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생각이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몰아쳐서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랑 비슷한 상태인데 다른 상태이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게임에 더 집중을 한다. 특정 반응을 해주기를 바라는 아내를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미러 두고 있었던 건강관리를 잘 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개발자라서 그런지 복잡한 감정을 한쪽에 치워놓고 보니 어떻게 해야 아내가 건강하고 아기가 건강할 수 있을지 가장 최적의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예외사항에 대해서 떠오른다. 아내에게 필요한 말은 그런 이성적인 말들이 아니었을 수 있지만 아직 나는 스스로 복잡한 감정을 정리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괜히 복잡한 마음에서 벗어나려고 더 확실한 소식이 전달되기를 기다려본다.
2. 임신테스트기에 두줄이 나왔다.
다음날 아내가 화장실을 갔다 오더니 두줄이 그려진 임신테스트기를 보여준다. 마음이 복잡한 상태라서 그럴까? 아니면 단순히 처음이라서 그럴까? 현실감이 안 든다. 영화 속처럼 감동이 몰아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아내를 보고 사랑하고 고맙다고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늘 나와 함께 했던 나의 방어본능이 발휘된 걸까? 복잡하게 날뛰는 감정을 단단한 금고에 잘 넣어놓고 엉뚱한 생각들만 떠오른다.
임신테스트기는 이렇게 생겼구나.
얼마나 할까?
이게 두줄이면 임신이 확실할까?
오차율은 얼마나 될까?
두줄이 나오면 무엇을 해야 하지?
짧은 사이 지나간 엉뚱한 생각들 사이로 아내의 궁금한 눈빛이 보인다. '우리 남편은 어떻게 반응해줄까?'라는 속 마음이 들리는 것 같다. 솔직하게 복잡한 심정을 털어놓으면 되지만 괜히 무덤덤한 척하고 싶어 져서 감정의 톤 없이 말을 한다.
"이제 진짜 우리가 엄마, 아빠가 되었네. 평소랑 달라질 부분에 대해서 잘 대응하고 준비해야겠다."
스스로 말을 해놓고도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현명한 우리 아내가 다 아는 내용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전해야 하는 영화 속의 대사들은 금고에 단단히 잠겨있다. 오늘따라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 남기 위해 내가 만들어 놓은 단단한 금고가 싫다.
3. 산부인과 의사에게 임신 진단을 받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산부인과에 들어갔다. 접수를 마치고 기다리는 동안 같이 들어가는 게 맞는지 아내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내가 진료를 안 받을 때는 오히려 진료받으러 온 사람에게 장난을 치면서 그 사람이 초조하지 않도록 하는 성격인데 내가 초조하다. 우리가 들어가야 하는 진료실이 어디일지 작은 병원에서 한참을 찾다가 남자가 쳐다보면 안 될 곳이 있을까 봐 조심히 두리번거린다. 진료실로 들어가라는 말이 들리자. 아내를 챙겨주는 척하면서 낯선 병실을 아내를 따라 들어간다. 산부인과 의사의 간단한 질문에 아내가 대답을 하고 남편분은 잠깐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의사와 아내는 초음파 검사를 하러 간다. 진료실에 들리는 다양한 소리와 여기저기 놓여 있는 다양한 물건들을 집중해서 듣고 본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존재하는 의사 자격증도 괜히 자세히 읽어 보고 어떤 활동을 했었던 의사인지도 자세히 확인해 본다. 괜히 여기저기 집중하면서 금고에서 빠져나오려는 복잡한 감정들을 다시 잠가놓는다. 혹시나 안 좋은 소식을 전하면 아내와 의사에게 자연스럽게 괜찮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수십 번 상상 속에서 연습을 한다. 무대 공포증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연습을 계속하지만 자연스럽지가 않다. 초음파 검사가 끝나자 의사가 먼저 들어온다. 아내가 오면 말을 해주겠다고 뜸을 들이자 괜히 더 걱정이 된다. 의사의 마음속을 볼 수 없지만 괜히 예측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의사의 행동을 집중해서 본다. 의사가 너무 무덤덤해서 임신이 아닌가라는 복잡한 생각이 떠오른다. 아내가 들어오고 의사가 말을 해준다.
"축하드립니다. 임신입니다. 4주 정도 진행된 것으로 보이니 1주 지나고 다시 검사받으러 오세요."
그러면서 찍은 초음파 사진을 보여준다. 아무리 찾아봐도 아이를 찾을 수 없어서 당황하면서 의사를 보자. 의사가 눈치채고 아기의 집이 형성되어 있고 지금은 정말 작은 상태라고 말해준다. 아기의 집만 보고 어떻게 임신이라고 확신을 하고 말해주는지 자세한 설명을 해달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준비하던 연기를 하지 않아도 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빠가 되었다는 마지막 확답을 들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잠겨 놓은 금고에서 즐거운 감정만이 새어 나온다. 괜히 행복해지고 웃음이 나오려 한다. 현재 나오는 감정이 금고에서 몰래 빠져나온 감정이라서 내심 적극적으로 표현은 못하고 조절된 웃음을 지으면 아내를 바라본다. 아내도 즐거워 보인다. 서로 감정이 짙은 말을 오가지는 않았지만 병원에서 되돌아오는 길이 가볍고 즐겁다는 게 느껴진다. 그러다 방금 들린 병원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 병원으로 계속 올지 아내에게 물어봤다. 단순히 임신 진단을 받으러 온 것이고 출산을 도와줄 수 있는 큰 병원을 예약해서 가야 한다고 아내가 말해준다. 듣고 나니 임신 소식을 듣게 되는 그 긴 기간 동안 감정은 닫아놓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지라고 생각했던 내 모습이 실제로는 굉장히 감정적으로만 준비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적인 준비만 하는 남편 때문에 홀로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준비했을 아내를 생각하니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세 번의 임신 소식을 전하면서 아내는 얼마나 복잡한 감정으로 이것저것 다양한 것을 찾아보고 준비를 했을까. 내가 너무 챙겨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 단단한 감정 금고를 아직 정리도 못했는데 추가적으로 수많은 감정들이 다시 들어온다. 좀 더 단단해지고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명
이름이 지어질 아이에게 왜 다른 이름을 또 지어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부모님들이 태명을 지어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개발자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프로그래밍을 할 때 아직 이름이 지어지지 않은 자원이 있다는 것은 관리를 위해서 굉장히 불편한 일이므로 납득이 갔다. 아내는 내가 지어준 이름을 쓰고 싶은지 나에게 태명 후보를 말해보라고 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로나, 엔데믹, 돼지김치찌개를 말했다. 로나는 코로나에서 가져왔다. 우리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혼란한 코로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코로나 시기가 끝난 후에 찾아온 선물이므로 로나라는 태명을 지어봤다. 그다음에는 유사한 의미로 코로나라는 펜데믹이 끝난 후에 찾아온 엔데믹이라는 용어가 좋아 보이므로 엔데믹이라는 태명은 어떤지 물어봤다. 또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가 생길 때쯤에 아내가 만들어줬던 맛있는 돼지김치찌개가 생각나서 돼지김치찌개를 먹고 생겼을 확률이 높으니 돼지김치찌개라고 말했다. 이쯤에서 다들 예상했을 수도 있지만 아내와 주변 사람에게 엄청나게 큰소리로 꾸짖음을 받았다. 무슨 아기 태명을 그런 이상한 이름으로 하냐는 말이었다. 아내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나에게 지어달라고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서 보리라고 태명을 지었다. 이유는 초기에 보리쌀처럼 작게 생겼고 보리라는 의미 자체가 좋은 의미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속으로는 내가 지어준 이름과 보리라는 이름의 차이를 모르겠지만 아내가 지어준 이름이 좋다는 말을 해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억울하다. 나는 우리 보리가 태어나는 순간의 모든 것이 너무 좋아서 어떤 키워드라도 의미 부여를 해서 사용하고 싶었다. 보리 이전에 존재했던 코로나라는 시기는 모두에게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런 힘든 시기 이후에 찾아온 보리가 너무 고마워서 기억하고 싶었고 아내가 소중하게 만들어줬던 맛있는 돼지김치찌개를 먹고 난 이후에 찾아온 보리도 '엄마의 솜씨를 느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태명을 통해 기억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 이름으로 장난만 쳤다고 여기저기서 비난을 받았다. 보리가 찾아오면서 그 순간의 모든 게 의미 있어서 그 태명을 생각했다고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굳이 다른 사람에게 선입견을 심어준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별로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장난을 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름이 뭐가 중요하고 억울한 게 뭐가 중요하겠나? 우리 아이의 태명은 보리다.
심장소리
1주가 지난 후에 집 주변의 유명한 산부인과를 찾아서 진료를 하러 갔다. 처음 찾아갔던 작은 산부인과와 달리 산후조리원, 소아과 등의 다양한 시설이 건물 안에 같이 있었다. 접수하는 곳에 가니 수많은 임산부들도 같이 보였다. 임산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이전과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아내가 임신하기 전에는 단순히 배가 나온 사람과 정확히 구분이 안 가는 일반 사람이었으면 지금은 소중한 생명을 품은 대단한 사람들로 보였다. 괜히 '저 사람은 임신 주기가 얼마나 되었을까?', '몇 번째 출산일까?'라는 궁금증도 같이 생긴다. 가자마자 접수 이후에 아내만 데려가서 상담을 진행했다. 괜히 남편은 부르지 않으니까 가정 폭력 관련된 질문을 하는지 궁금해지면서 괜히 불안하다. 평소에 죄를 짓지 않았도 경찰을 마주하면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불안하다. 상담을 마치고 대기를 하면서 보는데 의사마다 대기하고 있는 환자의 수가 다르다. 무슨 기준으로 이렇게 임산부의 수가 다를지 아내랑 추측해 보았다. 둘이서 생각한 임산부의 수가 다른 이유는 의사의 실력과 성별로 결론을 내렸다. 여자 의사에게 임산부가 많을 것으로 보이고 추가적으로 실력이 좋은 의사가 대기 수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대기하는 의사 선생님은 남자였지만 적당한 수의 환자들이 대기를 하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우리의 순서가 되어서 진료실에 들어갔다. 작은 병원과 달리 남편에게도 친절하게 어디에 앉을지 가이드를 해주었다. 초음파 검사도 남편도 같이 들어와서 보라고 친절하게 가이드를 해주어서 좀 더 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어색한 느낌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서 진료실에 불편하게 서서 의사 선생님이 보여주는 초음파 영상을 지켜보았다. 지난 병원에서 봤던 아기의 집 안에 엄청 작은 점이 생겼다. 저 작은 점이 아기라고 하니 현실감이 전혀 안 들었다. 속으로 언제쯤 우리의 아기가 직접적으로 인지가 될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의사 선생님이 아기의 심장소리를 진료 기계로 들려주었다. 규칙적인 작은 소리가 평소에 듣는다면 특별하지 않은 비트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 소리가 현관문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처럼 단단하던 나의 감정 금고를 열어버렸다. 올림픽 경기에서 승리를 획득하는 중요한 순간을 보는 것처럼 깊숙한 곳에 있던 열정과 기쁨이 솟아올랐다. 이전에 정리되기 힘들어 보였던 복잡했던 감정들이 이유 없이 정리되고 내가 아빠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기가 우리에게 정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알 수 없는 쾌락이 찾아왔다. 심장소리가 들리는 그 짧은 순간이 엄청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의사 선생님이 심장이 잘 뛰고 있다고 이어서 말을 해주면서 심장소리를 끄지 않았다면 30분은 듣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소리를 듣고 나니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이가 살기 적합한 세상일까. 미래는 밝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로 인하여 아이를 가져도 될지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심장소리를 듣고 나니 정부에서 임산부에게 제공해 주는 출산 지원금도 넉넉해 보이고 앞으로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밝은 희망들이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부지런히 해야겠다는 각오도 다시 다졌다. 이런 순간을 느끼고 나니 '생명이 대단하다는 의미를 조금은 느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세상이 겪고 있는 저출산의 실제 문제는 단순한 노동력의 저하가 아닌 이런 다양하지만 측정 불가능한 긍정적인 에너지들의 저하가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우리에게 찾아와 준 보리에게 당장은 볼 수 없겠지만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