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23일(화) 맑음
오늘의 출발지인, 제7구간 옛성길 탕춘대성 암문입구까지 가려면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광화문역 2번 출구로 나가 7212번 버스를 타야 한다. 그런데 버스정류장으로 나가보니 12분 후에 버스가 올 거라고 전광판에 나온다. 나주에 보니 이 버스는 15분 간격으로 오는 거였으니까, 조금 전에 지나갔다는 거였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기다리는 수밖에.
겨울에는 이 시간이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두 명 정도인데, 오늘은 아주 많다. 물론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낮이 길어지고 날씨도 춥지 않으니 다들 서둘러서 움직이나 보다.
버스가 와서 탔는데, 다행히 세번째 줄에 빈의자가 있어서 앉았다. 그 자리는 노약자가 앉는 자리였지만, 나도 노인이잖아! 억지 쓰면서 앉아있었다. 버스를 타면 중간출입문 뒤에 빈자리가 있어도 멀미가 걱정돼 가지 않고, 차라리 앞에서 서서 간다. 그러니까 이 의자에 앉지 못하면 서서 가야 하기 때문에 염치불구하고 앉을 수밖에 없다.
버스를 25분쯤 타고 구기동 현대빌라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길을 건너 출발지인 탕춘대성 암문입구로 갔다. 하지만 그곳에 어떤 표시도 없다. 그저 북한산둘레길 방향표시만 있을 뿐이다.
이정표를 따라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조금 가니 가파른 오르막이다. 뭐, 이젠 이런 길을 만나도 그러려니 한다. 힘이야 좀 들지만 어차피 힘쓰자고 떠나온 길 아닌가. 오르막 중간에 암자가 하나 있는데, 이름이 불심원 (佛心院)이다. 옥호(屋號)가 특이하다. 건물 하나에 마당에 있는 돌로 만든 불상 하나가 전부다. 게다가 건물에는 한글로 ‘부처님 계신 곳’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서울둘레길을 걸으면서도 여러 차례 지나쳤던 곳이긴 하지만, 정체를 알지 못하겠다.
곳곳에 철쭉꽃이 만개했다. 핑크색과 빨간색 등 색깔도 다양하다. 그런데 은은한 진달래꽃과 비교해보니 너무 화려해서 꼭 작부(酌婦)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는데, 물감을 조금 덜 넣어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조물주께서 역정내시겠다. 감히 내 작품에 대해 비평을 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불심원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6구간 평창마을길이 끝나고 7구간 옛성길이 시작되는 입구가 나온다. 그리고 산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갔더니 탕춘대성 암문이 보인다. 암문 옆에 세워놓은 설명문을 보니, “탕춘대성 (蕩春臺城)은 서울성곽(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성으로, 도성과 외곽성(북한산성)의 방어기능을 보완하고 군량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었다. 연산군의 연회장소인 탕춘대가 가까운 곳에 있어서 탕춘대성이라고 불렀다.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한 탕춘대성은 향로봉 아래까지 5.1km에 달한다.”
둘레길 구간 중 유일하게 지나는 암문을 통과해 산길을 계속 간다. ‘서울시 선정 우수조망장소’에 도착했다. 북한산의 족두리봉부터 보현봉까지 8개 봉우리가 한눈에 보이는 곳인데, 무성한 나무 때문에 조금 가려져서 아쉽다. 하긴 너무 멀어서 사진으로 담기엔 선명하지 않다.
08시38분, 장미공원에 도착했는데 장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꽃 필 때가 아니라서 그런가? 장미나무도 별로 없다. 앞으로 더 가꾸겠다는 계획이 있는 건가? 신호를 기다렸다가 큰길을 건넜다.
곧바로 ‘북한산 생태공원’이 나왔다. 이곳도 이름만 거창한 것 같다. 주위에 붉은 철쭉꽃만 눈에 띌 뿐 별다른 특징을 찾지 못하겠다. 이러려면 차라리 조금 더 소박한 이름을 붙이는 게 낫지 않을까?
옛성길이 끝나고 8구간 구름정원길이 시작되는 곳에 서울둘레길 북한산코스2 스탬프 찍는 곳이 있어서 스탬프북에 찍어놨다. 서울둘레길과 북한산둘레길은 겹치는 구간이 있어서 같은 길을 계속 걸어야 하니, 이럴 때 흔적을 남겨 놓으면 다음에 서울둘레길 걸을 땐 이 구간을 건너뛰어도 될 것 같아서다.
나무데크로 만든 ‘스카이워크’를 지나는데, 한쪽엔 도시건물들이 보이고 반대쪽엔 북한산 줄기다. 맑은 날이지만 미세먼지 농도가 짙어서 멀리까지 보이지 않는 게 조금 아쉽다.
09시45분, 드디어 북한산둘레길과 서울둘레길이 갈라지는 곳에 왔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줄곧 겹치는 구간을 걸은 셈이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북한산코스1’ 스탬프가 있어서 잠시 다녀왔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북한산둘레길을 걷는다. 그런데 서울둘레길은 최근에도 걸었었지만, 북한산둘레길은 너무 오랜만에 걷는 거라서 길이 낯설다. 그래도 이정표만 따라가면 되니까 걱정할 건 없다. 게다가 앱에 받아놓은 ‘Mapy.cz’가 있어서 너무 유용하다. 이 지도에는 북한산둘레길과 서울둘레길 표시도 잘 돼있어서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길 잃을 염려는 전혀 없다. 누가 만들었는지 세계를 커버할 수 있도록 해놔서 산티이고 순례길을 비롯한 유명한 길들은 모두 지도로 찾아갈 수 있다.
산길을 가다 보니 뿌리로 연결된 두 나무가 서있다. 모두들 무심코 밟고 지나가는 길에 놓여있지만 분명히 뿌리가 연결돼있다. 지난번에 봤던 연리근(連理根) 옆에는 거창한 설명문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곳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연리근으로 보이지 않나! 내가 보기엔 분명 뿌리가 붙어있는데!
구름정원길(8구간)이 끝나고 마실길(9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에 소규모 왕릉 같은데 있어 가까이 가보니 화의군 이영(和義君 李瓔)의 묘역이란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누군지 모르겠다. 안내문을 보니, “화의군은 세종의 세종의 여섯째 아들로, 어머니는 영빈강씨(令嬪姜氏)다. 그는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했으며, 중국어 기초학습서 <직해동자습(直解童自習)>을 편찬할 때 감독관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단종복위에 연루돼 유배사사됐다. 묘역 앞에 사당인 충경사(忠景祠)와 재실(齋室)이 있다.”
재실 현판을 보니 충의재(忠毅齋)로 돼있다. 그리고 사당 앞에는 영절문 (影節門)이 있고 굳게 닫혀있어서 사당과 묘역은 보이지 않는다. 통행로가 없이 묘역 전체가 잔디로 깔려있어서 밟고 다니기도 미안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사진 몇 장은 남겨야 되지 않겠나!
마실길은 마을로 이어졌다. 그리고 은평한옥마을이 나오는데, 사진을 찍으려니 햇빛 때문에 역광이다. 어쩔 수 없이 반대쪽에 있는 건물 하나만 찍고 마을을 벗어나려는데, 마을 끝에 한옥마을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한옥마을은 2016년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이 전통양식과 현대기술을 융합해 경제성시공성거주성을 접목하여 조성했다고 돼있다.
10시38분, 진관사와 가까운 소공원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아침을 다른 때보다 일찍 먹었으니 점심시간도 당연히 앞당겨야 해서다. 이곳엔 점심 먹기에 알맞게 나무탁자도 설치돼있고, 나무가 많아 적당히 그늘도 있으니 편안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지막한 돌탑들이 여럿 보인다.
마실길이 끝나고 내시묘역길(10구간)이 시작되는 구간에 도로바닥 공사가 한창이다. 중장비가 도로를 가로막고 공사 중이어서 인부들의 안내를 받으며 조심스럽게 현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이내 왼쪽에 있는 방패교를 건너니 큰 도로와 만났다. 차들이 쉼 없이 달리는 4차선 도로다.
조금 가다 보니 왼쪽으로 구파발역으로 가는 삼거리가 나왔다. 하지만 걸어가기엔 꽤 먼 거리다. 더구나 아직도 오늘 걸어야 할 길이 아직은 많이 남았다. 조금 더 걸어 오른쪽으로 여기소 마을로 향한다. 마을입구에 있는 안내문을 보니, “여기소(女妓所)는 조선 숙종 때 북한산성 축성에 동원된 관리를 만나러 먼 시골에서 온 기생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연못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전해오는데, 당시엔 여기연(女妓淵), 여기담(女妓潭)으로 불렸다.” 의상봉길에 있는 여기소 마을은 전원마을 같긴 하지만, 여기서 살기엔 마을도 작고 좀 따분한 삶을 영유해야 할 것 같아 보인다.
백화사를 오른쪽에 두고 왼쪽 숲길로 접어든다. 북한산에 올라가기 위해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백화사’란 정류장이 있는데, 그 절이 바로 여기였던 거다. 그런데, 규모도 작고 볼품 없어 보이기도 해서 경내로 들어가진 않았다. 이정표를 보니 오늘 목적지와 가까운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가 700m 남았다.
북한산초등학교 정문 앞과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오늘의 목적지인, 계곡을 가로지르는 둘레교까지 가서 10번째 포토포인트 인증사진을 찍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작성해놓은 북한산둘레길 걷기일정을 꺼내보니, 어라! 오늘 너무 조금 걸었다. 계획대로라면 효자길(11구간, 3.3km)과 충의길(12구간, 3.7km)까지 걸어서 교현우이령 입구까지 가야 했었는데, 3분의1이나 덜 걸은 셈이다. 어쩐지, 여정이 빨리 끝난 게 좀 이상하긴 했다. 그런데 어제 여정을 확인하면서 둘레교까지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앞으로의 계획도 모두 수정해야 한다. 어차피 남은 40km를 이틀에 걷기엔 무리이니 3일로 걸을 수 있도록 다시 나눠야 한다. 그러면 산티아고 순례길 떠나기(5월30일) 전에 완주할 수 있을 것 같다.