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떠밀리듯 시작하게 될 거면서
사실 오늘 하려던 일이 있었다. 미뤄뒀던 여름옷 정리다. 매년 하면서도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낯설고 싫은지 선선한 바람 부는 게 반갑지 않을 정도다. 그저 올여름에 입었던 시원한 옷을 다시 집어넣고, 지난번 정리했던 더운 옷들을 꺼내는 것 그뿐인데 왜 이리 귀찮은지. 귀찮은 이유들을 생각해봤다.
어디에 무슨 옷을 두었는지 기억하는 게 힘들다. 사실 옷을 정리할 때는 여기에 내가 이 옷을 두었으니 당연히 다음에 기억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들의 옷은 생각보다 많다. 한두 벌로 그치지 않기에 우리의 뇌가 옷장보다 작은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물리적으론 그렇지만.) 옷들이 어딨는지 기억이 애매하다 보니 뒤적이며 기력을 빼앗기는 게 싫어 자꾸만 미루게 된다.
모든 계절이 삼한사온은 아닌지 싶어지는 날씨. 날씨란 게 참 일관적이지가 않아서 매력적이지만 심술쟁이 같기도 하다. 분명히 더운 날은 끝났을 거라 생각하고 옷가지를 정리하고 나면, 거짓말처럼 다시 더운 날씨가 찾아온다. 그러면 '조금만 더 옷을 늦게 정리할걸'하고 후회하는 일들이 매년 반복된다. 그렇지만 모순적이게도 지금의 난 추운 날씨를 얇은 옷으로 견뎌내고 있으니, 그 또한 미련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열이 많은 체질이니까! 하고 생각한다. 여름 동안 살인적인 더위에 지치고 나면 이제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고픈데, 여기에 두꺼운 옷을 껴입기엔 무언가 아쉽다. 미워했던 더위를 굳이 나서서 되찾아오는 느낌이랄까. 초가을엔 그런 경험이 어김없이 많다. 특히나 실내 기온이 한여름보다 높아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에는 내가 미쳤다고 벌써 옷장 정리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결국 시작하게 될 옷장 정리다. 옷장 정리는 계절의 변화로 시작되기도 하지만, 군중들 속에서 나 혼자만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으면서 생기는 자괴감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상한 괴짜가 돼버린 느낌이랄까. '쟤는 왜 이 날씨에 혼자서만 저렇게 입고 있는 거야? 춥지도 않나?', '트렌드에 뒤떨어지는 사람이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실제로 말하지도 않았지만, 내가 내 마음에 외치는 말인 듯 느껴지는 외침들이랄까.
올해도 그렇게 떠밀리듯 옷장 정리를 시작하게 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