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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비 Oct 06. 2022

하비씨는 일에
책임감이 없는 것 같아

염병 첨병하고 있네!!!

어딜 가던 신입의 포지션에 있을 때는 늘 묘하게 안 좋은 눈초리를 받았다. 나는 나대로 존재하고 싶었고, 그들이 내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존중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 또한 그들을 향한 묘한 경계 두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은 신입의 입장에서 욕심이었던 것인지, 사람들은 그런 나를 늘 가만 놔두지 않았다. 한 소리 들었던 과거를 회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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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으로 산다는 게 이런 불안한 매일을 의미하는 것일 줄이야. 어제 오후에 들은 한마디가 계속 맴돈다. 


"하비씨는 일에 책임감이 없는 것 같아."

"..."


이번에도 결국 들어버리고 말았다. 이번에도 이런 말을 들었다는 건 내겐 '넌 사회생활에 적합하지 않아'같은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내가 모든 직장 생활에서 바랐던 건 퇴근 시간을 지켜주길 바라는 것이었다. 근무시간 안에서는 난 나의 모든 기(MP, Mana Point)를 그 집단에 할애하고 있었고, 그 에너지는 철저히 퇴근시간 6시에 맞추어 완전히 소진되게끔 계획되어 있었다. 근로계약서 아래에 난 9시부터 6시까지 그들에게 완전히 나의 노동력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전혀 계획에 없었다. 


6시가 넘어서는데도 집에 가지 못하는 분위기가 연출되면 내면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래, 10분 뒤에 일어나시겠지^^'하는 바람을 가졌지만, 그 바람은 매번 몇 번이고 계속해서 좌절되었다. 그때마다 분노감과 퇴사 욕구는 배 이상으로 치솟았고, 애사심은 바닥을 지나쳐 회사에 대한 증오감으로 변해갔다.


물론 포괄임금제라는 근로계약서에 이를 인지하고 사인한 것은 나다. 다만 근로자는 절대적인 '을'의 입장에서, 시간 외 근로에 대한 수당을 주는 회사를 선택하거나 포괄임금제를 거절할 권리 따위는 없다. 매일이 취업 낙방의 나날, 나의 쓸모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갈 즈음 내려온 동아줄과 같았던 최종 합격이었다. 그랬던 기회를 계약서 상의 '포괄임금제'라는 단어, 의미 하나에 날려버리기에 난 그렇게 여유 있지 않았다. 우린 그런 상황을 '을'의 관계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조금 철없는 변명을 해보자면 나의 '책임감' 영역의 시간은 오전 9시부터 6시까지였다. 나의 퇴근시간을 지켜주지 않는 회사도 근로 시간을 지키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는 상사한테 혼이 나면서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속으로는 "염병 첨병 하고 있네"를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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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반항심이 강해졌지만 버틸 수밖에 없었다. 주 72시간은 물론이고, 과거 자살했던 카카오 개발자의 노동시간인 월 313시간을 훌쩍 넘어서게 일하면서도 1년을 버텼다. 그렇게 버티고 나니 깨달은 건 '주인의식은 개나 줘'다. 인간의 이성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월급쟁이 노동자는 주인의식을 가지지 못한다. 회사가 나의 퇴근시간을 지켜주기 위한 책임감에 최선을 다했다면, 그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임했을지도 모를 텐데. 회사 전체 프로세스를 알고 나면 이렇게 쉽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내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그들은 프로세스를 마련할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그랬고 지속되었다는 건 한편으론 개선할 의지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글을 쓰게 된 건 과거의 어떤 일에 대해서 조금의 억울함을 항변하고 싶어서였다. 한국의 사회 구조에도 안 맞고, 철없는 생각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회사원은 안 할 거니까 말이다. 난 정말로 책임감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이 사회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던 걸까. 오늘도 난 '있을 곳'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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