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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우 Oct 06. 2022

4. 4명의 양치기 소년

지리산 길 위 학교 에피소드 4

  장흠 선생님이 추천해준 식당에서 점심으로 간단하게(?) 삼겹살을 먹고 본격적으로 걷기 위해 둘레길로 들어섰다. 점심이라 삼겹살은 1인분씩만 먹었으니 간단히 먹은 것이다. 그래도 어제 악천후 속에서 하루 걸었다고 오늘은 시작부터 자신감 뿜뿜이다. 다만 바람이 차다. 멀리 보이는 이름 모를 봉우리엔 눈이 쌓여 있다. 일기예보를 보니 비가 오락가락하고 강수량은 -1이다. -1? 온다는 겨 안 온다는 겨? 


  아직 가을 절경이 남아있는 새빨간 단풍, 노란 은행나무, 그 사이에 조화를 더해 주는 주황빛 낙엽들. 아! 멋지다. 아름답다. 이 좋은 풍경이 선물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보너스인가. 간간히 구름이 비켜주어 티 없이 파란 하늘에 마음이 쾌적하다.  


  이리 좋은 지리산 둘레길을 이제야 걷다니. 법인에서 법원과의 공동 프로젝트로 7년째 지리산에서 길 위 학교를 진행해 왔지만, 몸담고 있던 대안학교에서 진행하는 제주도 길 위 학교와 기간이 겹쳐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다. 그동안 수고했던 동료들의 고단함에 대한 경의와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 궁금하고 가고 싶던 마음 아래서 올라오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어쨌든 이 좋은 계절에 첫날의 고비를 넘어 기분 좋게 걷자니 뿌듯하고 신나며 행복한 기분으로 가득 찬다. 아이들의 발걸음도 경쾌하다. 


  제법 속도를 내며 걷고 있을 때, 돌연히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하늘을 쳐다보니 걸어가는 방향으로는 하늘이 개이고 있는데, 뒤를 돌아다보니 시커먼 먹구름이 온 마을과 하늘을 뒤덮는다. 재욱 선생님과 아이들은 지나가는 비 같다고 비 맞고 그냥 걸어 보잔다. 의기충천함이야 반가운 일이나, 괜한 호기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내일 천왕봉이 못 올라가면 낭패가 따로 없다.  


  “안 되겠다. 일단 비닐하우스로 들어가자.”

  “누가 있으면 어떡해요? 뭐라 하면요.”

  경석이가 걱정하듯 묻는다.

  “괜찮아. 사정을 설명하면 돼. 잠시 비 피하고 간다는데 설마 나가라고 하겠어.”

  “일단 뛰어! 저기다!”


  가방에 우비 넣는 것도 깜빡했기에 직감적으로 눈에 보이는 비닐하우스를 찾아 뛰어 들어갔다. 후드득 몇 방울씩 떨어지던 빗줄기는 장마철에 그것 마냥 사정없이 쏟아붓는다. 비닐하우스 천장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서라운드 입체 음향으로 전해진다. 몇 분을 기다려도 전후좌우 사방팔방 온통 먹구름이 덮고 있어 소나기가 쉽사리 그치지 않을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지원 요청! 


  “장흠 선생님! 비가 너무 많이 와요. 우비 좀 사다 주세요. 장소는 운봉에서 인왕 가는 길  농로 옆 비닐하우스예요.”


  몇 분 뒤 지원팀은 우비를 챙겨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지원팀이 도착하기 직전부터 비가 그치기 시작하더니 하늘까지 갠다. 영락없이 우린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이 되었다.  


  “어! 우와! 이거 참! 방금 전까지 진짜 엄청 쏟아졌어요. 도저히 비를 맞고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믿어주지 않을까 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뛰어달려 긴급히 비닐하우스로 대피하고, 기다려도 비가 그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전화하고, 급기야는 우비를 요청했다는... 지원팀이 물어보지도 않은 장황한 설명을 우리 넷이 경쟁적으로 늘어놓는다. 증거 사진과 영상까지 보여주면서.  


  “허허허! 알고 있어요. 요 근처 도착하기 전까지 엄청 쏟아지더라구요. 그런데 거짓말처럼 비닐하우스 도착할 때쯤 비가 그치대요.”


  순간 자신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을까, 잔소리하고 구박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재잘대던 모습이 알아차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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