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반응 한 번에 무너진 후 다시 글쓰기 위해 내가 했던 단 한 가지
브런치 작가 수락 메일을 보고 기쁨도 잠시, 적어도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꼬박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아무도 부여하지 않는 의무감을 혼자서 느끼고 나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우연히 하나의 글이 페이스북에 짧게 노출이 되었고 조회수가 하루 만에 급격히 올라갔다.
브런치 작가도 그렇고 일시적인 노출도 생각하지 못한 결과였다. 유명한 작가들에게는 별일 아니지만 지극히 평범한 나에게는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것도 잠시, 남편이 말 한마디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한 달 동안) 절필을 하고야 말았다.
틀린 단어가 너무 많아. 영어식 번역투가 많고...
친한 지인들은 으쌰 으쌰 칭찬과 용기를 주었는데 정작 남편은 저런 말을 쏟아냈다. 앞뒤 말없이 딱 저 말만 했다. 긍정적이고 성실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의미 없이 부정적인 말을 던지는 남편 스타일을 알고 있지만 너무 속상하고 슬펐다.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마음이 상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글을 쓰지 않았다. 당신의 부정적인 피드백이 얼마나 큰 참사(?)를 만들어내는지 깨닫기를 바랐다. 절필(?!)한 지 2주가 넘어가니 글을 쓰지 않는 이유는 그냥 나의 게으름 때문임을 알았다.
물론 방학을 한 아이들을 보느라 힘들고 휴가 가느라 지친 이유도 있다. 이유는 얼마든지 많았다. 애써 변명하지 않아도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은 누구라도 이해한다. (글쓰기 자체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단지 내가 글을 쓰지 않아도 그 누구도 독촉하는 사람도 없고 나의 글을 기다리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충분히 게으를 수 있는 현실이 좋으면서 아쉬웠다.
남편의 말이 빗장이 되어 고민스럽더라도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의 문이 닫혀버린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미 개설해놓은 브런치는 어찌할 것인가. 달랑 몇 개의 글만 전시한 채 빈 공간으로 남겨둘 것인가.
쓰기는 써야 한다. (나름의 기준으로) 절필은 한 달을 넘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극복하려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덮어두었던 상처와 두려움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 남편의 말에 상처 받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더 이상 어떤 말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아버렸던 것이다. 그러기 전에 물어봤어야 했다.
틀린 단어가 그렇게 많아? 어떤 단어들이 틀렸는데?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
나는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때 글에 대한 비판이나 지적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던 적이 많았다.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아주 작은 비난에도 나는 금세 쪼그라들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비슷한 일이 벌여졌고 나는 방황하고 포기했다.
어떤 부분을 고치면 좋을지 남편에게 물어봤다면 국어교사답게 남편은 잘 알려줬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다음에는 설명한 것들 기억해서 잘 적어볼게'라고 대답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그 단어를 써야 했던 나만의 이유를 설명했어도 되었다.
나는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서 마음속으로 내가 했어야 했던 말을 되뇌었다.
천근만근 같았던 상처와 두려움이 갑자기 훌훌 날아갔다. 곧장 브런치 글쓰기 페이지를 펼쳤다. 한 달 동안 단 한 글자도 적지 못했는데 그냥 글을 썼다. 하루아침에 글을 잘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작은 이야기라도 일단 쓰고 보자며 스스로 다독였다.
사실 나는 내 글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했다. 남편 덕분에 필요한 훈련을 했다고 해야 할까? 상대방의 반응을 내가 조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두 번은 '아내 글인데 칭찬 좀 해주면 어디가 덧나냐'라고 따질 수 있지도 모르겠다. 그것보다 요동치는 심장을 붙잡고 왜 그렇게 비판하는지 이유를 물어보고 들을 수 있는 태도를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어렵다면 나처럼 혼자서 작은 목소리로 말해보는 훈련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