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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일 Oct 19. 2024

붕대를 풀어 버리다

왜 그래야 하는지를 잊어버리다

"와! 풀면 안 되는데?"


몸은 비록 느리고 불편하여도

동작하나에 흐트러짐이 없는 장모님이

옷을 입으시다가 넘어지셨다.


도와줄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하시는 일이 갈수록 줄어드는 탓에

자존심을 높여 드리려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옆에서 지켜만 보는데..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으셨다.

날카로운 모서리에 팔꿈치를 다치셨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모셔간다.

가장 가까운 정형외과를 찾아 응급처치를 하고

절대 풀면 안 된다는 다짐과 함께 

붕대로 돌돌 말았다.


워낙 몸조심을 하는 분이라

어딜 하나 다치질 않는 분인데..

스스로 하실 일이 갈수록 줄어드는 느낌이라 

그리 마음이 편치를 않다.


노쇠한 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멍하니 앉아계시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내가 왜 이렇지 하고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 느낌..

항상 이러한 모습이 나를 슬프게 한다.

본인은 얼마나 불편하실까?


한창이시던 시절

몸에 걸치는 옷 하나도 

불편함을 용납하지 않으셨던 장모님 

그래서 

한여름에는 모시적삼이라고 하던가?

그 옷이 아니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몸 매무새를 자랑하셨더랬다.

그렇게도 몸에 무언가를 걸치면 

답답하거나 불편한 것을 싫어하셨는데

갑자기 칭칭 둘러싼 붕대가 싫으셨나 보다.


집에 오시자마자

붕대를 풀려 하신다.


급하게 제지를 하였지만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결국 붕대를 다 풀어버리고

피멍이 벌겋게 물든 속살이 다 드러나 버렸다.

아! ~ ~ ~


부랴부랴 다시 붕대를 감아드리는데

이제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

또다시 풀 텐데...

그렇다고 소위 남들이 말하는 

양손을 묶는다는 것은 도저히 할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풀면 안 된다고 

의미 없는 다짐을 단단히 받고 잠자리에 들어가셨다.

그리곤... 

오분에 한 번씩 조용히 들어가 본다.

다행히 

오늘 하루를 마감하신 듯하다.


아마도 

내일 아침이면 

이게 뭐꼬? 하고 

다시 푸실 것 같다.


그러면

또 다른 오늘이 다시 펼쳐지겠지? 


내일은 

다시 내일일 뿐이라는 생각

치매환자에게나

나에게나

그저 내일은 

반복되는 오늘이 아니라

그냥 내일일 뿐이다.


다시 시작하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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