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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Sep 06. 2022

행복은 짐바란 해산물 식당에도 있어

Jimbaran Warung Happy Gen


 짐바란은 노을 보며 낭만적인 저녁식사를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처음 발리 여행을 왔을 때 노을이 다 진 캄캄한 바닷가에서 여자 둘이 무려 15만 원짜리 저녁 식사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그때는 당연히 신혼부부들이 많이 오는 비싼 식당이라서 그런 줄 알았다. 요즘 세상엔 여행지를 정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면 각종 정보가 쏟아진다지만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여자 둘이 떠난 여행에서 우리는 다치지 않고 무사히 집에 가게 해주세요를 빌고 빌었다.


언젠가 해가 질 무렵 짐바란 해변의 시작점부터 끝까지 걸어보았다. 그날 저녁 노을은 붉게 물들었다가 푸르스름한 보랏빛이다가 연한 분홍색으로 변하고 진한 오렌지색이었다가 다시 분홍색과 보라색이 함께 하늘에 선을 그리며 마무리했다. 이런 날은 마치 하늘에서 긴 영화 한 편을 본 것처럼 여운이 길다. 하늘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해가 다 질 때까지 천천히 걸었다. 노을이 지는 시간 해변을 느릿느릿 걷는 일이 얼마나 멋진지 처음 알았다. 해변 끝에는 warung happy gen 이 있다.  인도네시아 친구가 짐바란 해변 중에 가장 비밀스럽고 예쁜 곳이 있다며 추천해준 바닷가도 바로 이 식당 앞이다 (너무 눈을 반짝거리며 추천해줘서 차마 그 장소를 알고 있다고 말하기 미안했다.)  


 친구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happy gen에 왔다 우리가 주로 해산물을 먹으러 가는 곳은 꾸따에 있는 Warung arim, 스미냑 근처 warung lincak, 짐바란 warung happy gen이다. 와룽 아림은 숯불로 싱싱한 해산물을 구워주는 현지 시장 안 작은 식당이고 와룽린짝은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 매콤 달콤한 양념이 매력적인 곳이다.  해피겐은 양념 구이 해산물도 맛있는데다 노을 지는 풍경을 눈앞에 두고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어서 세 개 식당 중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저녁 시간 바닷가 앞 테이블을 선점하려면 예약이 필수다. 식당에 들어서면 가방을 내던지고 일단 수조로 달려간다. 메뉴를 따로 주지 않으니 수조 옆 해산물을 고르고 요리 방식을 전달하면 주문이 끝난다. 한국의 수산시장처럼 그날의 시가로 계산한다. 시가로 계산한다고 하면 바가지라도 쓰지 않을까 덜컥 걱정이 될 테지만 여기선 그럴 일이 없다. 짐바란 여느 식당과 다르게 현지 분위기 물씬 나면서도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는 관광객 눈에도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가격도 현지 식당 가격과 비슷해 여러 명이 실컷 먹고 마셔도 한화 십만 원을 넘기기 어렵다. 기왕 현지 분위기 나는 식당에 왔으니 주문을 인도네시아어로 하면 더 재밌다. 새우는 udang (우당), 조개는 kerang (끄랑), 오징어는 cumi (쭈미), 게는 kepiting (끄삐띵) 조리방식을 말할 땐 bakar (바카르,구이), goreng (고렝,튀김 혹은 볶음) 해산물 이름과 조리방식을 합쳐 말하면 음식 이름이 된다. 오징어 튀김 하나를 주문하고 싶다면 satu cumi goreng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satu (1) dua (2) tiga (3)까지 외우면 해산물 식당 주문 정도는 더듬더듬할 수 있다. 주문을 마치면 바다가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하고 싶은 것들을 한다. 공항 바로 옆에 있어 떠나는 비행기, 들어오는 비행기들을 보며 안녕 손을 흔들거나 노을이 지는 바닷가를 짧게 산책하거나 어린이와 모래놀이를 한다. 짐바란은 갈 때마다 바다색과 하늘빛이 달라 언제나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드는 멋진 해변이다. 먼저 나온 빈땅으로 목을 축이며 가만히 바다를 보고 있으면 행복이 별건가 싶다. 발리 하면 bintang, 빈땅은 별이라는 뜻이다.


 한참 시간을 보내면 그제야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삼십 분에서 늦으면 한 시간까지 소요되기 때문에 마음을 넉넉하게 가져야 한다. 매콤 달콤한 양념을 바른 조개와 새우구이, 적당히 짭짤한 오징어 튀김에 블랙페퍼 소스를 뿌린 먹음직스러운 게요리로 오늘도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한다. 일찌감치 식사를 마친 어린이는 좀이 쑤신다.

“하나 이모, 온 세상에 x표시를 그리자!”

“그래! 좋아. 그걸 하자.”

 주워온 나뭇가지로 모래사장에 한참동안 엑스자를 그리다 나란히 앉아 하늘을 본다.

“이모, 오늘 노을이 예쁘니까 하늘 봐. 이모가 좋아하는 거잖아.”

어린이는 가끔 깜짝 놀랄 만큼 낭만적인 말을 한다. 함께 올려다보는 하늘엔 어느새 노을이 막바지다. 마침 해변을 지나는 옥수수 수레로 달려가 옥수수 두 개를 주문한다. 꼬치에 끼운 옥수수에 마가린 소스를 발라 바로 구워주는 옥수수는 아무리 배가 불러도 포기할 수 없는 간식이다. 붐비는 시간 바쁘게 옥수수 굽던 아저씨도 어느새 손님이 뜸해진 틈을 타 밤바다에 앉아 한숨 돌린다. 예닐곱 살쯤 된듯한 아들과 나란히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 따뜻해 한참 바라보다 우리도 집에 가자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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