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사위가 쓰는 장모의 치매일기

by 이순일

"이 문이와 안열리노!"


하루를 바쁘게 움직이시는 장모님이

전기밥솥 앞에 서 계신다.


밥솥 뚜껑이 안 열린다고

계속해서 밥솥의 여러 가지 버튼을 눌러대신다.

그 집념은 대단하셔서

열릴 때까지 여러 가지 시도를 하신다.


밥 할 때가 되셨다고 밥이 얼마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밥솥뚜껑이 안 열리고 있는 것이다.


비록 중증치매 2급을 앓고 계시는

하시는 일의 모든 행동이

비정상적이라 실수 투성이지만


당신의 모든 행동은

실수를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와 그러노? 무슨 문제가 있나?"라고

물어보면

(장모님은 사위인 나를 오빠로 알고 있다는 것은 이전글에서 밝힌 바 있다)


"이 문이 안 열리요" 하면서

계속해서 시도를 하시는 모습은

정상인이 봐도 완벽한 행동이지만

밥솥에서 나오는 음성은 난리가 난다.

심지어는

"취사를 시작합니다"라는 버튼을 누르기까지 하신다.


그 정도 되면

슬며시 다가가서 문을 열어드리고

밥솥에 밥이 있는 것을 확인시켜 드리면

그제사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돌아서신다.


비록

하시는 일마다 꾸짖음과 원망을 듣는

대형사고(?)를 치신다 할지라도

장모님의 모든 행동에는

그 뚜렷한 이유와 명분(?)이 있다.

제지당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시지만

장모님의 뇌는

그것을 기억 속에 남아있는

완벽한 일로 판단을 하는 것이다.


뒤죽박죽 된 기억

퍼즐처럼 짜 맞추어

정리가 되지 않는 기억이지만

그 조각 하나하나는

완벽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이 퍼즐을 쓸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조립만 안될 뿐이지

존재하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은

장모님의 완벽한 기억인 것이다.


그러니

장모님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신다.

그 흩어진 기억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을 느낀다면

우리는 소중하게 한 곳에 모아놔야 하는 것이다.


비데를 다루는 일

흐트러진 물건을 치우는 일

지저분한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려 하는 일

밥솥을 다루는 일

그리고

용변 후 뒤처리를 하고자 하시는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보면

뭐 하나 제대로 하시는 일이 없지만

장모님은

단 한 번도 실수하신 적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면 된다.


그러면

장모님은

슬며시 웃으면서 자신감을 가지신다.


장모님은

실수투성이 치매환자가 아니다.


장모님은

하는 모든 일이 완벽해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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