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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우 Oct 06. 2022

11. 진짜배기

지리산 길 위 학교 에피소드 11

  아이들은 무력하지 않으나 사회가 아이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공부, 학교라는 제도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경력과 실적이 없으면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학교를 그만 둔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학교에 다니고 싶다 말한다. 교복을 입고 친구를 사귀고 학교 다니는 또래 아이들이 살아가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에 대한 그리움. 그 감정이 사무쳐 견디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휴대폰과 인터넷 속으로 숨어든다. 유튜브에 올라온 다른 사람의 창조물을 소비하며 대리 만족한다. 온라인 세상에서 존재감을 경험하게 해주는 지위와 신분을 갖는다. 현실에서 느끼지 못하는 흥분과 즐거움, 친밀감과 성취감을 추구한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설레지만, 그것은 진짜 나의 것 나의 삶이 아니다. 내 것이 없는 바탕 위에 남의 것이 들어오면 그것이 나의 것인 줄 착각하게 되고, 착각은 믿음이 되고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어 나를 지배한다. 가짜가 진짜처럼 행세한다. 결국 나는 나로부터 소외되고 외면당한다. 내 삶에서 내가 없어진다. 내가 나로부터 이탈된 분열 상태. 그 공백과 허전함을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까. 초등학생부터 담배를 피우고 남의 것을 훔쳐서 갖고 이른 성경험과 성생활을 하고 범죄행위를 통해 흥분과 희열, 두려움과 복수심을 느끼면서 자신을 파괴하는 자극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려 드는 건 아닐까. 


  아이들은 3박4일간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였다. 내 발로 걷고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졌다. 닫혀 있는 감각들이 깨어나고 직접 경험하며 나로부터 소외된 채 살아가던 내가 주체로 소환되었다. 하루 종일 남의 이야기, 가상 세계에서의 활동으로 멀어지고 잊혀져가던 내가 삶의 주인공으로 돌아온 것이다.  


  일정을 마친 저녁 고단한 몸으로 선생님들과 4시간 동안 긴 회의를 하였다. 억지로가 아닌 서로가 필요로 하고 원해서 그랬다. 아이들과 있었던 이야기, 실수하고 다투고 사고 친 이야기, 아이들과 우리가 성장한 이야기, 어떻게 무엇으로 아이들이 진짜로 자기 삶을 살아가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매순간을 진짜로 경험하며 살아갈 순 없을까. 학교 다니지 않는 아이, 가정이 없는 아이, 범죄 저지른 아이, 인터넷 세상에서만 활동하는 아이. 도전하고 모험하지 않는 아이, 삶의 지루함과 그 속에 갇혀 시들어가는 아이. 그들의 영혼을 꽃피우게 할 순 없을까. 지리산 둘레길과 천왕봉 코스를 걸으면서 진짜로 살았던 아이들이 그것을 현실 속에서 이어나간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사회가 어떠하든 아이들은 진짜배기다.  


  내가 3박4일간 걸은 발걸음은 몇 걸음이나 될까. 세어보지 않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걸은 걸음 중에서 한 걸음이라도 생략한다면, 나의 여정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것이 비단 걸음만이 아니구나. 3박4일간의 하모니를 이뤄낸 우리 모두의 걸음이구나. 걸을 때는 아쉽고 원망하고 답답하고 화가 났던 장면들도 있었다. 왜 넘어지고 왜 차가 도랑에 빠지고 왜 갑자기 눈이 오고 왜 발이 아프고 왜 날씨가 춥고. 


  왜, 왜, 왜? 그건 궁금해서 던진 물음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거부와 비수용, 부정의 태도였다. 내가 정한 당위성! 그것이 삶이 진짜 삶으로 흘러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던 건 아닐까. ‘왜’라는 탄식은 삶을 가로막아선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왜’라는 단어가 속에서 치밀어 올라올 때마다 우리를 가두어 흘러가지 못하게 했던 장애물들이 하나씩 무너지는 소리였던 것이다. 수많은 ‘왜’를 통해 당연함이 유연함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것이 길 위 학교에서 가르쳐주신 배움이다. 지리산 길 위 학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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