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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란지 Nov 21. 2019

돼지코

너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나와 사랑에 빠지는 일

일곱 살 땐 지 여덟 살 때부턴 진 모르겠는데 그때 어디 살았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어서 대략 저 정도 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옛날부터 나에겐 매일 밤 잠자기 전 "코 열 번씩 땡기고 자기"라는 의식이 있었다. 한 방에 우리 가족 다 같이 아늑하고 정답게 누워선, 따뜻하게 이불을 덮고 엄마가 하라고 한 숫자대로 몇십 번씩 코를 잡아 땅기고 있는 내가 기억 속에 있다. 몇 번씩 잡아당길지는 엄마가 그날그날 던지기 나름이었는데 하루는 열 번이었고 어떤 날은 삼십 번이었고 또 어떤 날은 백번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백번을 한 적은 없다. 손으로 대충 만졌다가 떼고는 백번 했다고 뻥쳤기 때문이다. 엄마도 속아 넘어가 줬고.


엄마가 "매일 코를 잡아땡겨주면 코가 높아진다"라고 알려줬다. 과학적인 설명도 해줬다. 난 아직 어리기 때문에 연골이 연해서 코를 계속 높여주면 연골이 늘어나서 진짜로 코가 높아진다고 했다. 나는 그걸 믿었다. 그리고 엄마도 그걸 믿었다. 나는 눈이 너무 나빠서 눈나쁨이 발각된 세 살 때부터 안경을 썼기 때문에 아기 때부터 안경을 쓰고 자란 내가 엄마는 늘 안타까웠고 아기 때부터 내가 안경을 쓰게 된 건 다 엄마 탓이라고 엄마는 믿었고 그리고 안경을 써서 코가 눌러져서 코가 아기 때 그대로 안 자랐다고 엄마는 믿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내 코를 정말 신경 썼던 것이다.


코땡기기의 올바른 스킬을 알려주겠다. 콧방울의 바로 위쪽 콧등을 엄지와 검지로 옴팡지게 잡은 후 강하게 누름과 동시에 손을 얼굴 바깥족으로 당겨줘야 한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어떤 날은 (비록 누워있지만) 마음속으로 진지한 태도를 갖춰 결연하게 코를 땡겨주었다. 진심으로 코가 높아지길 바랬다. 이유는 몰랐고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고 엄마가 그러니까 그냥 그래야 되는 건 줄 알았다. 귀찮은 날은 싫다고 징징거리고 그냥 시늉만 하고 잤지만 엄마가 시킨 걸 하지 않는다는 그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때부터인지도 모르겠다. 내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내 코는 그렇게 반드시 "잡아당겨줘야만 하는", 반드시 잡아당겨줘서 꼭 높아져야 완성되는.. 그러니까 다른 말로 "지금 이대로는 안 되는 코"라고 믿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만 컸다면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일종의 엄마와 나의 '놀이'같이 지내왔던 것 같다. 뭐든 같이 하는 건 좋은 기억이 된다. 그러다 초등학교란 큰 물에 들어갔더니 거기서 만난 남자애들이 나를 보고 돼지코다 라고 했다.


놀림을 받았다. 충격도 같이 받았다. 지금 성격이라면 이 망할 미친놈이? 하고 일말의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그때는 어리고 많이 여리고, 어리고 여려서 더 착하고, 모든 걸 솜처럼 부드럽게 흡수하던 나였다. 그 친구(미친, 친구는 무슨 친구)가 다른 사람한텐 안 그러고 나한테만 그랬다는 사실은, 그렇다면 내가 진짜로 돼지코인가보다 라고 (깊은 상처와 함께) 마음속에 남았다. 

아 나는... 돼지코였어.




다행히도 나는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으로 자라났다. 나는 언제나 잘하는 게 많았고 그 사실을 나도 알게 되었고 어디서든 꿀리지 않는 스타일의 성격 같은걸 얻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돼지코였다.  더 이상 아무도 놀리지 않았고 각자 자신에게 관심 있을 뿐 남의 코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돼지코였다.

이 사실은 콤플렉스까지는 아니었지만 초등학교를 거치고 10대를 거치고 20대까지도 알게 모르게 그리고 은근하게 나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정도로 하지만 꾸준히 나를 지배했다. 이런 식이 었다. 나도 스스로가 예뻐 보이는 날이 가끔 찾아올 때가 있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예뻐 보여도, 그럼에도 그 예쁨은 완벽하지 않았다. 와 오늘은 내가 좀 예뻐 보이는구나 그래도 난 돼지코였다.

난 내 스스로가 항상 언제나 돼지코라고 믿었고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고 그 사실은 나의 외모를 한순간도 완벽하게 긍정하도록 만들어주지 못했다. 내 코는 나를 주눅 들게 했다.





학교를 벗어나 회사도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얼굴생김을 크게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시기가 왔다. 내 얼굴이든 남의 얼굴이든 마찬가지였다. 그게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 얼굴보다는 매력이고 능력이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게 중요하고 내 앞에는 이뤄야 할 것들이 흘러 넘쳤다. 자연스럽게 코 따위는 잊고 살고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코 따위에 주눅 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내 코를  사랑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단 한 번도 사랑한 적은 없었다. 





서른셋이 되었고 


내가 아기란 것을 낳았다.




나의 아기 해온이가 나에게 왔다. 갓 낳은 나의 아기를 보았는데 아기가 나와 완전하게도 똑같은 코를 가지고 있었다. 손대면 바스러질 것 같은 나의 아기가 너무 예뻤다. 가지고 태어난 그 모습 그대로 완벽했다. 너무 아름다워 이런 것을 낳은 내가 자랑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아기가 태어난 지 80일이 지났다. 나의 아기는 아직도 나에게, 나의 우주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반짝거린다. 너무나 반짝거려서 덩달아 "나의" 온 존재까지도 같이 반짝인다. 달이 해의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처럼 그렇게... 내가 이 아기 해온으로 인해 빛이 난다.




아기에게서 어떤 작은 부분도 "이랬으면..." 하고 바라는 부분이 없다. 그 모습 그대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아름답게 유일하고 또 귀했다. 나와 똑같이 생겨 쌍꺼풀 없이 두꺼운 눈두덩이가 그렇게 선하고 아름다운지 몰랐다. 눈꼬리가 내려가 웃으면 쳐지는 그 눈으로 바보같이 웃거나 눈물로 얼룩져도 순하고 아름다워 소중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예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나와 똑같이 생긴 바로 그 코가 지금 보니 너무 예쁘다. 아 이렇게 생겼었구나. 이렇게나. 예쁘게 생겼었구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코였구나. 이제야 알았다. 그러면서 신기하게도 아니 이상하게도? 어느순간부턴지 내 아기를 닮은 내 코가 (사실은 나를 닮은 아기의 코지만) 너무너무 좋아지고 자랑스러워졌다.


아기를 통해서 해온이를 만나고서야 이렇게나 내 코가 유일하게 예쁜지 알게 되었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건지. 너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 코는 너무너무 예쁜 돼지코였다.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앙증맞고 예쁜 코. 바로 그게 내(너의, 그러니까 나의) 코다.


  


나는 이제부터 내 코를 너무 사랑할 것 같다. 





너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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