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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Sep 10. 2022

쯔닝안, 걸어서 섬 반 바퀴 돌기

 쯔닝안 섬을 걸어서 돌아보기로 했다. 걷는 거 안 좋아하는 친구는 집에 두고 아빠와 어린이, 이모 셋이서 섬 한 바퀴를 다 돌아보자고 호기롭게 나선다. 절벽에 있는 카페에 들러 음료수를 마시기로 하고 동쪽 방향으로 걷는다. 커다란 나무 사이로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날 좁은 언덕길을 줄지어 걷는다. 나란히 걸을 수 없으니 어린이가 대장을 하겠다며 대장은 1번으로, 아빠는 2번으로, 이모는 3번으로 번호를 매겨 걷는 순서를 정해준다. 정해진 순서를 어기고 잰걸음으로 자꾸 앞장서는 이모에게 약이 잔뜩 오른 어린이가 뒤에서 소리를 지른다.

"하나 이모! 준이 준이 준이 우시로 (後ろ: 뒤로) 가면 어떡해. 준이 으아아아아  #%^*!>£¥¥!%#.”

준이가 뒤로 가면 안 된다는 말인데 소리 지르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더 빨리 도망쳤다.



불과 2년 전에 찍어둔 사진들을 보면 팔다리도 훌쩍 짧고 통통한 얼굴이 아기 같아서 그동안 많이 컸네 싶다가도 이런 모습을 보면 마냥 아기 같다. 우시로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동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뚝딱이 같은 뒷모습이 사랑스럽다.


언덕 위에 있는 절벽 카페에 도착했다. 100미터 밖에서 보는데 대문이 닫혀있길래

“문 닫았나 봐요. 우리 돌아갈까요?”

했다. 발리보다 더 코로나 영향이 심한 이 작은 섬에 열린 가게가 거의 없으니 여기도 당연히 닫혔을 거라 생각했다. 재영 오빠는  그래도 한번 문 앞까지 가보자고 했다. 가까이 가니 굳게 닫힌 문 옆이 훤히 뚫려 있었다. 가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백 걸음 더 걷기 귀찮아서 대충 보고 지레 포기하자고 한 게 조금 부끄러웠다. 한땐 사람들로 가득했을 유명한 식당은 지금 쓸쓸하기 그지없다.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봤던 아치형 포토존은 Ceningan의 C와 I가 간신히 매달려 있고 수영장엔 낙엽만 가득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건너편 누사 페니다 섬이 한눈에 보인다. 공사가 한창인 걸 보니 또 무언가 생길 모양이다. 삶은 계속되는 거니까 희망을 놓지 않고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이 잘 굴러가고 있나 보다. 폐허 같은 카페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산책을 시작한다. 산골 농가 돼지우리에 새까만 돼지가 코를 박고 밥을 먹다가 인기척에 놀라 눈이 마주친다. 코에 흙이 잔뜩 묻은 모양이 마치 까만 곰 같다. 평범한 가정집 앞 흐드러지게 핀 빨간 꽃나무와 떨어진 꽃잎이 예뻐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지금 이 섬엔 문 열린 카페가 열개도 안된다. 해변 근처에 있는 카페나 큰 리조트는 어떻게든 운영을 하고 있지만 섬 중간에 있는 카페들은 전멸이다. 내려가는 길, 문은 열렸지만 영업은 하지 않는 카페에 들러 가방에 챙겨 온 생수로 목을 축이며 우리가 얼마나 걸었는지 확인해봤다. 벌써 두 시간이나 걸었는데 한 바퀴는커녕 섬 1/3도 못 돌았다.


 아직 갈길이 먼데 어린이가 푹 퍼진다. 재미도 없고 다리도 아파서 에너지가 사라졌단다. 아빠의 특단 조치는 카메라 걸어주기! 난생처음 목에 건 DSLR이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무거운 카메라를 목에 걸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어린이가 귀엽기만 하다. 며칠 전 친구가 조카 사진을 보내면서 “어때?” 하고 물었다. “뭐가 어때?” 하니 자기는 이 사진을 보면 머리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다 사랑스러워 미칠 거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궁금하단다. 그 사진을 볼 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나도 그렇다. 저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어린이의 머리부터 발가락 끝 모양까지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누른다. 괜찮으려나 걱정됐지만 다행히 대부분 웃어주어서 감사한 마음이 되었다. 마주치는 사람 모두의 사진을 찍었다. 여기 반자르 (주민센터 같은 곳)에 연락해서 동네 사람들 사진을 보내줘야 하나 농담을 했다. 함께 걷던 우리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모두가 어린이를 환영해준다고 느껴지니 몸 둘 바를 모르게 고맙고 함께 웃게 된다. 놀고 있던 어린아이들도, 해초를 다듬던 동네 사람들도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어린이에게 미소를 보낸다. 어린이는 또 어린이대로 사람들이 웃어주고 멋진 포즈를 취해주니까 신바람이 난다. 작은 섬 주민들 중 그 누구도 찡그리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아서 나중엔 이 다정함에 감동받아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이제 집으로 가는 언덕 하나만 오르면 된다. 셔터를 백오십 방쯤 누르니 더 이상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어린이는 멋진 바다와  사원, 나무 그루터기 안 흙무더기에 얌전히 담긴 마른 꽃과 짜낭사리들, 쓰레기마저 카메라에 담는다. 이모와 아빠는 어린이가 산책길에 주운 싱콩 나무 막대기 5개를 를 나눠 들고 걷느라 손이 없다. 점심을 포장하러 들른 작은 와룽 사장님이 싱콩 나무 막대기를 집에 가져가서 땅에 꽂아두면 2년 안에 뿌리를 내리고 나무로 자랄 거라고 했다. 여기선 파파야 씨를 던져두면 파파야 나무가 자란다고 하던데 오늘 들은 싱콩 나무 이야기마저 사실이라면 정말 놀라운 생명력을 가진 땅이다.

짜낭사리, 그루터기 속 마른 꽃이파리, 오늘 처음 DSLR을 잡아본 꼬마 사진가

어느덧 섬 반 바퀴 여정이 끝나가고 집 도착 200m 전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음료를 마시기로 했다. 냉장고에서 음료를 골라 계산을 하려는데 다운증후군이 있는 소녀가 돈을 들고 어쩔 줄 모른다. 작은 돈을 꺼내어 다시 셈을 맞춰주었다. 어린이는 숙소를 200m 남겨두고 아빠 등에 업혀가고 이모는 싱콩 나무 막대기를 들고 뒤따라간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어린이가 잠든 시각, 아침에 찍어둔 사진을 영상으로 만들어 상영회를 하기로 했다. 10분 남짓한 짧은 영상 속 장면마다 생생하게 기억난다. 저 사진을 찍을 때 어린이가 했던 말, 재미있는 포즈를 취해준 사람들, 수줍어하면서도 카메라에 인사해주던 아이들, 구멍가게 앞에 앉아 담배를 태우던 할머니, 싱콩 나무 막대기로 개를 쫓으라고 알려주었던 할아버지 이야기들을 친구에게 들려주었다. 특별할 것 없는 걸음이 낯선 이들과 엉키며 서로에게 즐거운 기억이 되는 시간이었다. 언젠가 쯔닝안에 다시 갈 때 이 사진들을 인화해서 마을 사람들 오가는 길에 붙여두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눈이 마주치면 먼저 웃어주는 쯔닝안 섬 사람들





이제 영업을 재개한 쯔닝안 클리프, 본문중에선 걸어갔지만 오토바이로 올라가는 걸 추천합니다. 메인풀에서는 누사 페니다 섬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전망의 포토존이 있어요.  

https://goo.gl/maps/XFtVY3Sr3XvJzks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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