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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Sep 13. 2022

라구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노래

(Lagu: 노래)

 발리에 가기 전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겠다며 일주일에 한곡씩 노래를 외웠다. 인도네시아 노래를 귀 기울여 들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귀에 걸리는 노래들이 많아 한동안 플레이리스트를 쭉 채워 산책할 때마다 흥얼거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Andmesh라는 가수의 Hanya Rindu (Hanya=Just, Rindu=miss, 그저 그리울 뿐)라는 곡이다. 멜로디가 좋아 뜻도 모르는 가사를 달달 외우던 어느 날 저녁 무심코 뮤직비디오를 틀어봤다. 대충 단어를 끼워 맞춰 해석한 가사로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 절절하게 그린 사랑 노래쯤이라고 생각했다.


난 혼자 있을 때 당신과 함께 했던 오래된 사진과 비디오를 봐요. 당신이 지금 여기 있으면 좋겠어요. 다시 예전처럼 웃어주세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그리울 뿐이에요. 당신 없이도 살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 모든 걸 다 해봤어요. 하지만 우리의 모든 추억을 지우는 게 힘들어요. 신이시여. 제발 잠시라도 허락해주세요. 예전처럼 당신과 함께 웃고 싶어요. 내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그리울 뿐이에요.


 아는 단어만 대략 해석한 내용이다. 뮤직비디오에선  남자가 등장한다. 커다란 집에서 혼자 밥을 먹고, 사진을 보며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행복했던 시절의 웃는 모습과 혼자 남겨진 현재가 교차 화면으로 지나간다. 그리고 남자는  노래를 만든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종이에 노래 가사를 적고 있다. 애절하게 그리움을 호소하며 노래를 부르는 남자의 뮤직 비디오 중반부쯤 벽에 걸린 액자를 멀리에서부터 잡아 클로즈업한다. 카메라가 가까이 갈수록 또렷해지는  액자 속엔 내가 상상했던 남자 또래의 젊은 여인이 아닌 주름진 여인의 얼굴이 있다.  액자  주인공은 남자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당연히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진  그녀를 그리워하는 노래인  알고 방심했다가 한대 얻어맞았다. 뜬금없이 인도네시아 노래 공부하다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후에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어떤 인도네시아 노래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뮤직비디오 이야기가 나왔는데 정작 상대방은  반전을 몰라서 "이런 감동적인 장면을 놓쳤다니요!"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가수는 인도네시아에서 정말 유명하고 인기가 많아서 다들  노래를 알고 다 들었는데도 말이다.


https://youtu.be/CJC5PY5erzI

 발리 사람들은 노래를 참 좋아한다.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고 듣는 것도 좋아한다. 길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하고 주말이면 어떤 가게든 라이브 공연이 열린다. 규모가 작거나 크거나 상관없이 대부분의 술집과 식당, 카페에서 마이크 볼륨을 높여 노래를 한다. 발리 사람 열명이 모여있으면 아마 그중 한 명은 분명 기타를 칠 수 있을 것이다. (과장이 좀 섞였어요.) 르기안에는 커다란 도로 양옆으로 라이브 공연을 하는 카페가 즐비해있는데 주말 저녁 이곳을 지나면 여러 가지 노래가 섞여 어떤 노래가 어느 가게에서 나오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다. 가끔 듣기 괴로울 정도로 노래를 못하는 가수도 있는데 나같이 못된 사람은 인상을 찡그리며 몰래 귀를 막지만 발리 사람들은 웃으며 박수를 치고 다시 노래하기를 청한다.


 주말 저녁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르기안에 있는 작은 술집을 갔다. 온통 인도네시아 사람들만 가득한 이 가게에서 발리 거주 10년 차 료짱은 모두와 친구였다. 내향성 93% 인간임에도 료짱과 함께 앉아 있으면 모두가 말을 걸어오니 낯가릴 틈이 없다. 한국사람 2, 일본 사람 1로 구성된 무리는 언제나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때나 이 술집에 가도 이름을 부르며 반기는 친구가 한 명쯤은 있게 되었다. 금요일 저녁 이 가게에 “가라오케 사람” 케빈이 오면 그날은 펍이 아니라 노래방이 된다. 휴대폰을 스피커에 연결해 모니터에 유튜브 노래방 화면을 띄우고 블루투스 마이크로 밤새 노래를 부른다. 케빈은 성량이 풍부하고 목소리가 좋은 편인데 특히 한국 드라마 ost를 잘 부른다. 한국인 친구들을 위해 가끔 한국 노래를 불러주는데 어찌나 음색이 애절하고 발음이 정확한지 혹시 한국어 가사를 다 이해하고 부르는 것인지 물어본 적도 있다. 전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데도 마치 어제 실연당한 한국사람처럼 슬픈 발라드를 잘 불러서 케빈이 마이크를 잡으면 귀를 기울여 노래를 들었다. 한국 노래를 불러보라고 해서 무슨 노래 부를까 물으면 에이핑크의 ‘미스터츄’를 누르고 간주가 시작할 때부터 걸그룹 댄스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유쾌한 ‘가라오케 사람’이다. ‘혼코노’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전부터 혼자 노래방 가는 게 취미였는데 코로나가 터진 후 한 번도 노래방에 가본 적이 없었다. 2년 만에 마이크를 붙잡고 발리에서 인도네시아 사람이 신청하는 백지영 노래를 부른다는 건 굉장히 기묘하고 재밌는 일이다.


 발리에도 노래방이 있다. 주말 저녁 노래방은 자리가 없을 지경이다. 주로 가던 노래방은 4층짜리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용하는데 안에는 수영장이 있고,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도 있어 가족 단위 손님도 많다. 술과 식사를 주문할 수도 있다. 세 시간에 100k (9,000원 정도, 1인 요금)를 후불로 내고 원 없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 한국 노래방에서는 리모컨으로 노래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여기선 사정이 다르다. 터치 스크린 모니터에서 수많은 페이지를 뒤져 가수 이름이나 제목으로 노래를 찾아야 한다. 한국 노래를 찾고 싶어도 최신 가요는 찾아보기 힘들고 아이돌 노래나 동남아시아에서 인기 많은 유명한 가수 노래는 찾을 수 있다. 동남아권에서 인기 많은 한국 가수들 노래를 간신히 찾아 예약을 하면 다음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가사가 한글로 표기된 경우가 드물다. 한글 가사가 알파벳으로 표기되기 때문에 영어로 써진 한글을 읽거나 따로 검색해서 가사를 읽어야 한다. 영어로 표기된 한글 가사를 읽자니 가사를 외우고 있는 노래마저 틀리기 일쑤다. 어찌나 읽기 힘든지 게임 아저씨 (나영석 PD)가 이걸 게임으로 만들면 대박이 날 텐데 전할 길이 없어 답답할 따름이다.  


에이핑크의 Mr.Chu / 정답: 난 더 좋아져 두 번 세 번 나의

 인도네시아에서 인기 많은 노래들이 어딘가 한국 노래들과 비슷하게 들려올 때 혹은 어디서나 음악을 즐기고 있는 발리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흥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가슴 끓는 사랑 노래가 유난히 많은 것도 그렇다. 특히 당둣 (dangdut)은 한국의 소위 '뽕짝'과 비슷하다. 당둣이 흘러나오면 어깨를 들썩이는 발리 사람들과 트로트를 사랑하는 한국 사람들은 어딘가 묘하게 닮아있어서 우리가 꽤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는 걸까 한참 생각해봤다.







르기안 근처 한국 노래가 많은 노래방

https://g.page/zero4karaoke?share




2000년대 k-pop 감성과 닮은 인도네시아 노래

https://youtu.be/zPWA5w0Yxco

https://youtu.be/SKV13bVJKJ4


발리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이 노래 앞소절을 부르면 뒷소절이 자동으로 따라나옵니다. (유명한 당둣, 아직까진 한번도 실패한적이 없어요.)   

https://youtu.be/dMypjX2kz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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