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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Sep 15. 2022

다정한 나시 붕쿠스

nasi bunkus: 포장밥

 인도네시아의 수많은 섬사람들 대부분은 무슬림이다. 그중 유일하게 힌두교인이 많은 발리는 소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냥 비싸서 못 먹는다는 사람도 봤다.)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모두의 수요를 맞추기 가장 편한 고기는 닭고기다. 닭으로 만든 요리가 많고 보편화되어있다. 한식당에 가서 탕수육을 시켜도 치킨 탕수육이고, 짜장면을 배달시켜도 닭고기가 들어있던 적이 많다. Pasar (파사르:재래시장)에 가면 말끔하게 털을 뽑아낸 생닭이 커다란 사각 얼음 위에 통째로 올려져 있다. 발톱을 하늘 높이 쳐들고 얼음에 누워있는 생닭을 보면 그날은 닭요리를 먹을 수 없다. 바비 굴링 가게에 가면 삼단 유리 진열장 어느 칸에는 아기돼지 머리가 접시 위에 올라가 있다. 아기돼지랑 눈이 마주치면 바비 굴링 먹는 게 힘들다. 원래도 유명했지만 언젠가 TV 예능에 나온 아이돌 가수가 바비 굴링 파티를 한 후로 한국인 관광객에게 더 유명해진 음식이다. 바비굴링은 아기돼지 한 마리를 통으로 오랜 시간 동안 구워 부위별로 잘라먹는 음식이다. TV 프로그램에서 나온 대로 한 마리를 통째로 먹으려면 대략 15만 원에서 20만 원 사이의 비용이 든다. 사실 저 "아기돼지 통구이"를 마주치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제목부터 아기돼지 통구이라니 좀 짠하다. 어쨌든 이 바비굴링은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음식이다. 우리 집 앞에는 포르게타 (통돼지의 속을 마늘과 허브, 향신료로 채워서 구운 이탈리아의 전통 요리)를 발리식으로 만드는 식당이 새로 생겼는데 문을 열고 일주일간은 숙소 직원들에게도 꽤 화제가 됐다. 그 가게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입맛을 다셨다. 돼지를 통으로 바삭하게 굽는 것이 바비굴링과 퍽 닮은 요리다. 이런 돼지고기 메뉴는 현지인들에게 꽤 고가의 메뉴다. 10K (900원 정도) 정도면 포장밥이나 짬뿌르를 먹을 수 있는데 아무리 허름한 와룽에 간대도 한 끼에 50K (4,500원)가 넘는 밥을 먹기엔 주머니 사정들이 좋지 않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가 유명하다는 바비굴링 가게에 가보기로 했다. 인기가 많아 이른 오후에도 재고 소진을 붙이고 문을 닫으니 아주 운이 좋은 날에만 먹을  있는 인기있는 식당이라고 했다.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갔는데 외관만 봐도 입이  벌어질만큼  식당이다. 현지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고 하니 가게가 예쁠 거라는 예상은 못했는데 규모가 크고 인테리어가 시내 카페 못지않게 멋지다. 한차례 점심 식사가 끝났을 오후 1시에 도착했는데도 주차장이 만차다. 벌써 재고가  떨어졌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주문이 가능하다. 초록빛 잔디가 깔린 넓은 정원에 보기 좋게 심어진 나무들이 작은 그늘을 만들고 있다.  아래 지푸라기가 멋지게 늘어진 파라솔과 라탄으로 만든 동그란 러그  나무 테이블은 마치 소풍 나온 것처럼 설레게 하는 야외 좌석들이다. 이렇게 예쁜 식당에서 현지식을 먹는데 맛있기까지 하다니. (예쁘게 꾸민 식당에서 현지식을 팔면 관광객 입맛에 맞춰 이도 저도 아닌 맛을 많이 봐서 편견이 있다.)  주문을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하늘에서 뭔가  떨어져 뺨을 때렸다. 작은 검정 새였다.  정도면  같이 놀랄 법도 한데 여유 많은 외국인들은 놀라지도 않는다. 나만 혼비백산해서 짧은 비명을 질렀다가 다들 웃어서 머쓱해졌다. 잠깐의 소란이 지나갈 때쯤 바비굴링이 나왔다. 여느 가게와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하얀 밥에 돼지고기 튀김, 기름이  빠져 바삭바삭한 돼지 껍데기와 발리식 순대, 살코기 조금, 채소와 코코넛 가루, 돼지 갈비탕 맛이 나는 국과 양념을 발라 구운 사테가 앞에 놓였다. 바비굴링을 좋아하진 않지만 주변에 워낙  메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끔 먹는데 다른 가게보다 껍데기가 촉촉하고 바삭해서  사람들이 여기로 몰리는지   있었다. 게다가 양념돼지 갈비맛이 나는 사테가 너무 맛있어서 다음에  오면  사테만 실컷 시켜먹고 싶을 지경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기다리는데 작은 프렌치 불도그  마리가 신이 나서 마당을 뛰어다닌다.  모습이 귀여워서 손을 저절로 뻗는데 커다란 머리통을 손바닥 위에  얹고 움직이질 않는다. 강아지 감옥에 갇혀서 어쩔 줄을 모르고 웃고 있는데 사장님이 다가왔다. "강아지는 이제  6개월이 됐고 이름은 소바예요." 알려주며  여자가 좋아? 좋아? 강아지에게 상냥하게 말을 건다. 손님이 가득한 식당에서 바쁠 텐데도 우아한 말투로 음식이 어땠는지 어디서 왔는지 사소한 대화를 나누곤 배웅해줬다. 나가는  주차장 입구엔 작은 테이블과 파라솔이 있다.  위엔 누런 종이로  삼각 포장밥이 진열돼있고 입간판에 ‘나시붕쿠스 10 ribu’  글씨로 쓰여있다. 고기와 채소, 밥을 포장해서 10k 파는 것이다. 바비 굴링 가게에 이런  있는  처음 봤다.  정도 가격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현지인들도 부담 없이   식사로 지불할  있는 금액이다. 아까 우아한 말투를 사용하던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해냈겠지? 외국인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하면서도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멋지고 세심한 아이디어가 감동적이다. 돌아오는  내내 "사장님이 정말 다정하다. 강아지도 다정하다. 나시 붕쿠스 10k  너무 다정하다 그치?"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다정한 삼각 포장밥이 너무 좋아서 새가 뺨을 때렸던 것도  까먹었다. 이러면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동네 사람들도 부담없이 사먹을  있을테니 얼굴도 모르는 발리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다가 포장밥 하나를 사들고 신나게 가는 모습이 자꾸 상상돼 나까지 행복해졌다. 다정한 나시 붕쿠스 덕분에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양념돼지갈비맛이 나는 사테와 바비굴링
머리를 척 얹고선 도통 움직이질 않는 강아지
다정한 나시붕쿠스




고젝 배달도 안하는데 장사가 잘되는 신기한 바비굴링 가게


Warung babi guling sarinadi

0812-3765-4300

https://maps.app.goo.gl/aWMY5dwMms2mGBkM8?g_st=ic



바비고렝나시와 삼발마타가 유명한 와룽 차하야

(매운 맛에 자신있다면 짜베를)


Warung Cahaya

0852-0583-0136

https://maps.app.goo.gl/Fbz9AeVeVLMaypyn6?g_st=ic



돼지 요리 전문점


Kedai Binggo Kerobokan

0811-392-388

https://maps.app.goo.gl/WNHrxTRmxhXcQkez7?g_st=ic



발리식 포르케타 식당


0821-2411-8383

https://maps.app.goo.gl/KSJrkjpCbbLbYFoKA?g_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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