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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우 Oct 06. 2022

3. '갬성' 산책

지리산 길 위 학교 에피소드 3

  둘째 날 아침. 오늘은 지리산 둘레길 2코스 운봉-인왕 구간을 걷는다. 경석이는 좋아하는 컵라면을, 나는 부담 없는 누룽지를 먹고 가방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지난주와 다음 주는 예년보다 따듯하고 화창한 날씨인데, 이번 주 길 위 학교 기간에만 눈 오고 비 오고 바람 불고 춥단다. 이 무슨 조화인가. 경석이와 현태는 어제 걸으며 옷이 무겁고 더웠는지, 날씨 예보를 알려주며 따듯하게 챙겨 입으라는 권고를 듣지 않는다. 나와 재욱 선생님은 추위에 대비하여 여러 겹 챙겨 입었지만, 아이들은 맨 몸에 얇은 티셔츠, 그 위에 후드 티나 바람막이를 입었다. 혹여 추위에 얼어붙거나 감기 걸리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무리 말해도 안 듣는다. 그래 걷다 보면 땀이 나겠지. 한 겨울은 아니니 너무 걱정 말고 출발 전부터 힘 빼지 말자. 나를 다독인다. 

  내일 천왕봉 오르는 여정을 대비해 오늘은 무리한 일정을 잡지 않았다. 걷는 구간이 짧아 숙소에서 제공한  무료쿠폰으로 허브밸리 산책부터 시작한다. 


  “지리산 허브밸리는 국내 최대의 철쭉 군락지를 보듬고 있는 지리산 바래봉 자락의 해발 600m 지역인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 일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지리산 웰빙 허브산업특구로 지정받은 지역입니다. 남원시는 지난 15년 동안 이 지역 75ha(22만 평)을 세계 최대의 허브테마관광지로 조성해왔습니다. 지리산의 자연 속에서 허브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지리산 허브밸리는 허브와 함께하는 힐링의 천국입니다.” 

  - 허브밸리 홈페이지에서


  지난주 축제가 끝난 데다 평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입장객은 우리가 전부였다. 그것도 입장이 9시부터 인 줄 알고 갔는데, 동절기에는 9시 30분부터였다. 썰렁한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고 직원들이 낙엽과 떨어진 꽃잎을 쓸고 있었다. 30분 기다리는 동안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손발이 시리고 턱이 덜덜 떨린다. 나도 모르게 경석이는 어떤지 눈치를 살핀다. 기다렸다는 듯이 경석이가 한 마디 한다.


  “그냥 걸으면 안 돼요? 아! 씨! 시간만 가고 이게 뭐야.”

  “그래 기다리기 지루하고 춥지. 입장시간이 달라진 걸 몰랐네. 조금만 기다렸다 얼른 둘러보고 가자.”


  드디어 입장시간이 되었고 가을이 물러가는 허브밸리 정원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날이 추워 실내 식물원에서 조금 더 머물렀다. 연못에 물고기가 있나 들여다보고, 컴컴한 동굴 속으로 걸어보고,ᅠ흔들의자에 앉아도 보고, 허브 추출하는 요술램프도 구경했다. 밖으로 나와 걸으며 발견한 연못에 갈대 같은 풀이 쭉 뻗어 자랐는데, 핫도그 안에 들어있는 소시지 같은 게 끝에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과 재욱 선생님은 휴대폰으로 검색하고 무언인지 만져보고 신기해하였다. 나한테는 시시하고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인데 아이들의 호기심이 발동하는 걸 보며 내 ‘갬성’도 많이 죽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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