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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Aug 26. 2022

낀따마니에서 캠핑을 한다

 커피 농장에서 1박 2일 캠프를 하기로 했다. 스미냑에서 2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라 가는 길에 들러볼 만한 곳이 있을까 찾다가 낀따마니에 풍경 멋진 카페를 가보기로 했다. 주차를 하면 귤이 한가득 담긴 봉지를 든 사람들이 10명쯤 우르르 몰려와 관광객을 에워싸고 귤을 사라고 한다. 처음엔 이런 상황이 곤혹스러워 어쩔 줄 몰랐는데 나중엔 서로 쓸데없는 수고를 덜기 위해 빠르게 거절하고 걸음을 재촉할 수 있게 됐다.


한눈에 들어오는 화산지대와 바투르 호수, 카페에서 볼수 있는 그림같은 풍경

나는 검색 당번이다. 뭔가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몇 시간이고 구글이며 인스타그램을 뒤져서 기어이 그 장소를 찾아낸다. 이 카페도 진작부터 인스타그램을 뒤지고 뒤져서 구글맵에 깃발을 딱 꽂아둔 곳이다. 낀따마니엔 풍경이 멋진 카페가 많다. 카페 위치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 조금 더 낮은 지대로 내려가면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카페도 있다. 오늘 우리가 들른 카페는 뒷문으로 나가 화산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인데 인스타그램에 있는 사진들 대부분 뒷마당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누가 봐도 감탄을 자아낼 멋진 풍경은 막상 큰 감흥이 없었다. 요즘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 열심히 생각한다. 가보고 싶어서 구글맵에 깃발을 꽂아둔 곳들을 가도 시시하고 사람들이 맛있다고 입을 모아 칭찬하는 식당에 가도 특별히 맛있지 않다. 전염병이 유행하는 이 시점에 많은 인파에 겁이 나서 즐겁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열심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판단으로 만드는 전병 같은 간식 위에 코코넛가루와 시럽을 올린다


 지나는 길에 귀여운 아궁이가 있어서 멈췄다. 판단을 섞은 반죽에 시럽을 뿌리고 코코넛을 올린 발리의 간식이다. 6개 들이 한 팩에 10K (800원)이다. 작고 동그란 모양이 화전을 연상시킨다. 떡처럼 쫄깃쫄깃하고 달콤한 시럽에 코코넛 가루가 아삭아삭 씹힌다. 금방 꺼내 따끈따끈할 때에는 맛있었는데 몇 시간 지나고 나니까 맛이 뚝 떨어졌다. 그리고 정말 달다. 식으니까 더 달다. 발리 사람들은 정말 단 것을 좋아한다. 판단은 식재료로 많이 쓰이는 잎이다. 제과점에 가도 판단을 이용한 케이크류가 많다. 고운 초록빛을 낼 수 있어서 언젠가 판단을 이용해서 베이킹을 해보고 싶다.


다시 발걸음을 서둘러 커피농장으로 간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드디어 커피 농장에 도착했다. 오늘 우리와 함께 캠핑할 사람들은 유치원 동창인 어린이 열명과 그 부모들이다. 국적도 다양하다. 짐바브웨, 프랑스, 독일 등 다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화로대에 불을 붙이고 있다.  외국 사람은 야외 활동을 엄청 잘할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파사삭 부서졌다. 한 시간쯤 부채질을 하고 나서야 불이 붙었다. 캠핑이 취미인 나는 참견이 하고 싶어서 마음이 들썩들썩했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불 붙이는 아빠를 응원하는 어린이를 위해 가만히 기다렸다. 이렇게 열심히 불을 붙인 화로대에서 소시지를 구웠다. 아이들에게 소시지를 꽂아 하나씩 건네주는 성인 남성의 표정이 어찌나 뿌듯해 보이던지 보고 있는 내가 웃음이 났다.


슬슬 출출해져서 각자 준비해온 음식들을 테이블에 올렸다. 우리는 달걀 샌드위치와 잡채를 준비해 갔다. 외국인들이 잡채에 흥미를 보인다. 채소가 많이 들어간 건강식이라고 했다. 잡채라고 하면 잔치음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채식주의자들이 감탄을 하니까 잡채가 특별한 음식이 된 느낌이다.


달걀 샌드위치와 잡채, 커피농장에서 주문한 발리 전통 음식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텐트를 설치했다. 캠핑 장비는 다 대여했다. 작은 텐트 하나, 침낭 두 개, 바닥 매트리스 두 개를 빌렸는데 55K (4,400원)를 냈다. 발리에는 캠핑장이 많고 캠핑 용품을 저렴하게 대여할 수 있는 업체도 많다. 버너나 의자, 침낭, 대형 텐트 등 없는 게 없다. 혹시라도 여행 중 캠핑을 하고 싶다면 대여용품 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캠핑장까지 배달도 가능하다) 한국에 두고 온 캠핑 장비가 그립다. 우리 캠핑 친구들과 발리에서 캠핑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예쁘게 꾸미고 사진을 이천 장쯤 찍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우리가 오늘 캠핑을 하는 곳은 사실 캠핑장이 아니고 커피 농장 공터다. 유치원 동창인 어린이들과 그 가족들만 모여서 우리끼리 캠핑을 한다. 커피 농장을 한 바퀴 둘러보며 커피 열매도 씹어보았다. 달짝지근한 커피 열매맛이 신기했다.



수확한 커피 열매를 씻었다. 이제 커피 열매를 말리러 갈 차례다. 커다란 비닐하우스 같은 곳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커피 열매를 말리고 있다. 냄새가 고약해서 5분도 못 버티고 뛰쳐나왔다. 어린이들의 하루가 엄청 바쁘다. 열매를 커피로 만들기까지의 전 공정을 체험하는 동시에 열심히 놀고 있다. 트럭 타고 동네 한 바퀴, 해먹에 매달렸다 뛰어내리기, 널빤지 위에서 스케이트보드 타기 등등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노는 것을 보며 왜 사람들이 발리에서 애를 키우고 싶어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스케일이 다른 모닥불,캠핑의 꽃 스모어쿠키 만들기,대나무통에 숯을 넣고 고구마를 굽는다.

어린이들은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잠들어버렸고 어른들은 모닥불이 꺼질 때까지 남아 이야기를 나눴다. 발리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참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자카르타에서 기업 관련 보험일을 하고 있다는 다니엘 씨는 벌써 발리에 거주한 지 5년이 되었고 세 살배기 막내 아이는 발리에서 나고 자랐다. 코로나 때문에 고향에 가지 못해 안타깝지만 발리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러워 괜찮다고 한다. 모닥불이 꺼질 때까지 술을 마시다 보니 취한 사람들이 생겨난다. 목소리가 커지는 사람들도 있고 속 깊은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아침이 밝았다.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은 우유를 따뜻하게 데운 베이비치노를 마신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커피를 따고 씻고 말리는 건 아이들이 다했는데 정작 아이들은 커피를 마시지 못하니 우리가 노동착취를 했나 봐라고 해서 웃었다. 우리가 마신 커피가 어제 따고 말린 원두는 아닌 걸 알고 있지만 그런 과정들을 다 본 후에 커피를 마시니 특별히 더 고소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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