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국숫집

단편소설

by 이겸

수선화 국숫집




나는 천상의 요리사를 만난 적이 있다. 한 사람이 살면, 여러 생이 이어진다고 믿는 사람. 국수를 대접하는 것은 오래 살라는 의미도 있었다. 후루룩, 그 소리에 숨 쉰다고 믿었다. 육수의 온기로는, 얼었던 의심도 녹아내리길 바랐다. 오랫동안 삶고 끓인 그의 마음이었다. 사는 법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VIP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식당. 수선화 국숫집. 그를 만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때는 2002년 어느 겨울이었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근근이 먹고살며, 버는 족족 적금을 부었다. 가난이 늘 발목을 잡았다. 딱, 1억만 모으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꿈을 가졌다. 마음이 앞서 있었던 걸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했다. 오랫동안 탄 배, 그물에 발이 걸렸다. 힘없이 끌려가, 어망 수거기에 다리가 끼는 사고를 당했다. 무릎 아래로 사라진 환상통을 겪었다. 치료비로 사라지는 내 꿈들을 밟았다. 내 피와 살점이 황해를 검붉게 물들였다. 다시는 바다를 찾을 수 없었다. 잡념을 죽여주는 마약성 진통제만이 나를 살게 했었다.

살아 있었지만, 살아 있는 게 아니었다. 천천히 수명을 단축하는 건, 소주만 한 게 없었다. 처음에는 코 찌르는 냄새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서운 건, 익숙해지는 순간 단맛만 남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표정을 펼 수 없었다. 4층 전세방에서, 가짜 창문이 달린 여인숙까지 추락했다. 해변에서 찍힌 화보가 보이는 달력을 찢었다. 처음에는 공원에서 잠을 잤다. 주택가의 의류 수거함을 털어, 버린 패딩과 이불을 꽁꽁 싸매고 지냈다. 어느 날 잠을 자는데, 이불속에서 천둥이 마구 쳤다. 조롱과 희롱이 뒤섞인 언어들, 발길질에 머리를 맞아 눈이 감겼다. 꿈속에서는 분명, 두 다리가 멀쩡했다. 가슴에 번개가 마구 쳤다. 오랜 시간 못 해 본 달리기를 했다. 지겹도록. 옆구리가 당겼다. 일어나는 흙먼지가 눈에 들어갔다. 두 눈을 감았다. 운동장 바닥이 어느새 토독토독 적셔져 갔다. 멀리서 보이는 초록색 노을이 내게 다가왔다. 그것은 원하지 않은 일출이었다. 나는 아직 밤을 원했다. 입가에 불어오는 바람이 강제로 가슴을 부풀렸다. 하늘은 나를 끝까지 가지고 놀았다. 고장 난 한쪽 다리가 사라진 신의 장난감. 여기 그들이 나를 고쳐 놨다.

“살아계셔서 다행입니다.” 초록 옷을 입은 사람이 말했다. “안심하세요, 여기는 안전합니다.”

“여기가... 어, 어디죠?” 나는 바람이 새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가톨릭 병원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병원비는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곤 이내 사라졌다.


몇 달 만에 밥을 먹었다. 역겹고 고약하게 버틴 냄새, 수저를 타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비슷한 처지의 냄새도 섞였다. 길거리에서 맞을까 봐, 돌아갈 곳이 없을까 봐. 용산과 서울역에 몰리는 거였다. 병원 밥을 먹으며 알게 되었다. 나는 패배도 실패도 아닌, 박탈이라 생각했다. 무료 급식소가 있다고 들었지만, 차라리 굶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다리병신을 떠올렸다. 어느 날 공중 화장실에 잠을 자러 갔다. 운이 좋게도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핸드드라이어를 잡았다. 지이잉- 허락된 행복과 행운 사이의 소리. 티셔츠 목을 한껏 늘려, 따뜻한 바람을 몇 시간 동안 넣었다. 밥보다 따뜻한 걸 찾았다. 사람이 쉽게 얼어버리는 한국의 겨울. 차라리 그럴 수만 있다면, 봄에 깨어나고 싶었다. 나의 바람도 섞어 몸속에 넣었다. 잠을 자는 건 영원히 공짜지만, 밥을 먹는 건 일말의 갈등이다. 한 끼 굶으면 도둑의 눈, 두 끼 굶으면 강도의 상상, 사흘째엔 사람을 포기했다. 누가 죽든, 누가 살든, 배를 채우면 충분했다. 길거리의 배고픔이란 야생과 같았다. 그들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살 때, 나는 보이는 풍요에 이성을 잃었다. 한 사람의 가방을 낚아챘다. 죄는 늦게 찾아왔다. 배가 채워지니 다른 게 부풀어 올랐다. 카운터에 있던 싸구려 알사탕을 입에 물었다. 눈물샘의 크기였다. 경찰서를 찾았다. 한쪽 남은 다리의 무릎을 던졌다. 철창 사이, 누렇고 축축하게 젖은 내 자리가 그려졌다. 그 방은 차가운 바람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암모니아 냄새가 가득 나는 변기 쪽으로 머리를 두었다. 빼앗은 가방을 위해서. 내가 그날 먹은 건, 빌어먹을 순댓국밥이었다. 44만 원이 들어있던 지갑을 꺼내 처먹은 게, 고작 순댓국밥이었다. 아직 그 내장들이 뱃속에 걸려있는 듯했다. 그 기분은 몇 년의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그분을 만난 겨울부터, 2003년 가을까지는 이런 일들이 있었다. 교도소 종교 활동에서 만난 남영수 수사님. 내 다리를 보면, 꼭 야곱 같다고 하셨다.

“천사와 씨름을 했나 봐요?” 수사님이 말씀하셨다. “천사를 이겨도 다리를 절었잖아, 야곱이. 허허.”

“아, 그런가요 수사님, 저는 성경을 몰라서요.” 나는 의족을 보며 말했다. “용서를 빌었습니다...”

“손 한 번 잡아볼까요?” 수사님의 눈가에 미소가 접혔다. 나에게 말씀하셨다. “밥은 거르지 마세요.” 수사님을 붙잡고 배와 싸우던 나를 불렀다. 바다를 잃어버렸던 날들을 고해했다. 남자 성직자의 손에서, 수평선 너머 어머니의 온기를 느꼈다. 그날 나는 십자가보다 큰 수사님을 가슴에 걸었다. 매일 기도하고, 매일 손을 씻고, 매일 잘린 무릎 아래도 닦았다. 하늘이 아닌 바다를 위함이었다.

출소일이 다가오자 나는 고민거리가 생겼다. 이곳에서는 독실한 천주교인. 나가선 결국, 노숙자로 전락한다고 생각하니 환상통이 도진 것 같았다. 이날부터 기도를 해도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사님... 저 고민이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제가 지은 죄를 갚으며 봉사할 수 있을까요? 다리가 이래서...” “너무 멋진 생각이네요, 고마워요. 말씀해 주셔서.” 수사님은 눈을 보고 말씀하셨다. “할 수 있습니다. 마침 내년 1월부터 국숫집을 운영할 생각인데, 보조가 필요하네요. 요리할 줄 아세요?”

“라면… 이요.” 나는 멋쩍게 말했다. “설거지라도 하겠습니다. 시켜만 주십시오, 수사님!”

“야곱과 함께하는 국숫집이라 기대가 되겠습니다.” 수사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수사님의 발등을 붙잡았다. 내장을 쏟아내는 듯, 눈물 섞어 쏟아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를 가졌다. 난 세례를 거부했다. 철문 밖으로 나가는 날이 다가와도, 삶은 여전히 비대칭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지금 나의 두 다리와 같았다. 신의 종이 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용서를 받고 싶었다.


겨울, 개업일. 세 평 남짓한 낡은 가게. 우유나 신문을 배달했던 것 같다. 반투명 유리창에는 뜯다 만, 형형색색의 시트지 자국이 남아있다. 1970년대 양식의 2층짜리 건물. 외관은 직사각형 타일들이 붙어있었고, 문은 은색 철문 셔터였다. 드르륵- 문은 열리고, 곰솥은 하얀 연기를 내며 끓었다. 통으로 썬 무, 파, 양파, 그리고 붉은 망에 가득 넣은 거대한 멸치들이 춤을 췄다. 나와 남영수 수사님의 시작은, 멸치국수 하나. 2004년의 새해를 맞이해 찾아오실 VIP 손님들을 기다렸다. 이곳의 특별한 규칙, 줄을 서면 맨 뒤로 간다는 것. 어느 누구 하나 욕심을 내면, 서로를 죽인다는 수사님의 가르침이었다. 양보하고, 배려하고, 나눔을 떠먹여 주는 가게였다. 국수의 ‘수’는 목숨 ‘수(壽)’라 하셨다. 그들이 자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한 끼의 국수가 수많은 사람을 살린다는 철학이자 신념이었다.

“뒤로 가세요. 줄 서면 꼴찌, 꼴찌는 일등이라고 했었죠?” 수사님은 VIP 한 분에게 말했다. “뒤에 분 먼저 들어가세요. 이리로.” 기본적 평등함. 그것은 배고픔 앞에서도 지키는 작은 실천이었다. 원하는 만큼 먹고, 남기지만 않는다면, 수사님은 늘 인자하셨다. 예전에 교회 투어를 한 적이 있다. 예배를 하나 드리고 나오면 100m도 넘는 줄을 서서 기다렸다. 밥도 빵도 아니고 500원을. 그렇게 인천 지역을 꿰고 있는 노숙인을 만나면, 그날은 2,500원 정도를 벌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담배 한 갑, 소주 두 병이 되었다. 사람들이 주말마다 기도를 올리면, 건강을 가져가셨다. 때로는 공원 벤치에 누워 일어서지 못했다. 술의 재물이 되었다.

“야, 이놈아! 뭘 쳐다봐?” 취한 노숙인이 식당에서 시비를 걸며 옆 테이블에 소리쳤다.

“나가세요.” 수사님이 그 노숙인의 겨드랑이를 치켜올리며 힘주어 말하셨다. “술 깨고 다시 오세요.” 문밖으로 밀어냈다. 쫓겨난 그 입은 음식물 쓰레기보다 악취가 나는 것 같았다. 뒷머리가 까져서 햇빛이 반사되었으나, 눈부시기보다는 불발탄 같은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랐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인도해야 했다. 나는 불발탄을 잡으려 목발을 옮겼으나, 수사님이 나를 잡으셨다. 말없이 육수 통의 뚜껑을 열어보셨다. 김이 피어오르며 천장을 덮었다. 포기한 삶, 자제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길거리에서 나의 본모습을 깨달았다. 배고프지 않으면 모범 시민으로 살아갈 모습. 그 그림이 그려졌다. 기회가 온다면, 다시 바다로 나가고 싶었다. 잃어버린 내 꿈을 찾을 수 있다면, 작은 배를 가진 선장이 하고 싶었다. 아직 건재한 내 두 손, 조타실에서의 무전, 어군을 찾아다니는 바다 위의 여정. 나는 떠다니지만, 멈춰있는 것 같았다. 배 위에서 국수 한 그릇을 나누어 먹는 꿈을 꾸었다. 멸치를 잡아, 뽀얀 해가 지는 노을을 바라봤다. 나는 내 다리로 갑판 위에 서 있었다.


“저... 수사님 혹시 밥 좀 없나요?” 어느 VIP 손님이 말했다. “국수는 금방 꺼져서 배가 고프거든요.” 수사님은 이 말을 듣고 큰 충격에 빠지셨다. 23년 수사 생활에 가장 자신 있고, 잘해 먹던 국수 한 그릇. 대접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셨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일인데, 자신의 배꼴을 생각하며 어리석은 판단을 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안경을 벗고 이마를 만지셨다.

“아이고, 우리 손님을 만족 못 시켜 드렸네요. 다음번에 오시면 밥을 준비해 둘게요. 꼭 다시 오세요. 아셨죠?” 수사님이 말씀하셨다. 그날 이후, 수사님과 나는 이웃들에게 받은 기증으로 점심을 차렸다. 아침과 저녁 사이, 가장 해가 높게 떠오른 날. 그들도 그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오는 날이면, 수사님의 친구가 준 묵은지로 김치찌개를 대접했고, 물메기가 몇 상자 들어오는 날에는, VIP 손님들의 잔치가 벌어졌다. 비록 소주는 마시지 못하지만, 스테인리스 컵에 담겨있는 물 한 잔으로 서로의 겨울에 건배했다. 국수가 없는 수선화 국수. 손님들의 성원에 힘입어, 바로 옆 건물, 큰 식당에 월세 계약을 하게 되었다. 사실상 주민들의 식당이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그들을 도왔다. 질척거리는 발을 끌던 노숙자가 아니라, 남영수 사장님의 어엿한 손님으로 매일을 살았다. 굶는 것보다 추위를 싫어하던 나. 계절의 변화는 뜨끈한 국물에 밥 한 술 말았을 때 바뀐다는 것. 2004년의 겨울이 끝날 때쯤 깨달았다. 봄이 지나 여름이 오더라도, 노숙자의 이름으로 불릴 땐 추울 것이다. 나는 이런 변화가 비단 여기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거라고 믿었다. 수사님이 모든 걸 안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눈길 위의 발자국 하나가, 다음 발자국을 만들고 그 발자국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생긴다. 좋은 일은 다른 좋은 일을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앞치마를 입고 계시는 수사님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당당한 마음속 발자국이 뛰었다. 남은 다리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존재했다. 한쪽은 그들을 위해 남겼다.


2005년 겨울, 수선화 국숫집은 전국에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물론 수사님께서 훌륭한 셰프이기 때문이다. 전통에 따라 줄은 서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음식의 양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다. 다행인 건 우리 VIP 손님들 중 세 분이 지원을 했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동지들을 배부르게 했다. 이분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노숙자가 되었는데, 방송을 보고 찾아온 손님들이었다. 크게 다르지 않은 파동들이 섞여가고 있었다.

“수사님 저 딱 한 잔만, 해도 될까요?... 죄송해요...” 알코올 중독 치료를 6개월 받고 다시 나온 정요 씨가 말했다. “어휴- 진짜 죽겠어. 죽겠다고.”

“그래요. 정요 씨, 우리 오늘은 딱 큰 컵으로 한 잔만 합시다.” 수사님은 스테인리스 컵에 소주를 콸콸- 한가득 부으며 말씀하셨다. “저기 뒤에서 마셔요.”

술의 맛을 들이기 시작할 때쯤, 교도소를 갔다. 얼마 길지 않은 노숙 생활, 찬 바닥에 널브러져, 눈 뜨지 못한 이들을 종종 봤다. 거리의 사람들은, 등대 없대가 없었다. 떠도는 시간을 저으며 살았다. 난파된 배처럼 한 곳에 멈춰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게 미래의 나인 걸. 그러나 수사님을 만나고서, 나는 노숙자가 아니라, 봉사자가 되었다. 이 얼마나 큰 낙차인가. 추락보다 쉬운 출세. 봉사라는 고결에 있었다.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은 존재할까. 그렇다면 어떤 것이 기준일까. 정요 씨도 그런 삶을 살기로 수사님과 약속했다. 수사님은 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못 박으셨다. 정요 씨는 수사님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머리에 큰 흉터가 있었다. 맨 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하루가 찾아왔다고 했다. 자랑을 늘어놓았다. 자신이 마신 초록 병들을 일렬로 세우면, 한라산 높이는 될 거라고 했다. 그렇게 말했다. 단돈 천 원이면 소주를 마실 수 있었다고 했다. 사발면 두 개를 먹는 게 좋지 않냐고 물었다. 정요 씨는 병째 들이키고 자야 한다고 했다. 밤이 지나, 내일 밤이 온다고 했다.

“오늘 여덟 번 실패했을지라도, 이제 겨우 여덟 번이니. 앞으로 아홉 번, 열 번에 성공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안 그래요, 정요 씨?” 수사님이 말씀하셨다. “오늘은 반 병, 내일도 반 병 그렇게 늘어나지만 않게 마셔요, 정요 씨. 아주 좋아요.”

“이제 그만 마셔야죠…” 정요 씨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저 취직도 하고 싶거든요, 수사님.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고 하셨죠?”

“그럼요. 그럼요. 정요 씨는 이미 멋진 사람이니까요.” 수사님은 말씀하셨다. 따뜻한 목소리가 주방의 된장찌개보다 더 구수하게 보글보글했다.


쑥색 봉고차에서 청년들이 여럿 내렸다. 뒷문을 올리니 쌀 포대가 있었다. 그들은 이것밖에 내려놓지 못해 부끄럽다고 했다. 수사님은 감사 수첩에 이름을 적으려 여쭈었지만, 한사코 거부했다. 진짜 부끄러워할 사람들은 멀리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쾅- 봉고차의 뒷문을 닫았다. 작은 하얀 십자가가 멀어지고 있었다. 또,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가져왔다. 자신이 판매하는 고등어를 몇 상자 들고 찾아왔다. 전국에서 기증하는 식료품의 택배가 점점 쌓여갔다. 수사님은 이런 게 바로 기적이라고 하셨다. 나눔이라는 걸 해본 적 없었다. 내가 받는 게 아님에도, 가슴 한편이 걸리며 쓸렸다. 박스를 열면, 사람 냄새가 났다.

우리는 최고의 식자재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만큼 값이 비쌌고, 세상에 싸고 좋은 건 없었다. VIP 손님들은 먹은 밥만큼 하얀 웃음으로 값을 치렀다. 카운터는 없지만,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식당의 가치가 올랐다. 누구는 비빔밥을, 누구는 국만, 누구는 반찬 투정을ㅡ 그 모든 걸 간파하고 기억하셨다. 단골손님을 적어 놓는 화이트보드판의 이름이 어느덧 150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단골이란 건, 매일 오며, 몇 년 이상 온 손님들을 말했다. 남영수 총괄 셰프님. 그는 새치가 났다. 운치가 있었다. 더 깨끗한 음식을 제공해 드리기 위해서 머리는 다듬었지만, 반찬 값과 새치는 맞바꾸었다. 운치보단, 낭만이 있는 사람이었다.

“사장님 제가 염색약 사 와서 해 드릴까?” 창만 씨가 수사님의 뒤통수를 보며 말했다. “어구- 이거 많이도 났네. 만 원만 주세요, 금방 갔다 올게.”

“새치도 멋지지 않나요 창만 씨? 그러니까 사장이지. 다 멋있는 거야, 원래 사장은.” 수사님은 너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저기 뭐야, 그, 여의도에서는 새치 나면 어떻게 해요, 민배 씨?” 주방 보조로 새로 들어온 창만 씨가 물었다.

“여의도? 그런 게 어딨어. 그냥 이발소에서 해결하죠.” 민배 씨가 말했다. 민배 씨는 증권맨이었다고 했다. 그는 주식 투자 실패로 마포대교를 열세 번 정도 왕복했다고 했다. 겨울이지만 셔츠가 젖었고, 걸음을 멈췄을 때 그대로 얼어버렸다고 했다. 강물이 얼어서 닿으면 아플 것 같아, 한쪽 다리를 차마 들 수 없었다고 했다. 모든 걸 잃었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종이를 잃었나. 숫자를 잃었나. 나는 다리를 잃었다. 그는 들 수 있는 다리가 있었다. 이기적인 생각인가, 그런데도 나는 생각했다. 삶의 거울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수사님! 금고가 열려있어요!” 창만 씨가 말했다. “바, 반찬을 사러 가려고 운영비를 꺼, 꺼내려고 했는데…”

“창만 씨 숨차죠? 천천히 말해도 괜찮아요.” 수사님이 말씀하셨다. “그래요. 없어진 게 있었나요, 창만 씨?”

“네… 가계부 빼고는 전부 사라졌어요, 수사님.” 창만 씨는 수사님의 바짓단을 보며 대답했다. 쭈글거리고 밀가루가 튀고, 기름과 섞여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돈이 사라진 금고보단, 나는 수사님의 바지만 보였다. 주방에는 생선 튀긴 냄새가 났다.

“내가 이 자식을 잡아서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정유 씨가 생선 내장을 발라내던 칼을 내려놓고 말했다. 15년 배를 탄 그의 손끝이 떨렸다.

“여러분, 진정들 하세요. 우선은 우리 손님들에게 밥을 대접합시다. 다들 알겠죠?” 수사님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눈은 약간 커진 것 같았다. 숫자를 다뤘다고 해서, 수사님이 그에게 부여한 업무는 회계인데 횡령을 했다. 사람은 적고 할 일은 많았다. 노숙자계의 지식인이 이곳에 들어왔다고 했을 땐, 모두 신기하고 의아해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직업, 성별, 나이는 모두 허상이었다. 우리는 사람이었다. 배가 고프면, 강도 짓을 하고. 배가 부르면, 도둑질을 하는. 자신 생각뿐이다. 나도 그 점을 이해했다. 남이 배고픈 건 내 배로는 느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개 같은 삶. 아뿔싸… 앞으로는 이 욕도 쓰지 못할 것 같다. 그보다는 나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절구를 쿵쿵- 내려치며 다짐했다. 마늘이 짓이겨졌다. 사람이길 거부했었다.


2006년 겨울 어느 날, 정요 씨는 알코올 중독 조절에 실패했다. 이번이 열두 번째. 수사님은 그래도 등을 쓸어내려 주신다.

“자. 우리 열세 번째에는 꼭 반 병 이하로 만납시다. 정근 씨, 알겠죠?” 수사님이 지갑을 꺼내며 말씀하셨다.

“자. 이건 센터에서 쓸 용돈. 넣어둬요.” “수사님… 죄송합니다. 자꾸 초록 병이 보여서…” 정요 씨가 천장을 보며 말했다. 형광등 빛이 어둡게 흩어지며 산만해졌다.

“다- 이해합니다.”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정요 씨를 중독 센터에 넣어준 뒤, 수사님과 걸어 나왔다. “신부님, 뭐 하나만 여쭤볼게요.” 나는 말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마음처럼 크고 넓어질 수 있어요?” 신부님은 걸음을 멈추고 내 두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하느님이 아니에요. 그 말인즉슨, 크고 넓지 않아요.” 수사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도 못하는 건 남도 못한다. 그렇게 생각이 드네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잠시 의족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은 아직 다리가 있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보는 상상을 했다.

“장애가 있어도, 그런 생각이 들까요?” 나는 말했다. “이 손을 자세히 본 적이 없나요?” 수사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참 오랜만에 손을 잡아볼까요?” 잡은 수사님의 손은 딱딱했다. 물렁한 돋보기가 쥐어진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정말 나는 몰랐었다. 수사님은 척골 장애가 있었다. 나는 볼 수 없었던 걸까. 보지 못했던 걸까. 하늘이 파랗다가 붉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애써 피했던 걸까. 입을 꾸욱 다문 채로 수사님 뒤를 따랐다. 붉어진 내 볼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저는, 천사와 씨름했지만, 수사님은 천사와 싸우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나는 물었다. “저보고 예전에 야곱이라고 불렀던 거 기억하세요?”

“기억하고 말고요. 야곱 식당으로 하려다가 참았어요.” 신부님은 돌아보지 않고 말씀하셨다. “저는 뱀과 싸웠답니다. 청년 시절이 떠오르네요. 혈기가 왕성했죠. 무엇도 두려울 게 없었어요. 잘못을 했죠. 저도 죄인이었습니다. 죄에는 크기가 중요하지 않으니,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을게요. 대신, 이 손은 그날 뱀과 싸우다가 다친, 내 훈장 같다고 해야 할까? 어때요? 그래도 제 손 멋있죠?”

수사님의 여정을 들었다. 행복을 찾아 떠돌았다고 하셨다. 고통을 벗어나고 싶었다고 하셨다. 그러다 마리아 님의 큰 그림자를 밟은 새벽, 그 성당에 들어갔다고 하셨다. 할 줄 모르는 기도를 무작정 했다고 말씀하셨다. TV에서 본 대로 깍지를 꼈고,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다고 하셨다. 코로 들어오는, 오래된 나무 벤치의 냄새. 그걸 맡고서, 태어나 처음으로 평안을 느꼈다고 하셨다. 십자가도, 마리아도, 예수도 아니라 나무 냄새라니. 사람의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다. 난 물고기처럼 그물에 걸렸다. 삶을 낚여서 바다보다 깊이 떨어졌다. 수사님은 기도를 하고 뱀을 구원한 것 같았다. 상황이 나쁜 상황을 만드는 건지, 나쁜 일들이 우리를 깨우치게 만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모든 일들은 정해져 있기도 하면서, 정해지지 않았다. 삶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신조차도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게 웬 고구마 통?” 창만 씨가 말했다. “수사님 고구마 장사하시려고요?”

“창만 씨, 꿈을 이루어 주려고 내가 구해왔지.” 수사님이 말씀하셨다. 고구마 통 위로는 뿌연 연기가 올랐다. 고구마는 반을 쪼개니 황금이 피었다.

“제가… 이걸 받아도 될까요, 수사님?” 창만 씨는 말했지만, 입이 벌어져 있었다. 창만 씨는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고 했다. 그 덕분에 가장 사랑하는 꼬마 아가씨를 빼앗겼다고도 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 살 때의 일이라고 했다. 삶에서 도망친 일보다, 두려운 게 있다고 했다. 변해버린 자신의 얼굴에, 더 이상 뽀뽀를 받지 못하는 것. 그렇게 매일 지하도에 숨어, 신문지를 끌어안았다고 했다. 왜 자신을 그토록 괴롭힌 사업이 꿈이라고 얘기한 걸까. 창만 씨는 그때 많은 걸 잃었고, 가장 큰걸 얻었다. 땅에 숨어, 하늘을 볼 준비를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만 씨는 연신 눈을 비볐다. 돌아서서 코를 풀었다. 산만한 덩치에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냈다. 수사님을 들어서 빙글빙글 돌았다. 모두가 크게 웃었다. 정육점을 하시는 김 사장님이 고구마 여섯 박스를 기증하셨다. ‘밤고구마’가 언젠가 창만 씨 손에서 ‘금 고구마’가 되길 바란다는 마음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친척처럼 서로를 챙겼다. 그래서 이곳은 고향을 잊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우리는 VIP 손님에서, 봉사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고구마의 단내가 식당 앞을 훑고 간다. 창만 씨의 손이 빨라지고 있다. 꿈이 익어 간다. 나의 꿈은 어떤 향일까.


창만 씨와 나는 장사를 같이 해보기로 했다. 창만 씨는 사장님, 나는 이사님. 우리는 함께 시장 조사를 나갔다. 말은 거창하지만, 포장마차를 몇 개 돌아보는 일을 계획했다. 식당이 끝날 때쯤 사람이 다니는지 궁금했다. 걷는 동안 대화가 오고 가지 않았다. 곁눈질로 창만 씨를 쳐다봤다. 의족과 함께 다니는 게 창피한 것 같았다. 절뚝이는 나를 편안해하는 이는 없다. 받아들인 지 오래되었지만, 가슴이 시큰한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땅만 보며 걷는 창만 씨보다, 내 걸음이 더 빨랐다.

“아주머니 떡볶이 1인분만 주세요.” 포장마차에서 창만 씨가 말했다. “어묵 국물도 좀 주세요.”

“둘이서 1인분 시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거기다 뭐 국물까지 달라고? 해도 너무하네.”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말했다. “알겠어요. 먹고 가요.”

“죄송해요, 오늘 대여섯 군데 정도 떡볶이만 먹어야 해서요… 실례했네요.” 재찬 씨가 말했다.

“대여섯 군데? 뭐 한다고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떡볶이 장사라도 하시게?”

“아뇨, 아뇨, 저희는 군고구마 장사를 할 거라서요. 만들면 아주머니 먼저 가져다 드릴게요.” 창만 씨가 말했다. 가슴에 힘이 들어가 있는 듯 보였다.

“말이라도. 사람이 됐네.” 아주머니의 손이 빨라졌다. “기분이다. 이건 서비스. 그냥 먹고들 가셔.” 빨간 국물에 깨를 듬뿍 뿌려 주셨다. 김 가루가 올라간 어묵 국물을 주셨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떡볶이는 매콤하고 아주머니는 고소한 사람이었다. 나의 다리를 쳐다보지 않으셨다. 창만 씨는 여전히 땅만 보고 걸었다. 나는 멈춰 섰다. 돌아서서 식당으로 향했다. 수사님께 조심스럽게 오늘 일에 대해 고해했다. 땅만 보던 그의 눈이 불편한 걸 몰랐었다. 사람은 느낀 대로만 알고, 아는 대로만 느끼는 것 같았다. 모든 걸 아름답게 보고 있다는, 내 생각이 틀린 것 같았다. 고개를 숙였다. 다리를 허공에 휘저었다.


창만 씨는 한참 뒤에나 돌아왔다. 그런데 그의 뒤편으로 검은 일몰보다 더 어두운 행색을 한 사람이 식당으로 기어들어 왔다. 민배 씨였다. 동네는 어둡게 타올랐다. 그는 문을 열거나 넘지도 못한 채, 그 앞에 몇 시간을 꿇고 있었다. 우리는 쌍욕을 뱉고 싶었지만, 소금을 꽉 쥐었다. 차분하게 마늘을 다듬는 수사님의 머리를 봤다. 새치가 더 많이 생긴 것 같았다. 아마도 그 새치는, 인내심을 빨아먹고 사는 게 아닐까. 오래 문을 열지 않는 수사님을 보며, 우리는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용서라는 게 우리만 어려운 게 아니구나, 다행이다. 수사님도 사람이라서. 어쩌면 충분한 반성의 시간을 주려고 하는 걸까. 우리는 모두 그날의 주마등을 켜보고 있었다.

“수사님! 얼굴이라도 뵙고 자수하러 가겠습니다.” 민배 씨가 말했다. “직접 사죄드릴 기회를 한 번만 주십시오!” 창만 씨의 설거지 소리는 평소보다 컸는데 들리지 않았다. 문 하나를 두고, 겨울 창의 떨림은 멈출 기미를 안 보였다. 침묵은 마늘 냄새보다 진했다.

“사과는 내가 아니라 후원자님들에게 해야 하는 건데…” 수사님이 혼잣말을 하셨다. 그런 광경은 난생처음 봤다. 화가 난 게 아니라, 깨달음을 기다렸다. 알코올 중독 치료 센터에 들어가 있는 정요 씨가 떠올랐다. 죄송하다고 가는 내내 하더니, 들어가서도 그 말만 반복했었기 때문이다. 정요 씨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자신을 가두지 않고 끊을 수 없다면, 깨닫지 못한 게 되니까. 수사님은 왜 정요 씨에게는 관대할까. 아마도 그해 겨울, 금고에서 달아난 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식어버리고 굳어버린 밥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식당 앞은, 돌아가는 손님들의 발소리보다,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식당 앞 골목을 울렸다.

“끼익-” 얼어버린 문이 열렸다. 온기가 하얗게 빠져나갔다.

“민배 씨 왔어요? 많이 춥죠, 들어오세요.” 수사님은 문을 잡고 말씀하셨다. “민배 씨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 부탁해요.” 한가운데에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은 면회를 떠올리게 했다. 식탁 가운데,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방탄 플라스틱이 있었다. 도망갈 때 입었던 그 옷. 스웨터. 하얗지도 노랗지도 못한, 누런 색. 민배 씨는 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나도 한때는 그랬으니까. 노숙자가 아니다. 잠시 떠도는 거라 우기다가, 감옥에서 골로 갈 뻔했지. 덕분에 수사님을 만났지만. 인생은 매번 선택보다 깨달음을 요구했다.

“수사님…” 민배 씨가 말을 했지만 흐렸다. 자신의 신발을 쳐다봤다. 구부러져 있는 등이 떨리고 있었다. 자존심이 떨어진 건지, 또 달아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마늘을 손에 잡았다. 귀를 머리 위로 들었다. 수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느 곳에 돈을 썼냐가 아니라, 어느 마음이 다시 이곳으로 향하게 했냐고 하셨다. 그 말에 민배 씨는 주식을 했는데, 벌어서 열 배로 갚으면, 모든 게 좋아진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숙자 생활도 청산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육쪽마늘을 갈랐다. 마지막으로 그는, 가져간 돈의 절반만 넣어도, 스무 배, 서른 배 정도로 불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이때부터 그의 목소리가 식당을 울리기 시작했다.

“나가세요.” 수사님이 말을 자르며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그는 고개를 숙였다. 우리에게는 그 어떤 사과나 인사 한마디 없었다. 그는 다시 돌아올까. 수사님은 닫았던 문을 다시 열었다. 겨울바람, 언 손으로 문을 잡고 계셨다. 우리는 굵은 서리를 던졌다. 그럼에도 수사님은 나쁜 단어 한 개를 던지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정요 씨처럼 카운트를 세어 주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수사가 아니니까. 아직 반성의 깨달음을 얻지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나는, 남의 돈을...... 수사님과 그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나의 얼굴을 슬며시 끼어 보았다. 나는 아직, 가방의 주인을 만난 적이 없었다. 손은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44만 원은 나에게 죄와 구원을 주었다. 나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헤엄칠 뿐, 교도소 밖은 또 다른 감옥이었다.


2006년, 봄이 오고 있었다. 겨울의 남은 서리가, 골목 사이에 내려앉았다. 해가 들지 않는 곳에는 사람의 빗자루질이 필요했다. 계절도, 혼자 할 수 없는 게 있는 것 같았다. 목발을 짚고 하얀 싸리를 쓸어냈다. 잘려 나간 발이 시려지는 걸 느꼈다.

“창만 씨 고구마 네 개만 줘요.” 이발소 사장님이 말했다. “큰 놈으로 줘 봐, 큰 놈으로.”

“사장님 오셨어요? 네 개요, 이천 원입니다.” 창만 씨가 말했다. “이웃끼리 무슨 이천 원이야, 고구마가 한 박스에 만 원인데.” 이발소 사장님이 말했다.

“사장님, 제가 이 돈을 받아서 밥 하려고 그래요.” 창만 씨가 속삭이듯 말했다. “다 기부받아서 먹는 거 뻔히 아는데 속이지는 말아야지,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나도 기부를 몇 개나 했는데!” 이발소 사장의 톤이 높았다.

“네... 죄송합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먹고 있습니다.” 재찬 씨가 말했다. 나도 옆에서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봉사자이자 노숙자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봉사자의 탈을 쓴 노숙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나를 무너뜨리고 나를 굶겼다. 그리고 다시 밥을 먹기 위해 살아가야 했다. 그날 고구마의 냄새가 역했다. 타버린 껍데기의 그을음도 아니고, 싸구려 합판에 붙은 검은 불도 아니었다. 생각은 나를 지배했다. 그 속에 갇혀 새까맣게 익어갔다. 누가 꺼내 주기를 바라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수사님이 꺼내 주셨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어둠 속에 있었다. 진짜 구원은 나에게 있었다.

언제든지 씨름을 할 수 있었다. 그게 천사든, 아니면 악마든. 다리는 아직 한쪽이 건재했다. 마음속에 내려둔 녹슨 닻을 올렸다. 그날, 나는 오랜만에 조타실 위에 섰다. 배를 타고 만선의 상상을 했다. 꿈의 어군을 찾는 베테랑 선장이 되었다. 어떤 파도를 만나도 넘어설 수 있었다. 배는 출항했다. 수사님이라는 등대를 향해서. 나의 항로를 향해서.


“수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손을 잡아볼까요?” 수사님이 말씀하셨다.

“제 꿈은 멀리에 있네요, 수사님.”

“꿈은 가까이 두고, 멀리 나가세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여기에 꿈을 두고 가요, 잃어버리면 다시 와서 찾아가세요.”

“... 수사님은 혹시 신이 나 천사가 되고 싶으신가요?”

“제 꿈은, 신도, 천사도 아니죠.”

“그럼 수사님의 꿈은 하늘에서 내려주신 요리사군요.”

“허허. 그거 참 멋진 아이디어네요. 정말이에요.” 눈을 지그시 감으셨다.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셨다.


한참 동안 손등을 쓰다듬고 두드려 주셨다. 목발 없이 걸을 때까지, 백 번이고 일어섰다. 세상에는 내가 설 곳이 너무도 많았다. 깨달음은 내 안에 있었다. 꿈을 남겨둔 채, 꿈을 이룬다. 이 모든 건 이렇게 줄여서 말해보고 싶다.


“마음만 먹는다면.” 나는 말했다.

땅도 하늘도 아닌 바다에 서서.











-'서영남 수사님의 인간극장'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내용은 허구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