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끝

단편소설

by 이겸

한끝



내 꿈은 끝장나는 건물을 짓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물었다.

“너 커서 뭐 할래. 적어 봐.”

나는 꿈이 없었다.

“그럼 역 근처 컴퓨터 학원이라도 가봐라. 다가오는 21세기에 도움이 될 거다.” 처음에는 한컴 자격증을 땄다. 컴퓨터에 맛을 들였다. 1999년에서 2000년이 되어가는 20세기의 끝물. 오토캐드라는 설계용 자격증을 땄다. 폭죽이 터지는 TV에서는 캐드의 소실점이 그려지고 있었다.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내내 프로그램에 빠져 살았다. 공고에 진학 후 건축과에서 기초를 쌓고 같은 계열인 대학교에 진학했다. 시작된 성인의 삶은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났다. 바닥엔 위장의 설계도를 만들어댔다. 사랑을 그려보고 우정도 쌓아봤다. 월드컵의 붉은 잔상이 사라질 때쯤엔 군대를 다녀왔다. 21세기의 공학이 인천에 다리를 반쯤 놓았을 때 복학했다. 그 다리에 차량이 다닐 때, 우리 과 끝판왕인 건축기사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중견 건설사의 오퍼를 받은 날, 세상의 건물들이 다시 보였다. 콘크리트에 튀어나온 철근 하나에 의미가 생기는 밤이었다. 나는 사는 집 옥상에 올랐다. 세상의 끝에 서서 모든 종류의 건물을 그리는 꿈을 꾸었다.


“퍽.” 뒤를 돌아봤을 때 한 반장님이 움찔거렸다. 발목이 돌아갔다. 안전화 한 짝이 나뒹굴었다. 벗겨진 빨간 안전모 옆, 시멘트는 축축하게 번져가고 있었다.

“안 돼! 119, 119!” 08:45. 나는 휴대폰을 꺼내 여러 번 바닥에 떨어뜨렸다.

“야, 김 대리! 정신 차려!” 현장 소장이 달려왔다. 덜 마른 시멘트가 질척였다. 쓰러진 한 반장님의 등에는 회색 날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는 다리에 해머를 맞은 것처럼 주저앉았다. 한 반장님의 허리에는 안전고리가 없었다. 그렇게 부르짖었는데. 아침까지만 해도 함께 담배를 태웠는데. 오늘 어쩐지, 연기가 오르는 색이 짙었다. 그렇게 말했는데, 고리를 가지고 다니라고. 출근했을 때, 모든 게 어제와 같았다.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 요새는 아무 일도 없었지.


나는 초급 간부로 이 현장에 왔다. 신축 오피스텔을 지었다. 용적률 300%, 30m 건물 한 개 동의 옥상을 마감하는 날. 05:00에 출근했다. 반장님들과 모여서 담배를 태우고 잡담을 나눴다. 어제 뭘 했는지, 술을 몇 병을 마셨는지, 컨디션은 어떤지를 물었다. 대부분은 취기를 숨겼지만, 소주잔에 닿은 입술이 느껴졌다.

“술 취하신 분 없죠? 클납니다.” 물으면 늘,

“안 죽어 임마. 원래 노가다는 술빨이여.” 하는 식으로 웃어넘겼다. 말려도 안 되는 양반들이라, 심하게 비틀거리지 않으면 눈을 감아줬다.

“야, 김 대리. 담배 한 대만 찔러봐. 허허.” 한 반장님이 브이 자 손가락을 보였다.

“한 반장님, 저한테 담배 맡겨놨어요? 아따, 몇 개째야. 나중에 갚아.” 너스레를 떨며 담배를 꺼내 건넸다.

“알써, 임마. 근데 오늘 나 짱박혀 있음 안 되냐. 허리 아파.”

“에이, 반장님 그럼 안 되지. 오늘이 마감날인데. 프로가 프로답게. 아시는 양반이.”

“그럴 줄 알았다. 나 그럼 이 현장은 외줄 탄다잉. 어차피 비계 없잖냐.”

“에헤이, 또 그런다 또. 안 됩니다. 그러다 사고 나면 어쩌려고 그래요. 안 돼요.”

“야, 내가 운이 끝장나게 좋은 놈이야. 그러니까 이 나이 먹도록 노가다 하면서 다친 곳이 없잖냐. 다 짬빠야 임마. 경험과 기술. 오케바리?” 한 반장님은 담배를 공중에 연신 내뿜었다. 뿜은 곳에 또 뿜었다. 연기는 회색빛으로 뭉쳐졌다.

“안 된다고 했습니다. 확인하고 고리 없으면 업체 보고해요? 반장님.”

“짜식, 딱딱하기는. 알아따, 임마. 간다, 수고.”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 빨간 하이바가 눈에 밟혔다. 여러 번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고 손만 올려 보였다. 다른 반장님들을 찾아다니며 안전교육을 했다. 동그랗게 모여서 수칙들을 말하고, 구호인 “좋아. 좋아. 좋아.”를 외치면 오전 미팅은 끝났다.


06:00, 업무를 시작했다. 관리소장과의 면담을 했다. 나는 막내이기 때문에 큰 업무보다는 외주업체를 지시·감독했다.

“근무 중 이상 무”

“김 대리야, 별일 없지? 마무리까지 아재들 관리 잘하고 단도리 잘하라고.” 소장님은 간이 사무실의 소파에 앉아서 믹스커피를 마셨다. 단내가 컨테이너 박스를 꽉 채웠다. 김이 모락 나는 종이컵에 주둥이를 데지 않으려고 조심스러웠다.

“예, 뭐. 반장님들이 저보다 아는 게 많으니까요. 솔직히 뭐라고 하기가…” “김 대리, 너는 관리자여 임마. 쫄지 마. 그냥 막 대해. 어차피 노가다꾼들인데 서로 편하게 대해야 편한겨. 알겠냐? 아재들 술만 마시지 못하게 해.”

“예. 근데 안전띠 안 하려고 하는 반장님이 있는데, 말을 안 들어요. 소장님이 좀…” 나는 묵혔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그 한 반장? 그 양반 나랑 현장이 13년이여. 날다람쥐가 별명이야. 허허. 걱정하지 마, 별일 없을겨.” 그 말을 들은 나는 안심했던 걸까. 한 시간 내내 보이던 빨간 하이바의 잔상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하긴, 소장님이 몇십 년 일하셨는데... 이제 3년 차 대리인 내가 뭘 알겠어. 어디 가든 희한한 사람은 한 명 있는 거라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별 신경 쓰지 말고 할 일이나 해야지. 그렇게 현장을 돌며 음주 단속을 했다. 비틀거리며 일을 하다, 사고가 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술병의 흔적은 없었다. 나는 잠시 하이바를 벗어놓고 그늘에 앉아 땀을 식혔다. 정수리부터 턱끝까지 흘러내렸다.


07:35, 담배를 태우러 흡연장에 갔다. 한 반장님이 있었다. 나는 다가가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말을 걸었다.

“한 반장님, 날다람쥐였다며? 나이 쉰에 날 수나 있겠어? 하하.”

흡연장은 짧은 박수가 터졌다.

“임마, 내가 올라간 건물의 층수를 합치면, 하늘 끝에 닿아요. 넘을지도 모르고.”나는 고개를 들었다. 막 떠오른 해가 비쳤다. 숨어 있는 새벽의 냉기를 찾고 있었다. 콘크리트는 뜨겁고 하늘은 차가웠다.

“안전고리 주머니에 넣고. 자, 버리지 마세요. 업체 신고합니다. 말했어요. 반장님 우리 인연 끝까지 가야지.” 한 반장님 작업조끼 주머니에 안전고리를 넣었다. 반장님은 너털거리는 말투로 알겠다고 한 뒤, 아직 해가 닿지 않은 건물의 옥상을 향했다. 건물에 다닥다닥 붙은 통유리창에 날아가는 새 무리가 반사되었다. 구름은 한 점도 없었다. 나는 옥상을 흘겨봤다. 빨간 하이바보다 안전고리 한 개가 손끝에 걸려 나를 따라다녔다.


08:40, 건물 내부 순찰을 1층부터 30층까지 돌았다. 옥상에 올랐을 때 한 반장님이 보였다. 안전고리를 체결하지 않은 채, 크레인고리에 매달린 외벽 파트를 받고 있었다. 균형이 꽤 잘 잡혀 보였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대리석 난간 안쪽, 임시로 걸쳐 있는 쇠발판이 깔려 있었다. 그 끝쪽에서 다리를 약간 벌리고 무릎을 굽혀 서 있었다. 방향을 바꾸는 작업을 하는 일인데, 바람이 잠깐만 불어도 몇 톤 되는 쇳덩이가 180도 이상 틀어지기도 했다. 반장님의 다리는 쇳덩이처럼 붙어 있었다. 나는 눈으로 확인하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내려갔다.


08:45.

“정신 차려, 야! 김 대리! 정신 차리라고! 전화기 안 닫어? 미쳤어 지금?”소장님의 침방울이 얼굴에 튀었다. 그 타액의 이동이 보였다. 잠시 공간이 멈춘 것 같았다. 휴대폰을 빼앗겼다. 공기가 돌며, 목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야, 하이바 씌워. 각반 채우고, 안전고리 걸어 놔. 빨리.” 소장은 나와 본사 파견 직원에게 말했다.

“이럼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나는 말했다.

“돌았어? 너 짤리고 싶어? 시키는 대로 해 임마. 어차피 죽었는데.” 소장은 지퍼 끝을 잡고 내렸다. 자켓을 시멘트 바닥에 내리쳤다. 우리는 꺾여 있는 몸을 바르게 만들었다. 헬멧을 씌워드리고 안전화를 신겨드렸다. 각반을 발목에 채워드리고 안전고리를 허리에 걸어드렸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흔들리는 눈과 손을 니코틴으로 지웠다. 전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현장은 하얗게 덮였다. 소장이 옆으로 다가왔다.

“놀랐지? 형이 하는 말 잘 들어. 형은 이런 일이 너무 익숙해. 왜? 여기는 노가다판이잖아. 개인의 부주의한 사고는 언제든 흔히 있는 일이야.” 소장은 내 담배를 뺏어, 필터 끝까지 빨고 연기를 불었다.

“그래도 119는 불러야 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나는 주먹을 작게 쥐었다. “우리 회사 지정병원으로 가야 더 잘해드리는 거야 임마. 그런 게 있어. 네가 아직 어려서, 미숙해서 그래. 이쪽 일을 잘 몰라서 감정을 가지게 되는 거야. 알겠어?”

“그래도 바로 갔으면, 사실 수 있는 거 아닙니까?!”공기는 잠시 얼었다.

“아니, 이 자식이 끝까지 그러네. 네가 일을 못해서 그러는 거 아냐! 능숙했어 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딱딱 알아서 떠올랐겠지. 김 대리, 그렇게 안 봤는데 일 센스가 없네.” 소장은 소매 끝단을 접어 두 팔을 걷어 올렸다. 그리고 허리춤에 두 손을 올렸다. 고개를 바짝 들었다. 안전고리의 끝이 갈고리처럼 변해 따라왔다. 내 목젖을 찢는 것 같았다. 나는 차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시트보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 맥박이 뛰는 숨소리만을 느꼈다. 건물에 비친 통유리에는 빨간 하이바가 박혀 있었고 수백 개의 금이 가 있었다.

“미안허다. 너나 나나 잘못 없어.” 한 반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다시 간 현장에는 노란 테이프가 둘러 있지 않았다. 크레인은 쇳덩이를 끌어올렸고, 트럭들은 먼지를 뱉어댔으며, 담배 연기는 같은 장소에서 피어올랐다. 나는 한 반장님에게 갔다. 안전모가 놓여 있던 자리에는 검붉은 자국이 희미했다. 물로 지워진 자국 아래에 손을 올렸다. 끈적거리는 냉기가 올라왔다.

콘크리트는 피와 함께 양생 되었다. 건물의 끝에서 꿈을 품었다. 날아오르는 새가 되었다. 자신의 새 무리를 찾아 떠났다. 자유의 끝을 향해 날았다.


회사에서는 유족에게 적당한 위로금, 언론 노출 금지 조건의 계약을 했다. 반장님은 안전고리가 없었고, 회사는 안전망이 있었다. 건물의 그물은 고리 없는 추락을 막지 못했다. 사흘장을 치러드렸다. 그날은 수십 년 노가다로 쌓은 단단한 우정들이 모였다. 콘크리트 같은 손으로 작은 유리잔을 채웠다. 그들이 보낸 건 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들의 미래였다. 진실을 모르는 채 위로주를 건넨다. 어떤 심정인지 모른 채 향을 피운다. 과거의 액자 속에 웃고 있는 쉰 살의 남자에게 두 번 절을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내는 저고리를 쥔다. 두 남매는 소매에 누런 콧물을 닦아댄다. 모든 걸 아는 채, 나는 이 모든 걸 사흘 동안 반복한다. 어쩌면 삶의 끝까지. 한의 한이 사라지는 끝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