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공동체일까
나는 공동체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생각에 애를 썼으나 반응이 고맙다기 보다 왜 굳이 이런 걸 이라는 반응을 겪은 적이 있다.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에 과일을 보냈다. 아이 돌이라고 해서 옷을 사주었다. 어머님 장례식에 왔을 때 일부러 옆에 같이 있어 주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혼잣말 같은 고맙다는 말이었다.
오래 전 일인데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들의 떨떠름한 반응들. 이불킥을 하기도 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챙겨줄 필요가 없는데 내가 오버했구나. 한편으로는 마음을 써준 건데 왜 그들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었나 싶어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도 챙겨주지 않은 것보다 낫잖아. 잘 한 거야 라고 넘어가기에는 뭔가 찝찝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을 겪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깐. 이 또한 나의 짝사랑에 기인한 걸까.
어쩌면 평소에 교감이나 상호성이 없이 불쑥 챙겨준 것이 부담스럽거나 뜬금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나는 어떠한 관계성이 없는 혹은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한 공동체니깐 고맙게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있지 않나? 나는 그럴 수 있는데 그들은 아니었나보다.
나는 격주 마다 모이는 주일 예배 때, 인사 한 마디로 못 나누고 온 사람들을 떠올리면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다시 만남 때 적극적으로 반갑게 인사하지 않았다. 이 모순적인 태도가 한동안 고민이었다. 이럴 바에는 근처에 내가 마음을 쏟을 만한 공동체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지내는 건 공동체 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요즘에는 그저 하나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로 반갑게 인사할 마음이 별로 없는 사람들. 각자 살기 바쁘고 주일에 와서도 편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다가 가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 이라고 받아들였다. 나도 마찬가지다. 굳이 애쓰고 찾아가서 인사하지 않아도 느슨하게 한 공동체로 연결되어 있고 잘 지내고 있겠지. 눈을 마주치고 안부를 묻지 못했다고 해서 외면하는 것도 아니니 죄책감이 들 이유도 없다. 좋은 일, 슬픈 일이 생기면 또 그때 적절하게 챙겨주고 할 테니.
공동체라고 하면 엄청 끈끈해야할까. 그런 관계도 있고 아닌 사람들도 있다. 모두 다 깊게 사귈 수 없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모든 관계에서 깊어지도록 노력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이 강박을 버린다. 애정도 같이 식어갈지도 모르겠다. 강박을 버리고 안부가 궁금하지 않은 사람에게 굳이 다가가지 않기로 선택한 것에 대해 어떤 결과가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