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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우 Oct 06. 2022

2. 아름다운 밤

지리산 길 위 학교 에피소드 2

  꼭 안 되는 게 아니면 허용했다. 숙소에 들어와 잠들 때까지 ‘안 돼’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바나나를 더 먹어도 되는지, 내일 걸으면서 씹을 거리를 더 넣어도 되는지, 화장실 옆에 있는 침대를 써도 되는지, 먼저 씻어도 되는지, 먹고 싶은 컵라면을 골라도 되는지, 불을 켜 놓고 자도 되는지, 아니 다시 모든 전등 끄고 자도 되는지. 물을 때마다 난 미리 녹음된 자동응답기처럼 친절하고 다정하며 수용적인, 그러나 과하지 않은 톤으로  “응. 그래. 좋아.” 하고 산뜻하게 대답했다.  


  중국집에서 저녁 먹는 과정을 지나면서 우리 둘 사이에 무언가 가느다란 끈이 연결된 것처럼 느껴졌다. 경석이는 잠들기 전까지 하나하나 모든 행동을 실행하기 전에 나한테 물었다. 그 물음은 어떤 의미일까. 같이 걷고 같은 방을 쓰는 사람에 대한 동료애일까? 감정이 상할 법도 한데 그 감정으로 공격하지 않고 조절하기 위해 애를 쓴 어른에 대한 고마움일까? 마지막까지 식사를 권하고 기다려준 것에 대한 배려일까? 휴대폰 하면서 마음이 풀려서일까?  

  에라 모르겠다. 아! 머리 아파. 그게 무엇 때문인지 해석하는 게 뭐가 중요한가. 이 놈의 분석 판단병! 중요한 건 경석이의 그런 물음들이 싫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석이의 친절하고 따듯하며 편안한 표정과 말투가 좋았다. 고맙고 따듯하고 재밌었다. 물음과 대답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아무런 거리낌도 불편함도 없이 우리는 잠들기 전까지 물음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서로 그런 감정을 교류했다. 마치 높고 낮음 없는, 지시할 것도 가르칠 것도 없는 친구와 둘이 여행 와서 놀다가 잠이 들 듯. 


  경석이는 정확하게 휴대폰 사용시간 오후 11시를 지켰고, 충전기를 콘센트에 꽂았으며, 안녕히 주무시라는 다정한 인사와 함께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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