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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비 Oct 07. 2022

늦었지만 이제야 감사를 표현해봅니다.

가랑이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친구들과 연락하기는 매일매일 숙제 같다. 고마움도 표현하고 싶고 어울려 떠들며 놀고도 싶지만, 여간 귀찮고 에너지 쓰이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소시오패스, 성격파탄자 거나 사회 부적응자는 아니다. (아닐 거다.) 다만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좋은 극 내향형인 탓에 그러하다. 말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글을 쓰는 것이 훨씬 더 속 시원한 방법이라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완전히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알게 모르게 서로를 돕고 도우며, 슬프거나 기쁠 때 서로를 위로하고 축하해준다. 나 또한 그런 감사함을 알기에 항상 친구나 지인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귀찮다는 것이다. (��‍♂️)


지금도 매일 감사함을 표하고 싶고, 언젠가 연락해야지 싶은 사람들이 있지만 차일피일 이를 미루고 있다. '아, 일단 오늘은 바쁘니까.', '오늘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안 되겠어.', '오늘의 나는 좀 초라한 것 같아', 등등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이쯤 되면 연락하기 싫은 거 아니냐고 물을 텐데, 그것은 절대 아니다. 이렇게까지 연락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이유는 정말로 그 사람들에게 고맙고 또 내가 소중하게 여겨서일 테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내 마음과 태도를 잘 관리하지 못한 탓에 소중한 친구를 잃은 적이 있다. 2-3년 전까지 삶이 많이 불안했던 때, 소중한 친구를 그저 힘들 때 주로 찾는 사람으로 여겼나 보다.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가는 그 친구를 존경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나 보다. 늘 자신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필요할 때만 찾는 친구로 느껴졌나 보다.


뒤늦게 항변하고 아니라고 외쳐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친구의 삼진아웃제에 걸려버려 '도어슬램' 나는 당했다. 난 나름 자기비판적이고 공감능력이 높은 인간형이었지만, 반대로 부족한 외향 감각에 사회생활에 영 꽝이고 적합하지 않은 성격유형이기도 했다. 그랬던 탓에 친구관계를 마음과 달리 흘러가게 하는 부작용이 생겨버렸다. 이때의 일은 꽤나 트라우마이자 상처가 되었다. 꿈에도 종종 등장하는 이 친구. 여전히 그 무리들 속에서 하하호호 웃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깨어나면 조용한 내 방의 침대 위다.


이후에 겪어온 삶과 성찰의 시간들은 나를 조금 변화시켰다. 이전보다 더 부족한 주머니 사정이지만, 고마운 사람들에게 그동안 미루었던 감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없는 형편인 만큼 딱 주제에 맞는 정도의 선물로. (가랑이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이 정도면 마음을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는 행여나 부족할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조금이나마 마음을 표현하는 게 진심을 전달하는 방법임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잃고 나서야 깨닫는 미련한 인간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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