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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Aug 13. 2022

발리에 가서 살자고?


 발리에 가서 살자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ㅌ씨와 만나는 3년동안 우리는 세 번 발리 여행을 했다. 한국에 산지 십 년 차인 ㅌ씨는 이제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미세먼지 때문이었는데 공기가 좋지 않고 하늘이 맑지 않아서 힘들다고 했다. 장난처럼 시작된 발리 가서 살자를 어렵게 마음먹고 결정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당연히 이 바이러스를 인간이 빨리 이겨버릴 줄 알았는데 아직도 못 이겨서 어이가 없다.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1년을 기다렸는데 도무지 잠잠해질 기미가 없어서 ㅌ씨가 먼저 출국을 했다. (2020년 11월)


 불과 2개월 만에 한국에선 확진자가 늘어나 상황이 심각해졌고  2021년 1월부터 인도네시아 신규 비자 발급이 무기한 미루어졌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되어버렸고 이제 와서 싫다고 하기엔 멀리 와버렸다. 10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싫고 코로나 한복판에 외국을 가는 것도 싫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5개월 만에 비자가 나왔는데 막상 비자를 받아 드니 이 시국에 출국을 하는 게 맞나 싶어서 울고불고하며 출발 준비를 했다. 코로나 검사도 처음 해봤다. 면봉을 뇌까지 밀어 넣는다는 얘기를 많이 봐서 겁이 났는데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났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매일 출퇴근하는 입장이라 기다리는 내내 두근두근했는데 결과는 음성이었다. 준비할 서류가 너무너무 많았다. 한국 여권만 있으면 무비자로 한 달씩 갈 수 있던 그 발리에 가는데 서류를 지게에 싸 짊어지고 가는 느낌이었다. 영문 결과지 발급을 끝으로 준비를 마쳤다.


오랜만에 공항에 가니 기분이 이상했다. 누군가 데려다주면 너무 슬퍼질까 봐 마다했는데 이른 새벽에 혼자 택시 타고 갔더니 그것마저 좀 외로웠다. 공항은 한가했다. 짐을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가방 하나는 추가로 비용을 내야 했다. 가루다 항공은 스포츠 수하물이 무료라 스케이트보드 가방은 문제없이 보낼 수 있었다. 나는 늘 남겨지는 사람 입장이었기 때문에 떠나는 사람들 마음이 어떤지 잘 몰랐는데 떠나는 사람들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비가 와서 기분이 축축해지는 바람에 많이 울었다. 비행기에서 구름을 보며 어쩐지 영영 떠나는 기분이 됐다. 자카르타까지 5시간 비행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했다. 이제 자비로 호텔에서 5일간 격리를 마치면 발리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 밥 먹고 누워서 천장만 쳐다봤다. 십 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둔 것과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서 격리 기간 5일 내내 고민을 했다. 고민과 걱정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눈앞에 어떤 일이 닥치면 견딜 수 없다. 격리기간 호텔에서 라디오를 자주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침 방송에서 take me home이라는 노래가 나올 땐 웃으면서 울었다.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발리인데 저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 나는 내가 웃겨서 울다 웃었다.


5일 격리를 마치고 이제 발리로 가는 국내선을 타야 한다. 항상 직항으로 갔던 발리라 국내선과 국제선 수하물 무게에 대해 생각도 못했다. 부랴부랴 큰 가방을 발리로 보냈다. (가루다 항공 국제선은 30kg, 국내선은 위탁 수하물 무게가 20Kg까지 허용된다.) 시간이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발리행 티켓보다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가방을 보냈다. 격리 호텔을 탈출하자마자 아이스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뭐든지 다되는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돈 주면 사다 줄 것도 알고 있었지만 5일 참다가 먹으면 더 맛있을까 봐 일부러 참았다.) 그렇게 드디어 발리에 도착했다. 이미그라시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걸 물어보지 않았고 여전히 발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해주었다.


2021년 6월 텅빈 인천 공항
격리를 마치고 발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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