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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tlife noah Dec 21. 2022

남편의 출산 일기 -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출산의 시작

출산의 시작은 병원에 입원하는 당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아내를 배려하지 못한 나의 철없는 생각이었다. 병원에 가기 전날 나는 잠이 들었다가 아내의 뒤척이는 소리에 잠이 깼다. 한참 동안 출산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헤매는 아내의 실루엣이 보였다. 분명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는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던 내가 한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의지될 수 있도록 따뜻한 말을 전해줬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아내가 뒤척이는 느낌이 들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잠에서 깰 때마다 비몽사몽 하며 얼마나 쓰다듬고 두들겨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침이 밝았다. 얼마나 잠을 잤는지 감이 안 오지만 조금이라도 푹 잤으면 좋았겠다는 마음으로 아내를 챙겨서 병원으로 출발했다.


입원절차

아침 8시에 병원에 도착했다. 어떠한 낯선 공간으로 가게 될지 걱정과 동시에 어떤 공간에 가던지 아내 옆에서 열심히 응원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입원절차를 받으러 병원에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들어가자마자 아내와 떨어지게 되었다.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없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당연한 순서이긴 하지만 괜히 불안하고 섭섭한 느낌이 들었다. 혼자 떨어져 있는 아내는 괜찮을까라는 불안감이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들었다. 혹시나 양성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온갖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간호사가 병실을 어떤 등급으로 할지와 비용이 드는 비급여 치료를 받을지에 대해 물어봤다. 무조건 좋은 병실로 해주고 좋은 처방은 비용에 상관없이 무조건 해달라고 말을 전했다. 이성적이지 못한 의식의 흐름이었지만 마음이 원했던 것일까? 해당 말을 전하고 나니 뭔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불안한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고 아내가 있는 분만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폭설이 내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생각 이상으로 출산의 과정은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출산의 과정은 아내에게 분만을 촉진하는 약을 투여하면서 시작되었다. 둘이서 졸린 눈으로 서로의 긴장을 확인하면서 고통이 오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아플지를 서로 모르다 보니 한참을 긴장하고 눈치 보다가 반응이 없어서 졸기 시작했다. 남편은 진료를 할 때마다 밖에 나가서 대기를 타야 했다. 졸린 눈으로 내가 왜 나가야 하는지 안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굉장히 궁금하지만 꾹 참고 분만실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소리가 잘 안 들리면 괜히 분만과 관련된 게시판 앞에 서성이며 분만 관련된 정보를 열심히 읽었다. 나중에는 너무 자주 나오다 보니 더 이상 볼 내용이 없어서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아내를 걱정했다. 아내는 주기적으로 아이의 심장박동 수와 수축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한 특정 허리띠를  배에 차고 정자세로 누워있었다. 주기적이라고 말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고 있었던 것 같다. 허리가 좋지 않은 아내가 아이를 배에 품고 정자세로 누워있다 보니 통증이 오지 않아도 허리 쪽의 불편함을 느꼈다. 그렇게 시간이 가다 보니 아내가 가벼운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기계에 표시되는 수축의 정도를 보고 아내가 얼마나 아플지 예상을 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미리 배워온 내용대로 허리 쪽을 마사지해주려고 했는데 장착된 허리띠로 인해서 배워온 마사지는 거의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방황하고 있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고 슬슬 배가 고파졌다. 나는 배고픔을 참으면서 아내의 고통을 같이 나누어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아내만 바라보고 있는데 경력 많은 간호사가 자연스럽게 다가와서 아내를 걱정하는 것은 알지만 밥을 먹고 오는 게 서로에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다. 아내도 긴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얼른 식사를 하고 오라고 나를 보냈다. 금세 나의 결심이 의미가 없어져서 허무했지만 출산이 길어질 수 있고 아내를 긴 시간 도와주려면 든든히 먹고 와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근처 분식점에 가서 허겁지겁 먹었다. 밖에는 폭설이 오고 있어서 식당에는 나밖에 없었다. 진짜 긴급한 시간을 짜내서 밥 먹으러 왔는데 부대찌개가 너무 맛이 없어서 아내 옆에서 간단한 식사를 할 것을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밖에 오고 있는 폭설을 보고 있으니 병원에 오기 전에 폭설이 안 내린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괜히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 아이가 운이 좋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점심 이후에는 눈에 보이게 아내의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통증은 심해졌는데 출산 진행이 잘되고 있다는 말은 없었다. 오히려 한참 남았다는 이야기만 반복적으로 들려주셨다. 보이지 않는 아내의 고통이 원망스럽다. 눈에 보이면 빠르게 욕이라도 한바가지 해줄 텐데 그럴 수 없어서 잘 싸워 이기라고 아내의 손과 머리를 열심히 주물러주었다. 어느 정도 진행이 되자 무통주사를 놓을 수 있도록 시술을 해주겠다고 했다. 게시판에서 확인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면 출산을 진행하면서 아플 때마다 주기적으로 무통주사를 넣을 수 있도록 허리에 주사를 꽂아 놓는 시술이었다. 역시나 남편은 나가 있으라고 해서 나가 있는데 시술이 금방 끝나지 않고 소란스럽다. 아내가 허리디스크가 있는데 허리디스크로 인하여 시술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0-40분이 지나서 시술이 끝났는데 나온 의사의 표정이 뭔가 탐탁지 않아 보인다. 간호사도 나에게 잘 시술이 안되어서 평소에 안 하는 곳에 시술이 되었으니 무통주사가 잘 드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전문가분들이 알아서 잘해주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이 순간의 판단이 얼마나 큰 고통으로 이어졌는지 생각하면 정말 끔찍했다. 그렇게 시술이 끝나고 아내는 주기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아내가 아파하는 순간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물러줄 수 있는 곳을 최대한 주물러주었다. 긴 시간의 싸움이 될 것 같아서 각오를 계속 다지고 있었는데 오후 5시쯤 뜻밖의 말을 들었다. 산모가 휴식을 취해야 더 잘 진행될 수 있으니 오후 6시부터 새벽 5시-6시까지는 쉬고 새벽부터 다시 촉진제를 넣으면서 시작한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납득이 가면서 밤새 고생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드니 안심이 들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실제 고생은 저녁부터 시작되었다.


매서운 추위의 저녁부터 새벽까지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먹지도 못했던 아내도 저녁을 먹어도 된다는 안내를 해주었다.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긴장을 내려놓고 죽을 배달시켰다. 편의점에서 마시고 싶었던 바나나우유와 식혜도 사 왔다. 촉진제가 더 안 들어가도 주기적으로 가벼운 고통은 오고 있었다. 둘 다 가볍게 마음을 먹고 티비를 보면서 여유롭게 다음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아내의 고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밤 9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두가 쉬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괴로워했다. 아내가 너무 괴로워하니 간호사가 와서 무통주사를 놓아주었다. 10분에서 30분 후에 약효가 든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계속 시계와 아내를 바라보면서 아내의 고통이 줄어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내가 아파했다. 아내와 나는 무통주사를 맞아도 아픔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 무통주사가 효과가 있지만 출산의 고통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하며 같이 버텼다. 주기적으로 아내가 아파할 때마다 아내에게 계속 말을 걸고 주무르면서 어떻게 하면 고통을 좀 들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다. 고통이 1-2시간쯤 반복될 때마다 아내가 너무 아프다면서 간호사를 불렀다. 그때마다 간호사는 어느 정도 아픈지 무통주사로 인하여 통증이 감소되었는지를 반복해서 확인하면서 추가적인 무통주사를 놓아주고 갔다. 누가 봐도 여전히 효과 없어 보이는 무통주사에 대해서 물어보는 간호사가 이해가 안 되었지만 막상 물어보니 아내도 줄었는지 안 줄었는지 확신의 대답을 해주기가 힘들었다. 고통이 반복되고 무통주사도 반복적으로 투여되었다. 무통주사가 투여되고 10분-30분 지날 때마다 아내의 고통이 빠르게 줄어들기를 간절히 빌었다. 의사 선생님이 분명 밤새 휴식하는 시간이라고 하였지만 정작 실체는 고통과의 전쟁 시간이었다. 우리를 더욱더 힘들게 하는 부분은 이 고통의 끝이 언제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힘들 때마다 하염없이 느리게 지나가는 시계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너무 복잡해졌다. 본격적인 출산은 아직 진행도 안되었는데 아내는 너무 괴로웠고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닌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내가 너무 고통스러워 보이니 내가 같이 느껴줄 수 없는 통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아내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 예민해졌다. 고통스러워 아내가 발끝을 쥐는 소리, 고통을 참기 위해 끙끙거리는 소리, 찡그리고 있는 아내의 표정, 아이의 심장박동과 수축 정도를 나타내는 기계음, 아내의 몸짓에 병원 담요가 스치는 소리, 고통을 견디기 위한 아내의 복식호흡소리, 건조한 겨울 분만실의 공기가 너무 세밀하게 아내의 고통을 전하기 위해서 느껴졌다. 괜히 불안한 상상도 되어서 아내가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이런 고통이 따르는 일이었다면 아이를 낳지 말자고 말렸을 텐데 지금 와서 생각해봤자 늦었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아내의 고통이 전달될 때마다 자리에 일어나서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고 주물러줄 수 있는 곳은 최대한 모든 힘을 다하여 주물러주었다. 5분마다 15분마다 일정한 고통이 찾아왔고 나도 5분마다 15분마다 자리에 일어나서 아내를 챙겼다. 횟수가 증가할수록 종아리가 땅겨오고 주물러주는 손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못 주물러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힘든 것은 졸음이었다. 새벽이 되어가자 온몸에 퍼진 졸음이 무거운 쇠사슬처럼 나에게 매달려있었다. 한 번쯤은 안 일어나고 조금만 더 쉬다가 가서 도와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실제로 점점 타협을 조금씩 보고 쉬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쉴수록 오히려 마음은 불편해졌다. 아내가 눈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데 겨우 졸음을 힘들어하다니 스스로에게 한숨이 나오고 죄책감이 들었다. 이렇게 밤새도록 육체와 정신의 노동이 반복되었다. 긴 시간을 나에게 느껴지는 감각과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 변화에 집중하고 있는데 아내가 너무 힘든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밤새 힘들어하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아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니까 가슴이 너무 아팠다. 얼마나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졌으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걸까. 아내가 흘리고 있는 눈물의 책임을 전부 내 가슴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그렇게 계속 꾹꾹 눌러 담은 게 원인이었을까? 아내의 눈물이 멈추자 내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고생하고 있는 아내를 보니 왜 이렇게 힘들게 사람은 아이를 낳는 거지라는 근본적인 원망을 해보기도 했다. 이제는 얼른 의사 선생님이 와서 조치를 취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차라리 내가 산부인과 의사가 될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의 무기력함이 너무 한심하게도 느껴졌다. 그렇게 징그럽게 길고 추운 새벽이 지나가고 있었다. 

 

따뜻한 해가 등장한 아침부터 낮까지

어느덧 날이 밝아오고 창문으로 따뜻한 햇빛이 들어왔다. 아침 9시쯤 희망과 같은 의사 선생님이 찾아왔다. 이렇게 계속 힘들꺼라면 제왕절개를 해달라고 요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인 나는 뭔가 발언권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반쯤 진행되었으니 좀만 더 힘을 내자는 말을 하셨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니 안될 것 같다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전문가에게 논리 없이 따질 수는 없어서 아내의 반응을 보았다. 아내는 굉장히 힘들어 보였지만 반쯤 진행되었다고 하니 좀 더 시도해볼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이미 너무 지쳐있어서 다른 시도조차 언급하기도 힘든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후 엄청 걱정을 하고 있는데 무통주사 시술을 다시 하러 어제 시술을 하셨던 의사 선생님이 죄책감 가득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남편인 나는 다시 밖에서 대기해야 했고 간절한 마음으로 무통주사 시술이 잘되기를 빌었다. 어제는 30-40분 걸렸던 시술이 5분 만에 끝이 나고 나오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뿌듯해 보였다. 뭔가 이제 잘될 것 같다는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실제로 무통주사는 잘 들었고 아내는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도 너무 안심이 되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괜히 아내를 쳐다보고 고생했다는 말을 하려다 울음을 참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너무 고생했고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해주었다. 그 후 지쳐있던 우리 둘은 쏟아지는 햇빛과 함께 2-3시간 깊게 잠이 들었다. 자고 나니 체력이 회복되어서 인지 아니면 이미 밤새 많이 고통을 참아서 인지 출산의 진행속도가 빨라졌다. 거의 출산 직전이 되자 간호사 선생님이 태어나는 순간에 아이에게 뭐라고 할지 정해달라고 했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아내 생각뿐이었고 출산이 끝나면 아내에게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는데 갑자기 아이를 언급하니 당황스러웠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우리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었지만 아이에게는 불청객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환영한다라는 말을 같이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아내를 챙길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출산 직전이 되자 나는 밖에서 대기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엄청 못생기고 징그럽게 생긴 신생아가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들려있는데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너무 생소하고 신기한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아내에 대한 걱정도 같이 느껴졌다. 감정이 다시 혼란해졌다. 아내 먼저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를 보여주고 탯줄을 자르게 하는 과정을 남편이 해야 해서 방해물에 가로막혔다. 솟아오르는 생소하고 신기한 느낌을 참아가면서 우리 아이를 확인하고 탯줄을 잘랐다. 그러고 나니 다시 남편은 밖에서 대기해달라는 말을 했다. 아이가 나오면서 찢어진 아내의 상처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나를 내보냈다. 나는 얼른 들여보내 주기를 기대하며 밖에서 기다렸다. 치료가 마무리되고 분만실에 들어가니 후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내의 편한 표정이 보였다. 그런 편한 표정을 보니 눈물이 차올라서 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다. 그저 다시 쓰다듬고 흘러나오려는 감정을 동시에 진정시키면서 고생했다는 말을 가볍게 안아주면서 조용히 전했다. 그리고 정말 잘했다는 칭찬을 연달아 말했다. 그 순간에 결국 차오르는 감정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은 못 했다.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병실이 아직 없어서 분만실에서 둘만 대기 타는 시간이 주어졌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아내에게 다가가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정말 그 순간의 사랑한다는 말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감정이었다. 그렇게 감정을 전달하고 피곤한 우리는 병실이 나올 때까지 푹 잠이 들었다.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

그러고 나서 다시 그 순간을 회고해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다. 경험하지 않으면 몰랐을 강렬한 사랑의 감정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자신이 죽게 되는 미래를 체험하고도 남주인공에게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그 순간의 장면을 보고 남주인공을 정말 사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남주인공과 미래에 같이 존재했던 여주인공의 아이가 같이 강렬하게 떠오른다. 그 순간의 여주인공의 감정이 지금 내가 느끼는 아이와 아내에 대한 감정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아내에게 전달하고 싶다. 


여보,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또 계속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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