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자 줄이자 털어내자 노력하자
내가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은 결국 다른 누군가가 마음에 안들어 욕을 하고 싶을 때 강해진다. 내 욕을 잘 들어줄만한 만만한 사람을 머리 속에 굴려보고 어떻게 내 입장에서 말할 수 궁리를 하느라,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온갖 괘변을 늘어놓으며 보냈던 허송세월... 후회막심이다.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남욕을 하지 않겠다, 내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내 편을 만들기 위해 남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대략 1년 전쯤부터 마음을 독하게 먹었는데 잘 안되서 여러번 후회하고 반성했던 것 같다. 그런 사소한 일로 내 시간과 에너지를 갉아먹었으니 결국 내 손해였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최근 3-4개월동안 몇 번의 위태로웠던 순간을 참고 넘겼다. 그랬더니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누군가를 만나고 왔을 때 항상 과거를 꼽씹으며 이불킥했던 내가 그럴 일이 없어졌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었고 여전히 내가 이런 부분에서 약하구나 라는 걸 알게 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자책보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독였다. 다음에는 불필요한 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내가 나를 응원해주었다.
하지만 오늘 또 큰 위기가 닥쳤다.
오늘도 대놓고 나를 싫어하는, 옆에 있어도 눈인사 한번 건네지 않는 한 사람을 보면서,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꼬여있는지 느껴졌다. 그러다 나도 인사 한번 제대로 안하는 사람인데 내가 뭐라 할 자격이 있나 싶어 그냥 웃어 넘겼다. 마음껏 싫어하라지 뭐. 그러든 말든 나는 내 인생 잘 살꺼니깐.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런 인간이 있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인데 어쩌겠나.
또 말 안드는 남의 자식을 보면서 이건 너무 심각하다고, 그 엄마를 불려다놓고 니가 너네 아이를 돌봐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러다 내가 컨트롤 못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며 꼭 말 안듣는 아이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 두 경우를 보면서 또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의 이런 불편함이 합리적이고 합당하는 확인을 받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인간들은 모두 문제적 사람이라는 그 말을 들으려는 이 악한 마음. 또 그 말을 정확하게 해줄 사람을 머리 속으로 물색하면서, 어떻게 하면 좀 고상하게 이 상황을 전달할지 잠깐 고심했다.
아무리 고상하게 말한다고 한들, 결국 남 이야기, 남의 자식 험담 일 뿐이다. 내 고민, 내 기도제목을 말한다고 하면서 남 욕하는 건 당사자 뿐만 아니라 내 말을 들어주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남을 그렇게 취급하면 나도 그런 취급을 당하기 마련일 것이다.
내 불편함을 내가 돌보면 되지, 꼭 누군가에게 시시콜콜 말하면서 남 욕 섞어가며 말해야할까. 내가 내 감정을 확인하고 해소하며 성숙을 위해 어떻게 할지 스스로 답을 찾으며 나아가야지 누가 대신 이래라 저래라, 호응해주길 바라고 해답을 주기를 의지하는 건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일 뿐이다. 남을 보는 시선을 결국 자기에서 나온다. 자기를 그렇게 보고 판단하고 있다는 말과 똑같기 때문이다. 남을 의지하지 말자. 안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