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1일(수)
성북생태체험관 ~ 화계사 일주문(2.2km) ~ 북한산우이역(7.1) ~ 도봉산역 (7.3) 총 16.6km
오늘 드디어 서울둘레길을 완주하는 날이다. 그런데 출발지점인 성북생태체험관까지 가는 길이 좀 번거롭다. 먼저 개롱역에서 5호천 지하철을 탄 다음 청구역에 6호선으로 갈아타고 보문역까지 간 후에 이번에는 다시 우이신설을 타고 정릉역까지 가야 한다. 그렇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1번 출구로 나가 1114번 버스를 타고 또 한참 가야 한다. 그런데 오늘 탄 시내버스가 왜 그렇게 느려터졌는지 답답할 지경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곧바로 8-2코스를 출발한다. 실제로는 8코스지만 구간거리 (33.7km)가 너무 길어서 내가 임의로 나눠 그 후반부를 오늘 걷는 것이다. 계단을 조금 내려가다 왼쪽에 ‘솔샘발원지’가 있어서 가봤지만 계곡 뿐이고 ‘샘’이 없으니, 어느 지점이 ‘발원지’인지 잘 모르겠다.
날씨는 잔뜩 흐렸다. 좀전 시내에서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길래 일기예보를 찾아보니 오전에 잠깐 비가 올 거라고 했다. 어제는 분명히 비 소식이 없었는데.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바뀌니 쉽게 예측할 수가 없다. 비는 아주 조금 올 거란 예보여서 만약 내린다면 그냥 맞기로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산행하는 내내 비는 내리지 않았다.
10분쯤 걸어 오늘의 첫번째 스탬프가 있는 곳에 도착해 시작을 찍은 후 앞으로 갔다. 그리고 30분쯤 후에 스탬프를 찍지 않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지? 지금까지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는데. 되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나중에 그 스탬프만 따로 찍으러 올까? 하지만 스탬프만 찍으러 오는 것도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그래! 좀 번거롭더라도 다녀오자. 그렇게 첫번째 스탬프를 찍기 위해 왕복 1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누군가 말했었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고.
경천사를 조금 지난 지점에서 오늘도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고 있는 걸 카메라에 담았다. 처음 지나갈 때도 쪼고 있었는데 스탬프를 찍으러 다시 다녀오는 동안에도 열심히 쪼고 있다가 계속 구경하고 있으니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와서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아무래도 쪼기에 적당한 나무를 찾은 것일 테니까.
09시04분, 빨래골공원지킴터에 도착했다. 옆에 세워둔 안내문을 보니, “빨래골이 있는 수유동은 골짜기 물이 많아 ‘무너미’라고 불렸다. 당시 대궐 무수리들이 빨래터와 휴식처로 이용하면서 ‘빨래골’이란 명칭이 생겼다. 대부분은 궁 근처 청계천에서 빨래했지만, 은밀한 빨랫감(속옷 등)은 이곳까지 와서 따로 빨았다고 한다.”
09시13분, 구름전망대에 올라갔는데 맑은 날이면 멀리 있는 용문산이나 유명산까지 다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구름 때문에 가까운 칼바위능선까지만 보이고 북한산이나 도봉산 봉우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산은 온통 울긋불긋 단풍이 제철이다.
오랜만에 화계사(華溪寺) 경내를 둘러봤다. 전에는 길가에 있는 대적광전 (大寂光殿)과 범종각(梵鐘閣)만 보고 지나쳤었는데, 위로 올라가보니 대웅전 (大雄殿)과 천불오백성전(千佛五百聖殿) 등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절은 대웅전이 아닌 대적광전이 주가 되는 사찰인가 보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대적광전은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화엄불교의 가장 이상적인 세계로,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비로자나불의 정토[淨土])의 교주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본존불로 봉안하는 건축물이라고 한다.
입구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니, “화계사는 고려 광종 때 왕사(王師)와 국사 (國師)를 지낸 법인탄문(法印坦文) 대사가 창건한 보덕암을 조선 중종 17년 (1522) 신월선사(信月禪師)가 법당과 요사채를 옮겨 짓고 ‘화계사’라 했다. 이후 여러 차례 중창과 중수를 거듭했으며, 1960년대부터 30여년간 해외 포교활동을 해온 숭산스님의 제자들이 화계사를 찾아오면서 해외포교의 상징이 됐다.”
화계사를 나와 왼쪽의 가파른 나무데크 계단을 오른다. 서울근교의 산들은 물론 서울둘레길을 걷는 동안에도 이제 계단 오르는 것은 일상이다. 가끔 짜증날 때도 있지만, 그래 봐야 나만 손해! 어차피 올라야 할 계단을 무심하게 올라간다. 땀은 좀 나지만 뭐, 대수인가?
요즘 서울 산중에 멧돼지들이 많아지면서 멧돼지의 도시출몰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치고 출입문을 달아놓았다. 사람들은 문을 열고 이동할 수 있지만 멧돼지는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시설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열려있는 문을 제대로 닫지 않고 그냥 지나쳐왔다. 하긴 멧돼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설치한 것이란 걸 나중에 닫혀있는 문을 보고서야 깨달았으니, 그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을 수 밖에.
걷다 보니 ‘둘레길우회’ 안내문이 있다. 전에는 질러가는 길을 만들었었는데, 사유지라서 사용금지 요청에 따라 우회노선을 이용하란 안내문이다. 그런데 전에 우회노선을 이용해보니 조금 멀게 느껴져서(조금 오르막이 있긴 해도 그래 봐야 몇 백m다) 이번에는 기존노선으로 갔는데, 중간에 길이 없어졌다. 결국 지도를 보면서 이리저리 돌다 보니 더 걸은 것 같다. 앞으로는 하란 대로 해야지!
이곳에도 ‘지연치유 맨발걷기 숲길’을 조성해놨다. 가히 전국적인 유행인가 보다. 며칠 전 본 신문기사에선 마구잡이로 따라 하는 건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걷다가 자칫 발바닥에 상처라도 나면 파상풍 위험도 있다고 했다. 맨발로 걷는 게 건강에는 분명히 좋겠지만, 이런저런 위험부담이 있기 때문에 의사들은 많은 우려를 하면서 추천하진 않았다.
누군가 소나무 허리에 ‘시간을 잊은 마을’이란 판자를 붙여놨다. 무슨 의미지? 시간을 잊는 게 좋은 건가? 너무 감각적이다. 이치적으로 따져보면 허무맹랑한 말이지만, 말로써 현혹시키는 것 같다. 이런 말이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지?
오늘도 소나무 연리지(連理枝)를 지났다. 옆에는 거창한 설명문을 세워놨지만 그저 자연현상일 뿐이다. 더구나 전에 스페인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중에 본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인위적으로 연지리를 만들고 있었다. 아무튼, 그래도 연리지 보는 게 드문 일이니 신기하긴 하다.
둘레길을 걷는 내내 낙엽이 비처럼 내린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와 바람소리가 합쳐지니 더욱 빗소리처럼 들린다. 신기해서 동영상을 찍으려고 하니 그렇게 많이 떨어지던 낙엽이 그쳐버렸다. 이런!
솔밭공원을 지나 소나무쉼터 앞에서 점심을 먹었다. 좀전에 스탬프를 가시 찍으러 가지 않았더라면 더 멀리까지 다서 먹을 수 있었을 테지만, 어쩔 수 없다. 벌써 11시가 지났으니 배도 고프다. 햄버거와 오이와 포도, 그리고 냉커피까지.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다.
11시46분, 북한산둘레길의 왕실묘역길이 시작되는 곳에 두번째 스탬프가 있다. 이번에는 잊지 않고 꾹 눌러 찍었다. 그리고 다시 가파른 계단. 그래도 계단을 오르고 나면 평평한 능선 흙길을 걸을 수 있으니 그 또한 좋다.
길가에 커다란 묘가 방치돼있다. 비석에는 무슨 정경부인(貞敬夫人)이라고 쓰여있는데, 아무래도 후손이 없었나 보다. 조금 더 가니 이번에는 비석 하나 없는 묘가 또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규모가 크지? 아무튼 조성
당시에는 명문가의 묘소였을 테지만, 지금은 돌보는 이가 없어서인지 잔디 하나 없이 이끼만 듬성듬성 자라고 봉분도 많이 내려앉았다.
왕실묘역길에는 연산군묘와 정의공주 묘가 있다. 연산군묘 바로 전에는 제자준비라는 공간인 재실(齋室)이 있고, 바로 옆에 연산군묘가 있는데, 오늘은 늦었으니 그냥 지나친다. 연산군묘를 조금 지나 차도를 건너면 길가에 세종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와 그의 남편인 안맹담의 묘가 있다. 앞에 세워놓은 설명문을 보니, “안맹담은 초서에 능한 서예가로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했으며, 정의공주는 책력과 산술을 잘해 세종대왕이 아꼈다”고 한다.
이제 방학동길로 접어들었는데, 목적지인 도봉산역까지는 아직 5.8km나 남았다. 그래도 부지런히 걸으면 1시간 반 정도 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다. 다행히 아직은 발이 아프지 않으니 쉬지 않고 걸어도 별 문제가 없다.
12시51분, 이번에는 쌍둥이전망대에 올랐다. 이곳도 역시 시야는 멀지 않다. 그래도 다행히 북한산 봉우리들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그걸로 만족할 수밖에.
둘레길은 ‘도봉옛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세번째이자 마지막 스탬프가 있는 도봉탐방지원센터까지 1.7km 남았다. 그렇지만 도봉산역까지는 거기서도 한참 더 가야만 한다.
오후 1시35분, 도봉사와 능원사를 지나 도봉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누군가 술을 마셨는지 소리를 크게 지르면서 산을 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경찰차 2대와 경찰 4명이 서있는데, 대화를 들어보니 그 술 취해 소리지르는 사람을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의논하는 것 같았다. 산속이니 그저 해프닝으로 봐줘도 될 것도 같다. 만약 계속 같이 있어야 한다는 엄청 시끄럽겠지만 대부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니 잠깐씩만 참으며 지나치면 되지 않을까? 그 사람도 어느 정도면 스스로 지치겠지.
이제 서울둘레길 스탬프 28개를 전부 찍었다. 서둘러 서울창포원으로 가서 땀을 씻고 서울둘레길 안내센터로 가서 여섯번째 완주인증서를 받았다.
※서울둘레길 완주이역
① 2016.6.7 – No.8756
② 2017.5.21 – No.15740
③ 2018.7.29 – No.23546
④ 2020.2.23 – No.33060
⑤ 2022.8.17 – No.56756
⑥ 2023.11.1 – No.68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