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050년. 수십 명의 방문객들이 기록 유물 앞에서 역사 설명을 듣고 있었다.
"자- 다음은 한국의 2000년대 모습 중, 가장 재미있어하시는 장면 중 하나인데요. 2100년에 땅에서 꺼내는 '타임캡슐'입니다. 기억과 기록을 버무려 담은 시간의 독(甕)이죠. 그때쯤, 아마 잘 익지 않았을까요? 아쉽지만, 저흰 맛볼 수 없네요."
내 직업은 한국 역사 보관소 큐레이터다. 엄선한 유물에 기록을 저장, 보관하며 때때로 전시를 통해 공개된다. 가족을 통해 자신의 역사를 배워가듯, 역사를 통해 우린 서로를 배우는 것 같다. 일과를 마친 후, '한국의 50년, 미래의 50년' 전시를 위해 기록보관소에 들렀다. 자료 조사를 할 때마다 역사의 이중성을 느끼곤 했다. 살아가는 자와, 사라지는 자의 기록들. 그 앞에 서면, 어떤 기준으로 그들에게 전달할지, 나는 늘 딜레마에 빠졌다. 특히 1980년대 유물은 우리 같은 직업에겐, 양면의 성배 같았다. 채울 수 없는 잔. 그것은 들었을 때 가장 쓰고, 부었을 때 마시지 못하는 목마름 같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나는 속삭이며 말하곤 입술을 깨물었다. 해방 이후 가장 큰 보편적 가치.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꿇게 했었다. 사람을, 사람이 태웠었다. 보편이란, 뭉뚱그려 편하려고 하는 학자들의 용어 같았다. 정의하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시대의 흐름상. 국가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어떤 이에게는 철옹성 같은 말들이었다. 함부로 단정 짓거나, 판단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스스로 중립을 세뇌시켰다.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보관소. 치우치지 않는 공간이 내게는 안식이 되었다. 하얀 장갑을 사용해 조심스럽게 피의 기억들을 어루만졌다. 나는 파트를 옮기며 일을 했고, 다음 파트로 가는 찰나였다.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유리 진열대에서 노래와 영상이 흘러나왔고, 유물에 금이 갔다. 균열이 생긴 틈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노래가 흘렀고, 남북 단일팀이 한반도기를 들고 있었다. 사실과 다른 저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장이라 생각했다. 기록 유물을 두 손으로 들었다. 주마등처럼 1980년대의 빛과 어둠이 스쳐갔다. 어떤 기억들은 그대로였고, 어떤 부분은 조작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작동이 멈췄다. 꿈을 꾼 듯 균열의 틈은 사라졌다.
퇴근 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흔들리는 손잡이를 잡고,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생각의 터널을 지나던 중이었다. 기억과 함께 지하철이 정전돼 멈췄다. 사람들은 눈을 감았다. 다시 전원이 복구되었을 때, 작은 스크린에서 '1988년 통일 올림픽 선언' 영상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의 눈은 삐그덕거렸다. 영상은 멈췄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멈추지 않는 혼란을 가진 채 집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광고용 스크린에는 '1986년 휴전선 해체 합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티브이를 손으로 만졌다. 1984년 'DMZ 지뢰 합동 제거' 영상이 흘러나왔다. 나는 주저앉았다. 양손을 멍하니 바라봤다. 호흡이 가빠졌다. 내 손의 무게가, 그날들의 무게 같았다.
다음 날 출근길. 모니터가 있는 사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회사에 도착하니 모든 유물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사유를 들어보니, 1980년대에 대한 거짓 조작과, 기이한 현상에 대한 시민들의 제보가 빗발친다고 했다. 특히, 그 시절의 정권이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는 식으로 된 기록이 문제였다. 사실의 재구성이 아니라, 기억의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간첩 교란 음모론까지 제기되며, 현실과 기록의 경계가 흔들렸다. 나는 모른 체했다.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알릴 수 없었다. 뉴스를 검색했다. 휴전선이 해체되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댓글 창에는 38도선이 생기고 있었고, 내 손에는 철조망의 피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병가 신청을 냈다. 실수로 여기에 있는 스크린, 티브이를 만지지 않기 위해서 몸을 숨겼다.
"감출 수 없다. 가릴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중얼거렸다. 손을 숨길 수 있는 교통수단을 찾아 택시를 탔다.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택시가 멈춰 섰고, '1982년 전라, 경상 합당 출범' 영상이 내비게이션 스크린에 흘러나왔다.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침을 삼켰다.
"정치는 아무도 몰라." 기사님은 거울로 뒤를 보며 말했다. 나는 말이 없었다. 대시보드 위, 야구공을 든 인형이 보였다. 사자와 호랑이의 싸움. 누가 이기는 게 중요한지, 지키는 게 중요한지. 콜로세움 같은 구장에서, 그들은 타석의 좌우를 넘나들며 대리전을 치렀다. 역사관에 대해서 인터넷의 익명 글들을 접했다. 보인 대로 믿기가 편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 같았다. 나는 늘 갈등했다. 그들을, 그 좁은 틈 사이에서 꺼내 주고 싶었다. 지금은 보여줄 수 없어서 손을 내리지만, 때로는 보여주고 싶어서 손을 올렸다.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모색이라는 모순적인 단어. 필요할 때만 찾는 묻어둔 김장독처럼. 지역과 가정마다 다른 맛, 다른 색으로 서로를 구분 짓는 우리. 너무 깊게 묻힌 건 아닐까. 그 속에는 어떤 기억과 기록들이 담겨있는지 궁금했다. 서재의 한편, 큐레이터 일지를 꺼냈다. 종이를 좌우로 넘겨가며, 그간의 기록을 살펴봤다. 1980년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 기억에는 썼는데.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1980년대 일지 썼어?" 나는 물었다.
"아니, 서울은 중립 지역이잖아" 동료가 답했다. 고개를 저었다. 서울에서는 안 되고, 다른 지역에서는 된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이번 일이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첫 번째 영상을 떠올렸다. 남북의 올림픽. 굴렁쇠 소년은 사라지고, 강강술래를 하며 돌고 있는 남남북녀의 한민족과, 끌어안는 횃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함께였는데, 생경한 풍경이 좋으면서도 싫었던 것 같았다. 남북 분열과, 지역 분열까지 만든 시발점이 거기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총칼의 상흔 때문인지. 손으로 턱을 만졌다. 땅 건너, 바다 건너의 다른 민족들에 의해서 균열이 생긴 건데, 우리는 서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버렸던 건 아닐까. 영상 출력 기기를 만질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 남은 기억이 송출된다면, 남아있는 틈마저도 닫혀 버릴까, 걱정이 되었다. 네 방위의 손과 손이 잡지 못할까 봐, 내 손을 쓰지 않기로 했다. 마지막 기억을 다시 봉인하기 위해, 기록 보관소까지 걸었다. 38km, 역사처럼 질긴 숫자 같다. 나는 그들을 위한 행군을 했다. 시야는 트였고, 숨통은 자유로웠다. 교통, 빌딩, 지역에 갇히지 않았다. 우린 틀과 틀, 벽과 벽. 허물어질 만하면, 새로 쌓는 것 같았다. 2100년 타임캡슐은, 우리 모두 함께 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독을 꺼내 한쪽만 치면 금이 가지만, 다 함께 치면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관소에 들어가 하얀 장갑을 다시 꼈다.
1950년대의 기록을 꺼냈다. 붙지 못하고 남겨진 우리의 틈. 그 갈라진 틈에서 유물의 눈물이 두 손 위에 차올랐다. 평화의 댐처럼 가득 담겼다. 평화의 눈물이 스크린 속 백두대간을 따라 흘렀다. 영상 속 포탄과 절규가 잠시 멈춘 것만 같았다. 우리는 영원히 미워할 수도, 영원히 배척할 수도 없었다. 다만 그 사이를 지키며 살아갔다. 보이지 않는 이념은, 경계선보다 두터웠다. 손에 들었던 갈라진 유물은, 다시 하나로 붙었다. 그 사실을, 나만 안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