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인 <일렁이는 음의 밤>
"예술은 실패를 향해 있다. 어떠한 것도 완전히 재현할 수 없다. 진실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 게다가 하나가 아니다. 예술적인 게 있다면 일상의 아주 작은 면일 것이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결국 태도다. 일상을 세심히 살피고 낯설게 응시하는 게 예술의 태도가 아닐까. 이제 실패를 살아내고 싶다."p.32
"그럴듯한 것을 쫓아 삶을 완성하고 싶었다. 주어진 관문들을 넘고 넘어 근사한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이름을 얻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되는 것임을 뒤늦게 알았다. 이제 다른 누구도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단 한 명을 위해 노래하고 싶다. (...) 나를 살게 하는 것은 결코 '박제된 정답'이 아니다. 길을 헤매다 지쳐 쓰러졌을 때 홀연히 나타는 길이 있다. 그 길의 끝에는 네가 있을 것이다." p.79-80
그럴듯한 것을 쫓는 삶, 주어진 관문을 통과하는 일에 나는 철저히 실패했다. 수능시험을 잘 치지 못했고, 가고 싶은 대학을 가지 못했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지 않은 채 20대를 방황하며 보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나는 패배자라는 낙인을 세상으로부터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그것을 쥐고 있었다.
아닌 척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며 실패가 확인되는 곳은 피하면서 살았다. 혹시 이것이 내가 독서모임을 갔던 이유였을까? 그곳에서는 책만 이야기도 해도 되니깐. 또 책 토론이 그럴듯해 보이고 내 실패를 가려줄 수도 있으니깐. 혹은 그건 실패가 아니야 라는 위로를 듣고 싶었던 같다.
하지만 낙인과 실패감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 안에서 또 다른 기준에서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을 쫓고 주어진 관문을 넘어 근사한 누군가처럼 되고 싶었다. 그 지점애서도 처절하게 실패했고 도망갔다. 이때도 부끄럽고 수치스렀지만 다른 게 하나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되는 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
한 작가는 시인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실패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네 인생 자체가 실패를 품고 있다. 실패는 디폴트다. 그렇다면 이왕 실패할 것이라면 내가 되기 위해 애쓰다가 실패하는 게 더 낫겠다. 좀 더 우아하게, 예술적 태도를 가지고 실패를 살아내련다. 위 문장처럼. 제대로 세수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