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가 쓰는 장모의 치매일기
사위가 쓰는 장모의 치매일기
[멀쩡한 사위가 중증 치매 진단받은 장모님과 함께 산지 6년 하고도 10개월째]
장모님과 함께 있으면 솔직히...
시간이 안 간다.
하루가 너무 길다는 생각
살다 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흘러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것은 보통
즐겁고 행복한 일을
경험할 때가 아닌가 생각을 한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모든 상황에 대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하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다독거려 봐도
몸이 불편한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고로
나도
그러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
함께하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장모님을 깨워야 한다.
밤새 아무 일은 없었는지
혹시
침대에서 넘어지시지는 않았는지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잘 주무시고 계신다면...
일으켜 세워
밤새 소변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기저귀를 확인한다.
이상이 없다면
배변을 하시도록
이동식 변기에 앉혀드린다.
잠에 취하셔서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하신다.
거의 안아서 이동을 해야 한다.
힘이 좀 들기는 하지만
배변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용무를 마치면
바지를 주섬주섬 올려드리고
부축하여 다시 침대에 눕혀드리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곤히 주무신다.
아직도 날은 어두컴컴하다.
하루는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
24시간이 아닌
25시간이 되는 것이다.
해가 뜨고
잠에서 깨어 일어나시면..
집안 구석구석 전체를 돌아다니신다.
가족들은 다 출근을 하고 없지만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불안해하신다.
모든 방을 다 둘러보시고
또 둘러보신다.
한 바퀴 돌고 나면
돌아본 사실을 잊어버리시고
또 방 전체를 둘러보신다.
똑같은 멘트
똑같은 대사
아무 일도 없다는 나의 답변
이렇게 반복되는 대화가 오가고 나면
부엌을 두리번거리신다.
배가 고프신 것이다.
밥통을 열어보기도 하고
냉장고를 열어보신다.
식사를 차려 드리면
정말 맛있게 드신다.
드시면서
짜다 싱겁다 많다 적다는 표현은
치매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장모님이 평생 지니고 계시던 깐깐함이다.
이걸 다 맞혀드려야 한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고
만족스러우시면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그렇게
아침식사가 끝나면
이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신다.
집에 가셔야 한다는 것.
장모님의 행동은
식사를 하기 전과
식사를 하고 난 뒤로 나뉜다.
식사를 하기 전에는
다른 것은 신경을 쓰질 않으신다.
오로지 허기를 채우는 것에만 집중하신다.
하지만 일단
식사를 마치시면
본격적으로 외출준비를 하신다.
먼저
당신이 생각하는 외출복을 입으신다.
물론 맘에 드는 옷은 모두가 장모님의 옷이다.
그다음 액세서리를 비롯한 장신구의 착용이다.
시계를 비롯 반지와 핸드폰을 찾으신다.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맘에 드시면
다 당신의 것이라는 아주 묘한 자신감.
치장을 마치고
가져갈 물건을 다 챙기시고 나면
이제 현관문과의 전쟁이다.
본격적인 실랑이가 벌어진다.
신발도 숨겨보지만
신발 내어 놓으라고 계속해서 보채신다.
결국 신발을 내어드리면
문을 열어달라고 성화를 부리신다.
논리적으로 이해를 못 하시기에
안쪽으로 문을 잠가 놓는데
문을 열어달라고 난리를 치신다.
약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
오로지 집에 가시겠다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신다.
그렇게 힘겨운 실랑이를 벌이고나도
겨우 시간은 정오를 넘길까 말까...
그렇다.
시간이 안 간다 ㅎ
점심을 차려드리는 것으로 관심을 잠깐 돌리지만
드시고 나면 다시 이차전이 벌어진다.
참 신기한 일이다.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은
중증치매 판정을 받으신지
6년 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잊어버리시지를 않는다.
에라 이제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하고 포기할 즈음이 되면
현관문과의 씨름이 슬슬 끝난다.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에는
맛있는 음식이 효과가 있다.
그중에서도
매우 단느낌이 드는 사탕과 과자는
그야말로 효과만점!
사탕도 드리고 과자도 드리면서
씹는 활동을 하시게 하면
잠잠하고 유순해지신다.
또는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하면
매우 즐거워하신다.
빨래를 정리해 달라고 하거나
방바닥과 거실바닥을 청소해 달라고 하면
놀라운 집중력으로 일을 하신다.
그렇게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간다.
아직도 하루는 저물 생각이 없다.
가만히 옆에 와 앉으셔서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를 털어놓으시는데
문맥은 하나도 맞지를 않지만
진지하게 얘기를 하신다.
이걸 들어드려야 한다.
약 한 시간에서 두 시간
끊임없이 털어놓으신다.
저녁을 차려드리고
욕실로 모시고 가서
용변을 보시게 하고
양치질을 시켜 드린다.
TV를 켜드리면
집중해서 보실 때가 있다.
그렇게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눈을 끔뻑끔뻑거리시며 피곤해하신다.
이제 기나긴 하루가 끝나가는 시점이다.
잠자리를 준비해 드리고
자리에 눕혀드린 뒤
이불을 덮어드리면
기나긴 하루가 끝난다.
참....
시간이 안 간다는 느낌
하지만
곤히 새 곤새 곤 잠드시는 모습에
하루의 모든 피로는 잊어버리고
또 다음날을 기약하며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지게 된다.
결국 장모님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장모님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만들어드리고 싶은 작은 바람이
사라지지를 않으니
나의 하루는
계속해서 25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