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홀몸'이 아닌

다 괜찮을꺼야, 하지만 나는?

by 책선비

넷째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임신 테스트기의 선명 두 줄 앞에 말 그대로 망연자실. 남편에게 전화해서 이 사실을 알렸다. 점심 시간에 집으로 온 그를 보고 울음 터뜨렸다. 한참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남편은 너무 우는 거 아니냐고, 한숨과 서운함이 담긴 목소리였다.


익숙한 산부인과 앞. 그동안 세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키우며 오고갔던 이 곳. 늦은 결혼 때문에 아이를 빨리 갖고 싶었고 매번 임신을 기다리며 테스트기 두 줄을 고대했다. 테스트기의 희미한 두 줄에도 얼른 확인하고 싶어서 산부인과에 달려갔다. 의사 선생님이 아직 아기집이 보이지 않으니 2주 뒤에 오라고 할 때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기다리냐고, 무척 애를 태우기도 했다. 별 일 없이 잘 크는 아기를 확인하고 안심하며 돌아섰던 그 여정이 늘 즐거웠다.


다시는 임신으로 산부인과에 올 일이 없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임신으로 산부인과에 왔다.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산부인과는 여전했다. 이름을 말하고 이유를 말한 뒤 진찰 순서를 기다렸다. 예전의 경험을 미루어보아 임신이 아닐 수도 있는 가능성은 거의 아예 없었다. 생명을 두고 계속 나쁜 예상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의사선생님은 이미 상황을 아신 듯 얼굴에서 약간 긴장감이 느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인사도 대충하고 선생님의 눈도 피했다. 테스트기 확인하고 왔다고 하니 그러면 진찰을 해보자고 하셨다. 초음파에 찍인 작은 점. 임신이 맞았다. 원래라면 축하 인사를 주고 받아야 하는데, 나는 “넷째는 생각도 못했는데요”라고 말했다. 의사선생님은 잠깐 머뭇거리셨다. “그래도, 낳으실 거죠?” “네!” 바로 대답하는 나를 보시고 안심하듯이 환하게 웃으셨다. “다 괜찮을 거에요.”


도저히 괜찮을 수가 없었다. 다시 시작되는 임신과 분만과 육아의 여정. 마흔에 넷째를 낳고 다시 독박육아를 시작할 수 없었다. 이건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곧 셋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온종일 육아를 끝낼 참이었다. 1년 과정 독서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며 내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호혁선 엄마에서 겨우 내 이름을 찾아가고 있었다. 글을 쓸 때 제목 옆에 내 이름을 쓰는 게 이제 좀 익숙해지고 있었다. 다시 원점이라니, 아니 그 보다 더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발끝에 아무 것도 닿지 않을 것처럼.


배가 나오기 시작한 임신 5개월째부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옆으로 누워도, 가만히 앉아 있어도 힘들었다. 그런데 7살, 4살 2살 세 아이 육아는 어쩌란 말인가. 친정 엄마도 안계시고 주변에 육아를 도와줄 분이 아무도 없었다. 아프고 힘든 대로 버티는 시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넷째 때문이었다.


건강하게 별탈없이 태어나기만 한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그것이 희망이었다. 내 몸이 좀 불편하고 힘들어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서 막달에는 기어다녔어도 견딜 수 있었다. 딸이 아니여서 잠깐 실망했지만 건강하기만 하면 괜찮았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수없이 되뇌이던 주문도 곧 효력이 떨어졌다.


'뭐가 괜찮은 거지? 누가 괜찮은거야? 진짜 괜찮은 상황이면 괜찮다고 말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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