 공부나 수양에 가까운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는 생각도 든다. 육아를 하고 나니, 세상 모든 일들의 체감 난이도가 확 낮아진 기분이 들 정도였다.
프리랜서로서 육아와 함께 병행한 일의 종류는 다양했다. 기사 쓰기, 책 집필, 라디오 출연, 강연, 외부 원고 작성, 첨삭 아르바이트 등을 했다. 가사노동이나 아이 키우는 일과 다른 점이자, 나머지 모든 일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끝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신문기자로 일해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일의 끝맺음을 맞을 때 도파민이 치솟는 일종의 ‘마감 중독자’였다. 시작과 끝이 있는 모든 일들을 즐기고 사랑했다. 미션을 완료한 후 밀려오는 충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쾌감을 선물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일하고 또 일했다.
그렇게 프리랜서로 일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점점 더 바빠졌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게 프리랜서의 숙명이기 때문이었다. 일이 주어질 때, 나를 찾는 사람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했다. 신분을 보장해 주는 조직의 울타리가 없기에, 나를 증명하는 것은 오로지 오늘의 나 자신 뿐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언제든지 나를 찾는 연락이 올 때면 시간을 쪼개고 잠을 줄여서라도 꾸역꾸역 그 일들을 소화하고자 애썼다. 그리고 잘하려고 기를 썼다. 그렇게 나의 커리어를, 내 이름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다양하고 많은 일을 요청하는 의뢰가 들어왔다.
다양한 일의 종류만큼이나 프리랜서의 스케줄은 매일매일이 달랐다. 아침 방송 스케줄이 있는 날은 전날부터 원고를 준비하느라 밤늦게, 또는 새벽에 일어나 일했다. 아침에 깨어난 아이들을 챙겨야 했으면서도, 책을 쓸 때는 올빼미 생활을 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방송국으로 달려가 30분에서 1시간가량의 방송을 마치고 나면, 다음 미션을 위해 카페든 도서관이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집이든 밖이든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거기가 어디든 내 일터가 되곤 했다. 이동하는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일을 이어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다양한 N잡과 이직의 기회가 많은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프리랜서로서 일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나의 일상을 관리하는 법, 조직이 아닌 내 이름만으로 사회에서 오롯이 살아남는 법, 고독한 가운데에서도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프리랜서에게 가장 중요한 무기는 유연함과 적극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열린 마음, 그리고 찾아온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게 꽉 붙잡는 노력. 그 두 가지를 갖춘다면 N잡러로서의 기본적인 준비이자 모든 것을 갖춘 셈일 것이다.
마흔 중반을 향해 가는 나이가 되니, 선배들이 은퇴했거나 은퇴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데 항상 질문이 많고,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던 선배들은 어김없이 은퇴 후에도 늘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은퇴 후에 진정한 N잡러로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은가? 지금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일들에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열린 자세로 최선을 다해 임하는 것이 첫 단추인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종류의 일들이 우리의 커리어를 채워간다. 그리고 인생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