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버멘쉬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002

by 책선비
니체는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현실인 이 땅 위에서의 삶에 등을 돌리도록 부추기는가 하면 한낱 가정에 불과한 저편의 초월적 세계에 삶의 의미를 두도록 사주해온 플라톤적이며 그리스도교적인 이원론을 생에 적대적인 세력으로 규정, 뿌리쳤다.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 땅위에서의 삶을 하찮은 것으로,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폄훼하도록 만들어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이같은 초월적 이상의 그늘 속에서 인간은 자기 부인과 비하를 몸에 익혀왔으며, 그 결과 왜소하고 구차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보아다. 그리고 그냥 둘 경우 인간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고 비관했다. p.16


나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사람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p.17


위버멘쉬가 대지의 뜻이다. 너희 의지로 하여금 말하도록 하라. 위버멘쉬가 대지의 뜻이 되어야 한다고! p.18




나는 모든 것이 갖춰진 울창한 숲을 원했다. 다채롭게 볼 것도 많고 숨을 곳도 많은 곳. 언제 어디서든 그것들에 의지하며 내 것처럼 뽐내도 된다.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는 사라질도 있다. 숲은 안전하고 부족한 것 하나 없고 완벽해 보인다.


반면에 대지는 아무 것도 없다. 허허벌판이다. 거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주어진 것도 없는데 대지에 가면 오히려 벌거벗은 몸처럼 나의 없음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언제 어디서 위험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서 두렵다. 무엇을 해보려고 해도 불가능할 뿐더러 한다고 해도 그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하는 곳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대지보다 숲을 더 선호한다. 숲처럼 잘 갖추어진 곳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내가 자유롭게 새로운 일을 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이미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제거하기도 힘들고 나만의 것을 세우려니 장소도 없거니와 튄다고 다들 말린다. 하지만 대지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내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곳이다. 가만히 있어도 되고 마음껏 달려도 된다. 방해물이나 장애물도 없다.


나는 숲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대지 같아도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불평만 했다. 대지에서 아무 것도 일구지도 못했고, 숲을 향해 한 걸음도 나아가지도 못했다. 차라리 대지를 품고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봤다면 어땠을까. 우선 대지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철학책의 역할이 무척 크다. 현실을 다르게 볼 수 있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위버멘쉬'는 초인이 아니라 현실 안에서 자기 삶을 충분히 살아내는 사람을 말한다. 대지와 같은 사람. 초라하고 막막한 현실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위버멘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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