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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우 Oct 06. 2022

6. 슬픈 삼겹살

지리산 길 위 학교 에피소드 6


  저녁 먹으러 옆 건물로 가기 위해 숙소 1층으로 내려왔다. 아이들은 놓고 온 게 있다며 다시 숙소로 올라갔다. 나는 경석이와 있던 일을 재욱 선생님과 상의했다.  


  “뻥이네. 연기하는 거네.”


  순간 속이 시원했다. 감정적으로 흥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뇌가 감정의 홍수에 빠져 정상작동을 못하여 헷갈렸다. 아무 기억 안 난다는 경석이 말을 믿자니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고, 아니라고 했다고 진짜 병이 깊어 기억이 안 나는 거면 그 아이를 아프게 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그러나 재욱 선생님의 대답에 명쾌하게 정리되었다. 기억이 안 나면 정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동해야 하는데, 무슨 일이 있냐고 안색이 안 좋다고 걱정하며 다른 콘셉트로 행동하는 모습이 평소 경석이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화를 내고 흥분하고 대들었던 행동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까. 그런 행동이 자신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갈 곳 없는 상황에서 쉼터에서 퇴소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때문일까. 견고하고 단호한 나의 태도를 보고 그동안 사용하던 방식이 먹히지 않을 것 같아 새로 고안해 낸 방식일까.  

  저녁 먹는 내내 내 옆에 앉은 경석이는 다정해도 그렇게 다정할 수 없었다. 밥도 퍼주고 국도 떠 주고 반찬도 내 앞으로 가까이 갖다 주고. 나긋하고 상냥한 목소리.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많이 드세요. 하하!”


  날 놀리는 것 같진 않고, 갑자기 180도 달라진 경석이의 행동에 마음이 짠하다. 불안을 감춘 평화로운 얼굴, 분노를 억누른 친절함, 미안함과 사과를 생략한 덤덤함. 무언가 자기 속마음을 감추고 안전한 상황을 확보하기 위해 애를 쓰며 연출하는 노력. 정말인 것처럼 보이는 그 마음과 태도에 서글프고 눈물이 난다. 도대체 신경질 부리고 짜증내고 화냈던 순간에 경석이는 함께 있던 어른들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던 것일까. 재욱 선생님이 구워주는 지리산 흑돼지 몇 첨을 맛있다며 목구멍으로 삼켰지만 어디로 들어가는지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슬픈 삼겹살이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경석이와 내 사이를 걱정하듯 재욱 선생님과 현태가 우리 방에 놀러 왔다. 커피 한 잔 나누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옆방으로 돌아가고 경석이와 둘 만 남았다. 나는 어수선하게 널려있는 가방과 옷가지들을 정돈하고 경석이는 휴대폰 게임이 한창이다. 어떻게 이야기할까 생각하며 몸을 움직였다. 이야기 순서도 내용도 정해진 바 없지만, 일단 예고한다. 


  “경석아! 너 휴대폰 게임 충분히 하고 잠자기 전에 선생님이랑 얘기 좀 할까?”

  경석이는 여전히 다정하고 나긋한 목소리다.

  “네? 무슨 얘기요?”

  “아까 저녁 먹기 전에 하던 얘기.”

  아무 거리낌 없다는 듯이 대답한다.

  “네~!”


  오후 9시까지 휴대폰 사용시간이었지만 8시 45분에 휴대폰 다 했다며 아까 하기로 한 얘기를 하잖다. 이런 일이 흔치 않다. 더 오래 못해 아쉬워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웬일인가.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경석아! 아까 너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 정말 기억 안 나니?”

  “네.”


  기억나니 안 나니 이 문제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핵심 주제가 아니었다. 난 이미 사실을 알고 있고 그걸 문제 삼지는 않겠다는 심정으로 이야기했다.  


  “경석아! 사람이 살다 보면 짜증이 날 수도 있고 화가 날 수도 있어.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네 감정과 기분은 존중받아야 하고, 그걸로 다른 사람이 맞다 틀렸다 할 수 없는 거야. 하지만 네 감정과 기분이 안 좋다고 해서 그걸로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 돼.”


  장황하게 설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소중히 여기되, 그걸 표현하고 조절하는 법을 배우길 바랄 뿐이다.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맞춰 주지 않으면 비난, 공격, 무시, 조정하는 방식을 개선하길 바랄 뿐이다. 자신과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을 배워 진짜 인간관계를 경험하고, 친구와 연인을 사귀고, 일을 하며 자신의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말을 하다 보니 흥분되고 서운하고 화가 난 감정 아래 숨어 있던 경석이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그걸 경석이도 느끼는지 가만히 듣는다. 이야기를 마치고 물었다. 


  “경석아! 선생님 이야기 듣고 지금 기분이 어때?”

  “괜찮아요.”


  내 이야기가 전달된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다만 평소와 달리 내 이야기 중간에 말을 가로막거나 다른 이야기를 가져오거나 중간에 뛰쳐나가거나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마치고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오늘도 수고 많았다고 잘했다고 좋은 꿈 꾸라고 내일 천왕봉 같이 멋지게 올라가자고 덕담을 건네며... 다정한 인사가 전해온다. 


  “선생님도 안녕히 주무세요. 좋은 꿈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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