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스물네 바퀴 로터리를 돌았다. 사람 없는 새벽, 오늘은 안개가 꼈다. 마흔 번 정도 돌아도 손님이 없다면, 퇴근을 해야겠다. 나는 개인 택시 운전사다. 일반 택시 회사를 다니다, 운이 좋아 몇 년 전 처음으로 내 차를 샀다. 하얀색 세단, 천장과 시트를 퀼트로 개조한 나만의 공간. 거기에 취향을 맞춘 음악까지. 돌아다니는 일터, 역마살이 있다는 점쟁이의 말에 신빙성을 더해줬다. 끝없이 떠돌았지만, 늘 한자리에 있었다.
“어서 오세요.” 스물다섯 바퀴를 돌았을 때, 첫 손님을 태웠다.
“공항으로 가 주세요.” 손님이 타고서, 차에는 고급스러운 술의 잔향이 퍼졌다. 조금 파인 레이스가 달린, 네이비색 실크 드레스. 수수한 화장, 단정하게 올린 머리. 명품 미니백을 든 손, 부티가 났다. 공기가 답답했는지, 창문을 반쯤 열고 눈을 감았다. 술을 깨려 하는 듯 보였다. 오늘 첫 번째, 모르는 이와 나의 공간을 공유했다. 공항까지는 한 시간 반. 운전대를 잡고 전면 창을 바라봤다. 가로등을 흘려보내며 안개와 함께 터널로 들어갔다.
“손님, 터널이라서 창문을 올리겠습니다.” 룸미러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창을 올리고 음악을 틀었다.
‘Julie London -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느린 템포, 매혹적인 목소리가 오늘 밤과 이 터널에 잘 어울렸다. 얼마 달리지 않아, 반달 모양의 빨간 구멍이 보였다. 검은 연기가 천장을 채웠다. 뿌옇게 따라오던 안개가 먼저 빠져나갔다. 브레이크 페달을 살짝 밟았다. 앞쪽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바퀴는 멈춰 섰다. 곡이 끝나가고 있었다.
“손님 죄송합니다만, 앞에 사고가 난 것 같아요. 어쩌죠.” 등을 돌려, 그녀를 깨우려 톤을 높였다. 반대편 시트에 핸드백을 베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노래를 반복 설정 후 볼륨을 높였다. 창문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단지, 가슴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숨을 쉬고 있었다. 차에서 내렸다. 터널의 끝을 향해 오 분 정도 걸었다. 여러 대의 차가 뒤집혀 있었고, 바닥에는 기름과 유리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매캐한 탄내가 코를 찔렀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현장을 막아섰다. 더 이상 오지 말고 중간의 대피소로 가세요,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돌아본 내 차 뒤로, 끝없는 안개가 들이차고 있었다. 연기와 만나 회색빛을 띠었다. 나는 차로 돌아갔다. 문을 열었다. 뒷좌석에는 핸드백만 남아 있었다. 손님을 찾아 터널을 걸었다.
“손님! 손님!” 술에 취한 상태로 어딘가에서 잠에 들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십 분 정도를 찾아다녔다. 반대편 터널은 안개로 보이지 않았다. 다시 택시로 돌아왔다. 닫힌 문 사이로 음악이 흘러나왔다.
“손님! 어디 계셨어요? 한참 찾았어요. 취해서 다른 차에 밟히면 어쩌나 했다고요!” 나는 문을 쾅 닫고 손님을 쳐다봤다. 손님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창문을 열어 연기를 뱉었다.
“미안해요 아주머니.” 그녀는 창밖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담배를 태웠다.
“택시에서는 금연입니다. 그리고 지금 사고가 나서 연기가 가득해요. 뒤에는 안개도 있고 거기에 담배 연기까지, 꺼요. 돌아갈 수가 없어요. 공항 못 가요.”
“후훗. 이것만 태울게요. 밖은 추워서요. 어쩔 수 없죠. 살다 보면 사고도 나는 거죠. 죽을 사람은 다 죽어요. 살 사람은 살지요. 기사님이 나이가 더 많으셔서 아시죠?” 나를 쳐다보지 않은 채 말했다. 필터에는 립스틱 자국이 선명했다.
“이 아가씨가 지금, 혼자 여유롭네, 혼자 여유로워. 우리 비상 탈출구로 가야 한대요. 어서 나와요. 위험할지도 몰라요.” 사고 현장의 매연이 조금 더 커졌다.
“차 버리시게요? 왜요? 기사님 목숨값 아닌가요? 저라도 앉아 있을게요. 가세요.” 창밖으로 필터만 남은 담배를 던졌다.
“사람이 더 중요하지, 그리고 혼자 두고 어떻게 가요. 이 사람 참 이상하네.”
“저는 기사님처럼 있을 곳이 없어서요. 잠시만이라도 좀, 빌려주실래요?” 그녀는 담배 한 개를 입에 물었다. 마스카라가 번졌다. 허벅지에 떨어져 검게 빛났다. 택시는 터널보다 어두워졌다.
잠시 동안 말은 없었다. 음악만 흘러나오는 공간은 붕 떠 있었다. 내가 떠나면, 내 것이 아니게 될 것 같았다. 내가 없는 차는 누구의 것일지 모르겠다. 사이드 미러로 안개가 커지는 게 보였다. 앞쪽에서는 검은 연기가 다가왔다. 이 사람은 안개일까, 연기일까. 새벽의 손님이 내게 준 딜레마는 담배 연기와 함께 창밖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함께 택시에 머무르기로 했다.
“아휴. 그래요. 어차피 멀리 있는데, 차 문 닫고 있으면 안전하겠지 뭐. 그리고 담배는 딱 그것만 핍시다.” 핸들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뒤로 기댔다.
“아주머니, 기사님. 아니, 아주머니라고 해도 되죠?” 목소리의 톤이 낮았다.
“뭐, 그래요. 그게 그거지.” 생수를 따서 물을 마셨다.
“아주머니는 어쩌다 택시 기사를 하게 되었어요?”
“먹고살다 보니까, 그리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그렇구나... 저도 여행을 참 좋아했어요. 세계에 안 가본 곳이 없었죠.”
“좋겠네. 아가씨는 부자인가 보다. 그렇죠? 나는 전국은 다 가봤어.” 물뚜껑을 닫았다.
“돈은 뭐, 있을 만큼 있어요. 근데 없는 게 많더라고요, 살다 보니까. 아주머니는 살면서 제일 후회하는 일이 뭐예요?” 그녀는 담배를 꺼냈다.
“후회? 그건 매일 일어나는 일 아닌가, 싶네. 오늘도 여기 안 왔으면 집에서 자식새끼들 일어나는 거 보고. 밥 차려주고. 씻고 잤을 텐데.” 나는 생수를 건넸다. 받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잠시 택시 안은 음악만 흘렀다.
“한 대 태워 보실래요? 속이 뻥 뚫려요. 이 답답한 터널에 차 있는 연기를 내보낸다고 상상해 보세요. 생각만 해도 시원하죠? 그렇죠?” 나에게 담배와 라이터를 건넸다.
“아이고, 아가씨. 나 담배 안 태워. 수십 년 해 본 적이 없어. 생각해 준 건 고마운데, 후회할 짓 하지 말아야지.”
“저는요, 사람을 죽였어요.” 창가를 바라보다 문을 내리고 담배를 태웠다. 나의 손과 발이 굳었다. 움직이지 못한 채, 룸미러로 그녀의 움직임만 살폈다. 나는 생각했다. 스물네 바퀴만 돌고 집에 갔어야 했다. 삶은 언제나 우연과 선택의 연속이었다.
“저, 저 아, 아가씨. 나는 도, 돈이 없어. 응? 그러니까 그냥 가 줘. 부탁이야. 아들이 둘이나 있어.” 문을 열고 뛰어갈 공간을 상상하고 있었다.
“하하. 아줌마. 저 살인자 아니에요.”
“사람을 죽였다며?”
“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세요.”
그녀는 담배를 던지고 룸미러에 비친 나의 얼굴을 빤히 보며 이야기했다. 3년 전, 정략결혼. 재벌과 결혼한 뒤로 삶의 새로운 막이 열린 것 같았다고 했다. 대부분의 부부 관계는 연기에 가까웠지만, 쇼윈도 부부와는 달랐다. 여행이라는 포커스 하나,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르는 곳, 모르는 언어, 모르는 풍습을 따랐고 새로운 세상을 배웠다. 그들은 다름을 이해하려 했다. 그들은 사랑 대신 무언가를 채우려 했다. 그러다 세 번째 결혼기념일 전, 뱃속에 새로운 낯섦이 생겼다. 그는 가족들에게 후계자가 생긴 것을 알렸다. 성대한 파티를 했다. 매일 새로운 음식과 새로운 선물을 받았다. 시댁의 다정한 말투, 챙김. 사랑이란 건 없다가도 생기는 것일까.
“아주머니는 남편분을 사랑하세요? 아이들도요?” 말을 하던 그녀가 물었다.
“자식들은 내 보배야, 보배. 남편은 모르겠어. 정이지, 정.” 내 말을 듣더니.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는 말을 이어갔다.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계산을 해도 맞지가 않았다. 그 날짜가. 그래서 처음엔 속였다고 했다. 처음 느껴본 관심이 뜨거워서, 끄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물이 차오르는 배를 잡았다. 몇 주간의 행복이 터져버린 건, 그 한 번의 선택 때문이었다.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거짓과 연기의 관계를 벗어나, 그와 페르소나 밖의 사랑을 했다고 말했다. 그것은 불운일 수 없었다. 누구도 줄 수 없는 사랑이니까. 그녀는 다리 위에 올라서서 쏟아지는 물을 견뎌냈다고 했다. 그게 오늘이라고 했다.
“아이고... 아가씨, 그건 사람을 죽인 게 아니잖아요. 놀래라.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경찰에게 뛰어가려던 걸 참았네...” 나는 남은 생수를 들이켰다.
“다 끝났어요. 사랑도 사람도 다 잃어버렸어요. 선택을 해보지도 못했어.”
“앞길이 구만리인데, 아니야 아니야. 아가씨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거잖아.”
“살 사람이 아니었나 봐요. 그걸 정한 게 나일지, 세상일지. 꽉 막혀버렸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어요.” 그녀는 번진 마스카라를 손등으로 닦아냈다. 터널의 검은 연기는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안개는 벌써 차량의 리어 램프까지 닿았다. 붉은 등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음악은 여전히 같은 곡을 반복했다.
“왜, 그런 말 있잖아. 이것도 지나가리라. 분명 괜찮아질 거예요. 나도 살면서 후회할 짓 많이 했어요. 근데, 시간이 다 해결해 주더라. 진짜야, 진짜.”
“차라리 머리를 다쳐볼까요. 그럼 진짜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르죠. 그래서 기억 제거 수술하러 떠나는 길이었어요.” 비상통로의 불빛이 깜빡였다.
“그런 수술이 있어요? 금시초문이네. 부자들의 세계란 신기하네요. 나도 좀 했으면 좋겠네.” 룸미러를 손으로 고쳐 만졌다. 더 자세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국에 가요. 거기서 그 사람을 만나기로 했어요. 그럼 다시 시작하고 그렇게 되면,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가슴을 다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 ...”
다가오던 것들이 만나, 내 차를 감쌌다. 창문 밖은 보이지 않았다. 나와 그녀는 음악을 들었다. 터널의 중간에 갇혔다. 숨소리는 택시를 가뒀다. 곡이 끝날 때쯤 그녀는 문을 열었다.
“아주머니. 여기 택시비. 그리고 고마워요. 덕분에 속이 좀 뚫렸어요. 안녕히 가세요.” 그녀는 문을 닫고 담배를 꺼냈다. 불을 붙인 담배를 태우며 작은 계단을 올랐다. 나는 비상 통로를 바라보았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연기에 가려지고, 안개에 떠오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