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열망과 열정과 꿈과 현실이 숨 쉬는 곳
나의 책장을 들여다본다. 그동안 책장은 그저 책을 꽂아두는 곳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책장을 달리 보고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아무튼, 서재>의 저자는 서재 가구를 만드는 목수로서 책장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책장은 나의 손을 떠난 책들이 가장 오랜동안 머무는 장소이며 책상 못지않게 좋은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사유의 세계로 빠져드는 장소인 책상만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책의 입장에서 볼 때는 책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한 번도 책 입장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서 나는 책이 좋다. 책상에 책 한 권을 읽고 책장을 자세히 살펴본다. 수많은 책 제목들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책상 바로 앞에 작은 책장에는 독서법과 관련한 책들을 가득 메웠다. 아이들과 책 수업을 위해 필요한 책들인데 다시 수업을 시작할 날짜가 남아서 선택받지 못한 채 머물러 있다. 책상에 앉으면 이 책들을 보면서 빨리 해야 할 텐데 이런 생각만 하고 책 제목만 노려보고 있다. 그 옆에는 바로 글쓰기 책들이다. 고르고 고른 책들 <퇴근길 글쓰기 수업> <힘 있는 글쓰기> <논리적 글쓰기> 빨리 이 책을 독파하고 연습을 해야 한다고 늘 다짐만 한다. 그러다 서평 첨삭을 받은 글을 고치기 위해 <서평 글쓰기 특강> <서평 쓰는 법>을 먼저 읽고 있다. 당장 급하고 필요한 책부터 읽기 마련이다.
그 옆에는 '평화적 여성주의자' 정희진 책들이 있다. 이 책 저 책 바꿔가며 읽고, 읽은 책 또 읽으며 밑줄 그은 부분을 한번 더 읽고 읽는다. 그녀의 글은 사유가 깊고 논리적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사고의 전복’을 일으킬 만큼 근거와 주장이 명확하다. 동시에 공감과 감동도 주기도 한다. 현장감도 있고 실천적인 부분도 있다. 배우고 싶다.
책장 옆에는 책 바구니가 있다. 단편소설 필사 수업을 위한 소설책들이 있다. 필사하고 난 뒤 단상을 적을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는다. 작품을 읽는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 모호한 상태에서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저 책 바구니를 볼 때마다 '왜 나는 통찰력이 없을까' 늘 고민한다. 해결책은 어쩌면 간단하다. 여러 번 읽고 여러 번 사유하는 것이다. 여러 번의 퇴고를 할 만큼 소설에 대한 열정은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으려는 이유는 나의 단단한 편견과 좁은 시각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책상 바로 옆 큰 책장에는 내가 극복하고 싶은 한나 아렌트 전집, 중고서점에서 득템 한 폴 오스터 여러 소설들, 원서 해리포터 시리즈 등 핫한 책들이 이중으로 꽂혀있다. 성경책과 성경 배경 주석(최강 벽돌 책)과 최근에 나온 신앙서적들도 있다. 도저히 근접하기 어려운 시도 만끽하고 싶어 시집이나 시 에세이 책도 있지만 나에게 멀고 먼 당신들이다.
열정의 총집합. 꼭 내 마음 같다. 한 때 육아서적이 책장을 메운 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 시간의 내 마음이었다. 지금은 온종일 육아를 끝내고 10년 동안 묵혀두었던 나의 열정과 열망을 책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간혹 열망을 넘어서 욕망이 읽히는 책 제목도 있다. 읽을 시간도 읽을 열심도 없는 사놓은 원서들, 특히 원서 신앙서적들. 언젠가는 번역해서 책으로 내고 싶다는 현실 제로 욕망들이다.
막연한 열정이 정갈한 꿈과 현실 가능한 목표로 바꿀 수 있는 책들이 점점 쌓여가고 있다. 독서운동가로서 한 걸음 걷기 위해, 경험과 능력이 부족한 나에게 이미 그 길을 걸었던 선배들의 노하우가 담긴 책들은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 아마 다른 책들도 어떤 구체적인 필요와 쓰임이 생길 때 나의 손으로 올 날이 있을 것이다. 막연한 욕망과 열정부터 구체적인 목표와 실천까지 이어주는 책들. 이 책들을 소중하게 안아주고 있는 책장이 새삼 고맙다. 내 마음을 돌보는 것처럼 내 책장도 쓰담쓰담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