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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Sep 08. 2022

낀따마니와 바뚜르 호수

 종종 바람 쐬러 낀따마니에 간다. 낀따마니는 발리 북동쪽에 위치한 화산지대로 분화구에 물이 고여 생긴 바뚜르 호수와 바뚜르 산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우붓에서 40여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낀따마니에 갈 수 있다. 차를 타고 가는 것과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것은 사뭇 느낌이 다르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손을 뻗으면 손가락 사이로 바람이 살랑 스친다. 손가락 사이로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느낌을 좋아한다. 낀따마니 가는 길목엔 발리의 또 다른 관광지 뜨갈랄랑이 있다. 뜨갈랄랑에서는 깔끔하게 정돈된 계단식 논두렁을 볼 수 있다. 간혹 한국 시골엔 논이 많으니 계단식 논은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내 눈엔 반듯한 계단 같은 논이 세련돼 보인다. 울퉁불퉁 모난 곳 없이 단정한 논두렁 모양이 신기하다. 샘물에 수로를 연결해 각 논 중심에 있는 사원으로 물을 흐르게 만든 Subak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다. 별도의 기계 없이도 논 전체에 골고루 물을 댈 수 있다니. 한국이나 발리나 조상님들 지혜는 따라갈 수 없다. 뜨갈랄랑보다 규모가 큰 자띨루위에 가면 좀 더 너른 논 뷰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목이 아프도록 하늘 올려다보고 뜨갈랄랑 길목의 공예품 거리를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낀따마니 언덕에 다다랐다. 이제는 눈에 익숙한 작은 과일 가게와 꽃가게를 지나면 낀따마니에서 제일 좋아하는 카페가 나온다. (Montana del cafe) 언덕에 있다 보니 구조가 독특하다. 1층 입구에 들어서 오른쪽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 1층에 하늘이 있다. 화산, 구름 오른편에 위치한 바뚜르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져있고 새하얀 구름이 산 중턱에 걸려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산아래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검은흙마저 선명해 화산이 더욱 생생하다. 바뚜르산을 뒷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손길이 바쁘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사진 찍기 위해 줄을 한바탕 설 테지.


 오늘은 시간이 여유로워서 바뚜르 호수에 내려가 보기로 했다. 끊임없이 S자를 돌아 호수로 향하는 길엔 마치 영화 장면이 바뀌듯 색다른 길들이 가득하다. 검은색 작은 바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바위틈새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데 꼭 미국 대자연 속 사람 하나 없는 바위산 풍경 미니어처 같다. 바위가 잔뜩 깔린 동네를 지나면 또 초록색 논이 나오고, 논두렁을 지나면 어촌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작은 집들이 모여있다. 5분마다 바뀌는 풍경이 재밌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커다란 S자를 몇 번이나 돌았을까. 나무숲 사이 바뚜르 호수가 반짝인다. 호숫가 한편엔 발리 특유의 진한 다홍빛 지붕들이 나란히 서있다. "동화 속 마을 같지?"라고 말하는 운전자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고개를 끄덕인대도 보일 리가 없지만.


유난히 도로가 잘 닦인 동네가 신기하다. 제아무리 유명한 관광지여도 이렇게 포장도로가 깔끔하지 않은데 바뚜르 호수 가는 길은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길이 크고 깨끗하다. 발리는 지역 사회 문화가 강해서 각 동네마다 주민들끼리의 단합이나 지역 사랑이 특별하다. 이 동네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몇 해 전 대대적인 도로 공사를 했다고 한다. 바뚜르 지역에 유명한 온천이 있는데 그 리조트 소유자가 어마어마한 금액을 냈다고 한다. 당연히 개인의 이익을 위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이 멋지다. (이 내용은 인도네시아 해당 지역 주민에게 물어본 거라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어촌 마을 허름한  앞에서 한숨 돌리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아기 고양이  마리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호수는 고요하다. 화산을 품은 호수가 이렇게 고요하다니. 호수에  흔한 낚싯배 하나 없다. 우리를 제외하면 오늘  마을 유일한 관광객일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킥보드를 타고 까르르 웃는다.  모습이 재밌어 보여 킥보드를 어디서 빌렸는지 물으며 괜히 말을 걸었다. 내려오는 길에 지붕이 많이 보였는데 어쩐 일인지 동네에 지나가는 사람 하나 보이질 않는다. 호수 앞을 지키는 나무에 빨간  무더기만 바람에 흔들릴 뿐이다. 호숫가 산책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낀따마니 카페 높은 곳에서 보던 호수와는  다른 느낌이다. 저기 멀리 하늘에 먹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가 오려나 싶어 걸음을 재촉하기로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왔으니 소나기라도 만나면 낭패다. 왔던 길을 돌아 서둘러 집에 가기로 했다. 뜨갈랄랑쯤 도착했을 때였나 부슬부슬 내리던 빗줄기가 갑자기 거세졌다. 놀랄 틈도 없다. 마치 하늘에서 거대한 양동이를 머리 위에 쏟아붓는 것처럼 비가 와장창 내리고 있다. 인적조차 드문 길목에 카페가 있을  만무하다. 한참 비를 맞고 달린 후에야 작은 구멍가게를 발견해 간신히 비를 피했다. 우비를 챙겨 입고 비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릴까 비를 뚫고 갈까 고민하는데 다행히 빗줄기가 조금씩 약해진다. 지금 빨리 출발해야 한다. 부랴부랴 떠나는데 10분쯤 달리니 앞이  보일 정도로 비가 많이 온다. 빗물에 눈을 비벼가며 간신히  작은 토코를 찾아 처마에서 비를 피한다.  시간 전만 해도 맑은 하늘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는데 180 돌변한 날씨가 신기하기만 하다. 우비를 입었는데도 물에 빠진 생쥐꼴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진다. 우리가 먹구름을 피할  없다면 이걸 이겨버리자. 비구름보다 빨리 가겠다며 다시 출발했다.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20분쯤 달리니 드디어 하얀 구름 사이 붉게 물들고 있는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먹구름을 이기긴 이겼는데 상처뿐인 영광이다. 4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시간이나 걸려서 간신히 왔다.  당황스러운  우붓엔   방울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비를 입고 홀딱 젖은  우리 둘뿐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을 하고  사람들처럼 우리만 다른 세상에서   같다.



낀따마니 카페에서 볼 수 있는 풍경
바뚜르 호수 시골길 산책
뜻밖의 소나기






낀따마니 전망 좋은 카페 추천, 지대가 높은 순으로 나열했습니다.  군데 모두 바뚜르산과 호수를 배경 삼아 멋진 사진을 찍을  있는 포토존이 있으며 몬타나  카페 해먹은 줄을 서서 사진을 찍을 정도로 인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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