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2코스, 화랑대역~광나루역

by 이흥재

2023년 9월29일(금)


오늘이 추석이지만 명절느낌은 별로 없다. 요즘은 추석에 차례 지내기가 곤란해서 벌초 때 산소에서 간단하게 미리 성묘를 드리기 때문에 추석엔 별다른 일이 없다. 더구나 명절 때 오는 아들네도 사정이 있다면서 어제 와서 함께 식사하겠다고 해서, 그마저 이 끝난 후다.


특별한 일이 없으니, 시간 날 때 서울둘레길을 돌기로 했다. 오늘은 2코스, 화랑대역에서 광나루역까지 12.3km로 서울둘레길 중 제일 짧은 코스다. 용마산 오를 때 570계단 깔딱고개를 제외하면 힘든 구간도 별로 없다.


출발지점은 화랑대역 5번 출구. 그렇지만, 화랑대역까지 가려면 개롱역에서 5호선을 타고 군자역에서 7호선으로 환승한 後 태릉입구역에서 다시 갈아타고 한 정거장 더 가야 해서 꽤 번거롭다.


일기예보에 아침에 흐리다가 낮부터 맑아진다고 했는데, 역시 흐린 날씨다. 낼 모레가 10월인지라 이젠 기온도 많은 내려가서 걷기엔 적당하다. 화랑대역 5번 출구로 나와 묵동천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추석날 아침인데도 산책 나온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들도 여러 사정이 있어서 추석 때 별로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일 거다.


화랑대역에서 1.1km 지점, 전에 없던 다리가 놓여있다. 전에는 앞으로 쭉 올라갔다가 그곳에 있는 다리를 건너 다시 한참 동안 되돌아왔었는데, 지금 이 다리로 묵동천을 건너면 몇 백m는 덜 걸어도 된다.

20230929_075919.jpg

차도로 올라와 곧바로 건널목을 건너면 2코스 첫번째 스탬프 찍는 곳이 있고, 둘레길은 그곳에서 다시 왼쪽 숲길로 이어진다. 그래도 아직은 시내를 지나는 길이기 때문은 짧은 숲길을 지나 차도로 올라오고 또 건널목을 연이어 건너 신내역을 지난다. 거리는 한산하다.

20230929_080340.jpg

길은 연이어 천주교 서울대교구 양원성당(중랑구 망원동)과 송곡관광고등학교(중랑구 망우동), 양원역(중랑구 망우동)을 지난다. 차도를 건너 오른쪽으로 가다 이내 왼쪽으로 들어가면서 차도와 멀어진다. 조그만 공원을 지나 오른쪽으로 가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길 양쪽으로 복숭아 과수원이 있는데, 관리가 되지 않아서인지 잎사귀만 무성하고 복숭아 열매는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도 풀이 한가득이다. 오늘도 맨발로 숲길을 걷는 사람을 만났다. 요즘 유행인가? 맨발로 걸으면 정말 건강에 좋은가? 발 마사지가 필요한 거라면 집에서 바닥이 울퉁불퉁한 깔판을 밟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마도 운동과 건강을 겸해서 하는 것이겠지•••. 운동효과가 배가되려나!

20230929_083855.jpg

요즘은 이런 저런 둘레길들이 참 많다. 서울둘레길을 걸으면서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설치한 각종 둘레길들이 있다. 구리둘레길(4코스, 30km)도 있고, 중랑둘레길(11.7km), 용마산 자락길(2.2km)도 있다. 서울의 다른 지역에도 많은 둘레길들이 존재한다.

20230929_084609.jpg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들어선다. 전에는 속칭 ‘망우리 공동묘지’라고 불리던 곳이다. 그러니까 문화공원이라고는 해도 묘지들이 많은 곳이다. 다만, 박인환이나 최학송 등 유명문인과 몇몇 독립운동가들의 묘소들이 곳곳에 있고 산책로를 잘 조성해 놓아서 여름에도 시원하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중간에 ‘중랑망우공간’이란 건물도 있어서 들어가 구경할 수도 있지만, 관심도 크게 없는 데다가 걷는 게 주목적이라서 그냥 지나쳤다. 망우(忘憂)는 조선 태조께서 이 고개에 올라 “이제야 근심을 잊겠구나” 해서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20230929_084858.jpg
20230929_085407.jpg

길가에 박인환(朴寅煥)의 시 <목마와 숙녀>의 한 구절을 새겨놓은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시인의 생몰연대를 보니 30살에 요절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런 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 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그야말로 애늙은이 같은 느낌이다.

20230929_090018.jpg

걷다 보니 산기슭에 ‘망우리 시립묘지 사용기간 연장신청’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장신청 하지 않으면 무연분묘(無緣墳墓)로 처리하겠다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추석인데도 풀이 무성한 무덤들이 꽤 많다. 아마도 돌보는 후손들이 없어서일 거다. 오래 전에 미국출장 같을 때 가이드가 설명해준 말이 떠올랐다. 공동묘지를 50년마다 신청 받아서 신고하지 않은 묘소는 없애버린다고 했다. 여기도 그러는 것 같다. 하긴 돌봐줄 후손도 없는데 계속 관리할 필요는 없을 거다. 어차피 세월이 지나면서 묘소 내부는 흙으로 변해있을 지도 모르니까•••.

20230929_090628.jpg

09시30분,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흙길로 변한다. 아니, 정확히는 야자로프를 깔아놓은 길이다. 그런데 처음 깔아놓으면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그 옆에 좁은 흙길이 또 생긴다. 어찌 보면 누군가 지나다녀야 야자로프 길이 부드러워질 텐데, 서로 피해다니다 보니 오랜 세월이 지나야 바닥이 평평해질 수 있을 것 같다.


09시35분, 깔딱고개가 시작되는 지점에 두번째 스탬프 박스가 있다. 그리고 가파른 570계단이 시작된다. 한꺼번에 오르는 게 쉽진 않지만 수도원의 다른 산에 비해 대단한 것도 아니다. 특히 청계산에는 연속된 계단이 1200개가 넘는다. 롯데월드타워의 2,900계단에 비하면 그야말로 5분의1 수준이다. 계단을 다 오르고 나니 ‘수명이 35분 늘었고, 90kcal를 소비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렇게 힘들게 올라왔는데, 90kcal라니!


용마산에 거의 다다랐을 지점에 ‘망우리의 유래’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조선 태조께서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종묘사직을 마련한 後, 선왕들의 능지를 정하기 위해 동구릉 지역을 답사하게 됐다. 동행한 무학대사가 ‘동구릉 지세는 선왕의 능지보다 태조의 신후지지(身後之地)로 적합하다’고 해서 그렇게 정했다. 기쁜 마음으로 환궁하던 중 망우고개에 올라 뒤를 돌아보고 ‘과연 명당이라 이제는 근심을 잊게 됐다’고 경탄한 데서 지금의 ‘망우(忘憂)’란 이름이 붙게 됐다.”


그런데, 여러 글들을 보면, 조선의 태조와 태종에게만 유독 이성계• 이방원이란 이름을 병기하는 경우가 많다. 정종(芳果)이나 세종(祹)의 이름은 거의 불리지 않는데•••. 하긴 정조의 경우는 MBC 드라마 <이산(李祘)>이 유명(2007.9~2008.6)해져서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아무튼, 먼 조상의 이름이 불려지는 게 마음 한구석에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서양에서는 조상의 이름을 내 이름으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조상들은 오랫동안 피휘(避諱)하는 전통이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09시50분, 용마산(龍馬山) 갈림길에 왔다. 둘레길은 용마산을 거치지 않고 질러가도록 코스가 정해져 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용마산에 올라가봐야겠지•••. 왕복 1km면 되니까. 하긴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을 다녀오는 게 귀찮기는 하지만, 어차피 힘들자고 떠난 길 아닌가.


용마산 정상(348m)에 올랐는데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사람들이 비켜주길 기다렸다가 정상석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인증사진도 한장 찍을까 했는데, 주위에 사람이 없다. 잠시 서성이다가 누군가 올라오길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찍힌 피사체가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시 찍을 수도 없는 노릇! 아쉽지만 그냥 내려왔다.

20230929_100300.jpg

용마산 정상에는 ‘대삼각본점’이 설치돼있는데, 설명문을 보니 “1910년 최초의 토지조사사업을 위해 서울에 설치된 2개의 대삼각본점(1등 삼각점) 중 하나(다른 하나는 양천구 갈산공원에 있다)로, 현재 <세계측지계>(세계 공통으로 이용하는 위치기준) 도입에 따른 측량기준점으로 이용된다.”고 돼있다.

20230929_100115.jpg

아직은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지만 정상 바로 아래 운동기구들이 있는 곳에 나무벤치가 있어서 짐을 풀고 가져간 송편과 배, 그리고 커피를 마셨다.


이정표를 보니 오늘의 도착지인 광나루역까지 4.2km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높은 곳을 지나는 건 아니어서 약간의 계단만 지나면 걷기에 무난한 길이다. 중간에 아차산 정상(295.7m)에 올랐지만 봉우리도 아니고, 약간의 오르막일 뿐이다. 정상표지판이 없다면 알지도 못하고 지나칠 만한 장소다.


주위에 있는 서울경치가 괜찮기는 한데 오늘은 흐린데다 연무가 뿌연해서 멀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북한산과 도봉산이 아스라이 보일 뿐이다. 하긴 서울에서 맑은 날이라도 멀리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날이 많진 않다.


‘해맞이 기념’ 표시석을 세워놓은 곳과 고구려정(高句麗亭)을 지나 하산을 마쳤다. 길가에 먼지떨이기가 있어, 먼지도 별로 붙지 않은 옷을 털어냈다. 밑으로 내려오니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차례는 다 지내고 온 사람들인가? 하긴 아무려면 어떤가!

20230929_105421.jpg
20230929_110022.jpg

오늘의 마지막이자 세번째 스탬프박스에 왔는데, 젊은 여자들 무리가 박스를 둘러싸고 있다. 말소리를 들으니 중국어다. 박스 안에 있는 스탬프북을 꺼내놓고 또 한참 대화 중이다. 중국어를 모르니 달리 얘기해 줄 수도 없어 그녀들이 자리를 비켜주길 기다렸다가 스탬프를 찍었다. 그렇게 서울둘레길 2코스 걷기도 마쳤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울둘레길 1코스, 도봉산역~ 화랑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