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최고의 보상이자 보람이야
"넷째라고요? 아이가 넷이에요? 애국자네요. 아이 하나도 힘든데 대단하세요."
애국자 소리는 자주 듣는다.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려고 아이들을 줄줄이 낳은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나는 저출산 국가의 애국자가 되었다. 칭찬인데 좀 애매하다. 이어서 국가에서 수당을 좀 받지 않냐고 한다. 세금혜택 등 복지가 좋지 않냐고. 조금 받기는 하는데 크게 도움은 되지 않는다. 없는 것보다 낫기는 하다. 대충 이렇게 응답하곤 한다. 진짜 궁금해서 물었다기보다 아이 키우기 힘든 세상에서 고생하고 있다고 듣는다. 국가에서라도 좀 도와야지 애국자인데, 그런 뉘앙스인 것 같다.
아이가 넷이라고 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 어느 날 만삭인 몸으로 산책하다가 예쁜 카페에 들어갔다. 시댁 근처에 새로 생긴 곳이었다. 아기자기한 그릇과 브로치와 모자 등 수예공품과 고풍스러운 그림도 전시되어 있었다. 한참 구경을 하다가 유자차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다. 넓은 마당에 잘 생긴 하얀색 개와 비슷한 빛깔의 새끼 한 마리가 엎드려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이의 태동을 느꼈다. 곧 여름이 오면 넷째가 나온다. 다시 시작하는 육아 생활. 3살, 5살, 8살 세 아이와 어떻게 지낼 것인가. 아득했다.
"와 만삭이네요. 더운데 고생이 많겠어요."
유자차를 건네주시며 아주머니가 말을 건네신다. 내 휴대폰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아이들 사진을 얼핏 보시더니 몇 째냐고 물으신다. 넷째라고 하니 세상 환하게 웃으시며 등을 두드려 주신다. "차 값은 받지 않을 테니 꼭 순산하라"라고 손을 꼭 잡으신다. 아득함을 잠시나마 덜어낸다.
그러나 넷째는 난산 끝에 겨우 만났다.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내 품에서 캥거루 케어를 받지 못하고 바로 신생아실로 보내졌다. 나도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죽을 것 같았다. 피가 멈추지 않아 생전 처음 수술에 들어갔을 때 아찔함을 느꼈다.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병실에 왔을 때 멈추지 않는 눈물. 폭포수같이 쏟아진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무조건 우리 둘 다 건강해야 한다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아무 탈 없이 퇴원만 할 수 있으면 어떤 힘든 일이 와도 잘 감당하겠다고 부르짖었다. 다행히 아기의 컨디션은 돌아오고 나도 괜찮아졌다.
1,2,3호와 달리 4호는 작고 약했다. 환절기 때마다 콧물이 살짝 나고 기침 한 두 번 하면 바로 폐렴으로 직행했다. 폐렴까지 가지 전 기관지염에서 다 낫았던 위의 아이들과 달랐다. 우리 집은 입원이 불가능했다. 독박 육아라 넷째가 입원하고 내가 병원에 묶여 있으면, 나머지 아이들을 케어해 줄 사람이 없었다. 초기에 폐렴을 무조건 잡아야 했다.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간호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정성이 통했을까. 입원까지 갈 정도로 아프지 않았다. 가장 감사한 일이다. 건강하기만 한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었다. 오로지 그거 하나였다.
"엄마 어떻게 나까지 낳았어. 엄마 너무 대단해"
9살 넷째가 엄마에게 폭 안기면서 늘 하는 레퍼토리. 이제 넷째가 커서 나한테 아이넷 낳았다고 대단하고 말해준다. 이런 날이 오기는 오구나. 그저 건강하기만 바라고 바랬던 날들. 다른 욕심을 가졌다가 더 소중한 것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했던 날들. 아이의 말은 최고의 보상이자 보람이다. 여전히 또래에 비해 마르고 작은 아이. 짠하고 뭉클하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이런 말을 해주는 아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몸은 작아도 마음은 크고 따듯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