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재미있고 깊이 있는 독서토론을 위해
나는 책을 읽고 꼭 서평을 쓰고 싶었다. 주관적인 느낌을 주로 담아내는 독후감이나 북리뷰가 아닌 보다 객관적이고 설득적인 글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서평 쓰기는 쉽지 않았다. 책에 빠져 읽다가 내가 느낀 감상을 상대화하여 책에 대한 비평의 말로 바꿔서 쓰는 일은 많은 연습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던 서평쓰기.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다면 시작도 안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서평을 쓰고 싶었을까?
네 아이 육아 중에 나는 다양한 북클럽을 참여했다. 동네 엄마들과 오프라인 책모임을 5년 넘게 하고 있었고, 숭례문학당을 알게 되어 온라인을 통해서도 틈틈히 책 읽고 발췌 단상을 올리고 있었다. 아이가 아픈 일이 아니면 빠지는 일이 없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책 읽고 내 생각을 나누는 일은 나의 존재를 확인받는 일이었다. 상대방은 그 책이나 책모임이 중요하게 여기거나 내용이 궁금하지 않은데도 나는 기회가 되면 책 이야기를 했다. 가끔 상대방의 고민을 듣고 책에 나온 부분이 도움이 될까 열심히 설명한 적도 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집에 돌아와 자기 전 이불킥을 날렸다. 후회와 함께.
하루키는 야구장에서 갑자기 소설을 써야겠다는 에피파니(계시)를 경험하고 소설가가 되고 바로 신인상까지 탔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런 비슷한 계시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나도 서평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세 사람과 세 장면이 스친다. 특히 <아픔이 길이 되려면> 책을 두고 대립각을 세웠던 순간이 기억난다. 저자가 동성애자를 향한 연민의 마음이 너무 과하다며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5점 만점을 주며 저자의 세계관과 뛰어난 글쓰기에 감탄을 했던 나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냈다. 찌릿찌릿 불꽃이 튀고 어색함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 둘 눈치를 보며 자기 의견을 말하는 데 부담스러워했다. 다음 나눔을 해야하는 한 멤버의 흔들리는 눈동자, 우리 둘을 쳐다보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각성이 왔다.
나는 왜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 불편했을까.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을 비판할 때 나를 거부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고 머리 속으로 생각해도 기분이 나빴고 그 사람도 싫어지기 시작했다. 책 그게 뭐라고? 책모임이 좋아서 참여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사람과 책이야기가 거슬리기 시작하니 책모임이 힘들어졌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더이상 사람들의 의견에 일일히 일희일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책을 읽고 모임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따져보면, 결국 나와 다른 생각, 새로운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참여하는 게 아닌가? 내 생각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여러 번 들으면 너무 지루한 일 아닌가 오히려? 이렇게 생각의 전환을 하고 책모임에 참여하면서 토론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나와 완전 다른 의견에 순간은 움찔하지만,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가만히 이유를 들어보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에서 나온 내용이 많았다.그 경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는 순간이다. 예를 들어, 앞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저자가 쓴 다른 책 <우리 몸이 세계라면> 토론을 할 때 나와 대립각을 세웠던 그 멤버는 이 책 역시 별로였다고 말하면서, 동성애에 대해 불편했던 구체적인 이유를 말해주었다. (여기서 적어야할지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듣고 보니 (공감되지는 않지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의 장점을 객관적이고 설득적으로 드러내며 신뢰감을 주는 책소개 방법이 바로 서평이다. 그래서 서평에 관심을 가지고 <서평 글쓰기 특강>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으로 수업을 하는 숭례문학당에 온라인 서평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서평 수업인데 1년 넘게 독후감만 줄곧 썼다. 독후감이든 뭐든 써내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마감 내 완성된 글을 쓰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였다. 누군가는 서평을 쉽게 쓸 수 있다며 관련 책도 낸 걸로 안다. 서평의 범위도 넓고 에세이식 서평도 많아서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서평이 쉽게 씌여지지도 않고 쉽게 쓰는 방법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책의 장점과 단점을 비평의 언어로 설득력 있게 쓰는 일은 어느 정도 독서력과 사유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어렵다는 말은 아니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작업이며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유독 서평이 어려웠던 이유는 그만큼 책을 주관적으로 내가 감동받은 부분 위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서평 쓰기 습관이 자리 잡기까지 나름 시행착오를 잘 거쳐온 것 같다. 지금은 어떤 책이든 어떤 글쓰기든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에 이어서)
서평 쓰기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으면 발췌할 대목, 쓰고 싶은 주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읽고 나면 개요를 짜고 쓰기에 돌입하게 되지요. 이를 습관처럼 하게 되면 몇 시간 안에 한 편의 글이 탄생하게 됩니다.
물론 퇴고는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평 쓰는 습관으로 인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매번 어떤 식으로 쓸지를 궁리하는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것이 훈련이고, 경험이고, 습관입니다. 서평 쓰기 역시 경험의 양으로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